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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Jul 03. 2020

제대로 사랑 한다는 것.

안녕 주정뱅이 중 <봄밤> 서평

사업부도로 전처와 이혼하고 신용불량자가 된 수환과 남편과 이혼하면서 아이마저 빼앗기고 혼자가 되어 그 빈자리를 술로 채워오던 영경이 처음 만난 것은 12년전 봄의 일이다. 동창생의 재혼 식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일주일 만에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 뒤로 한번도 떨어져 지낸 일이 없던 그들은 수환이 류머티즘 환자로 요양원에서 지내면서 잠시 떨어져 살게 되고, 그 사이 중증 알코올 중독자가 된 영경도 결국 요양원으로 오게 되면서 요양원 내에서 의가 좋기로 유명한 부부가 된다. 


술이라는 공통분모하에 묶여진 권여선의 단편집 『안녕 주정뱅이』이 중에서도 ‘봄밤’은 유독 알코올 냄새가 진하게 난다. 주인공 영경이 중증 알코올 중독자이기 때문이며, 그녀가 술을 마시는 장면이 마치 독자의 혈관 속으로 알코올이 타고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1996년 『푸르른 틈새』로 등단한 작가는 술자리를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그녀의 책 곳곳에 그리고 인터뷰 내용에서 술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술이 글 속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소설 속 술은 어떤 순간에는 주인공의 고통을 망각시키는 존재이며, 그의 내면 깊이 존재하던 망각된 기억을 견인하기도 하는 장치로 존재하고 있다.      


단편 ‘봄밤’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봄’에 발생한다. 영경과 수환이 처음 만난 것도 봄이고 그들이 마지막을 맞는 것도 봄이다. 

일반적으로 ‘봄’이라는 단어는 따스하고 낭만적인 감정을 내포한다. 땅은 얼어 있지만 공기에는 따뜻한 바람이 섞여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봄이 되면 혹독하고 추운 날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이렇듯 제목만 보았을 때는 달콤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 같은 ‘봄밤’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정서가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언제든 자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단검처럼 지니고 살았던(P27)” 남자와 아들을 빼앗기고 술에 의존하여 아픔을 잊으려던 여자가 만나 어떻게 사랑하고 끝을 맺는지 보여준다. 부부의 행복한 모습은 생략되었으며, 예정되어 있던 죽음의 순간까지 어떻게 나아갔는지를 중심에 두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 하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죽음 앞에선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다 의미 없어진다. 죽음 앞에 당도했을 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사는 게 죽는 것 보다 더 끔찍하다는 현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삶을 견디어 내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P8)”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삶이,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혼자 남은 사람의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상대방에게 죽음보다 더한 상실의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영경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견디고, 수환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죽어버린 것(P39)”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눈 사랑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음을 견디는 사랑이었다. 


나약한 두 사람의 의존적인 사랑으로 읽을 수 있으나, 다른 한편 죽음이라는 결말 아래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이별할지 스스로 결정한 사람들의 모습으로도 볼 수 있겠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방식이 각기 다르기에 공감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서로를 위해 끝까지 견디는 영경과 수환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그들의 사랑에 있어 이 이상의 결말은 없을 것 같다. 

팍팍한 현실에 힘겨워 하고 있는, 어쩌면 사랑보다는 죽음을 더 가깝게 느끼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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