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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Jun 30. 2020

아사코와 아사코

영화 아사코 리뷰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히가시데 마사히로(바쿠/료헤이), 카라타 에리카(아사코), 

세토 코지(쿠시하시),야마시타 리오(마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한국에서는 ‘아사코’로 개봉했지만 영어 제목은 아사코 1&2 이다. 제목만 보았을때는 두 사람의 아사코 또는 아사코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임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 영화를 보면 아사코가 서로 닮은 얼굴의 두 남자, 바쿠와 료헤이를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어느 지점까지가 아사코 1 이며, 어디서 부터가 아사코2의 시작인 것인가? 


아사코가 영화 속에서 두 사람과 사랑을 나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두 사람과 만났던 시기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아사코가 처음 바쿠와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이별하기까지가 아사코 1, 그리고 2년 후 바쿠와 닮은 료헤이를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사코2 로 보는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그러나 아사코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 본다면 그 지점이 조금 달라 질 것 같다. 첫사랑인 바쿠가 갑작스럽게 떠나고 그와 얼굴이 닮은 료헤이를 만나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지만, 아사코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바쿠가 자리잡고 있다. 언제든 꼭 다시 돌아올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바쿠를 그리워하며 살았던 아사코는 바쿠와 진정으로 이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료헤이와 결혼을 약속하고 오사카로 돌아가기 전날 갑자기  바쿠가 찾아왔을때 아사코는 그가 내민 손을 뿌리치지 못한다. 이때까지의 아사코는 계속해서 바쿠와 사랑에 빠진 아사코인 것이다. 즉 여전히 아사코1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아사코는 바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센다이에 도착해서야 바쿠와 진정 이별하게 된다. 센다이는 지난 5년간 료헤이와 매달 봉사활동을 왔던 곳이다. “잘못되지 않은 일을 하고 싶었다”는 이유로 봉사활동을 해 왔던 곳에서 이르러서야 스스로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바쿠와 이별한 아사코는 그제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료헤이 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새로운 아사코의 삶이 시작된다. 아사코 2의 시작이다. 항상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응’ 이라는 단답형의 말로 수긍하던 그녀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속 바쿠가 아사코를 떠나는 이유들은 사소하다. (크림빵이나 신발을 산다는 이유, 어째서 그런 사소한 이유로 두 연인을 이별하게 했을까?) 어쩌면 그것이 바쿠가 떠나는 진짜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가 아사코를 떠난 진짜 이유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사코의 진짜 이야기는 바쿠와의 이별 이후에 시작된다. 

우리는 아사코와 바쿠의 첫 만남과 사랑 그리고 바쿠가 떠나는 장면까지가 오프닝 시퀀스로 제작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아사코도 다시 돌아오기 위해 료헤이를 떠난 것이다. 


관계 속에 잠재된 불안요소는 언제든 수면위로 올라온다. 아사코와 바쿠의 관계의 불안은 ‘복귀’에 있다. 꼭  돌아온다고 약속하고 떠난 바쿠가 진짜로 돌아온다면 아사코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사코와 료헤이의 관계의 불안은 바쿠의 대체제 역할이었던 료헤이 존재 그 자체 였다. 이러한 관계들은 결국 필연적으로 부딪히고, 바닥으로 떨어져 깨진 접시처럼 파열음을 내고야 만다. 그런데 바쿠의 손을 잡고 떠났던 아사코가 되돌아 오면서 료헤이는 더이상 바쿠의 대체가 아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바쿠가 돌아와야 하고 아사코도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돌아오기 위해서 떠났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는 중간 중간 아사코의 얼굴을 보여준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바쿠와 처음 만났던 사진전에서 쌍둥이 자매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그리고 료헤이와 연애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 사진전에서도 사진을 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 해서 보여준다.(심지어 동일한 작가의 사진전이다) 이러한 클로즈업 장면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 순간 아사코의 마음에 사랑이 시작 된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추억에 잠겨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5년 후로 시점이 이동하고 료헤이와 함께 아침을 먹는 둘은 대화를 나누며 카메라를 빤히 바라본다. 아침 식사를 하며 TV를 보는 일상을 보여 주는 것 같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앞에 있는 누군가가 사진을 찍고 그를 위해 포즈를 취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장면은 또 있다. 료헤이와 오사카로 이사가기 전날 짐을 싸던 아사코는 고양이 진탄을 품에 안고, 맞은편의 누군가에게 ‘안녕’이라고 하듯이 진탄의 손을 흔드는데, 잠시 후 역쇼트로 잡은 공간에는 아무도 없다. 역시나 그녀가 카메라에 인사를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감독은 어째서 이런 장면들을 넣은 것일까? 


이런 장면들은 그녀가 보았던 시게오의 사진전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사진이 담은 일상은 만약 사진으로 담지 않았다면 흩어졌을 순간들이다. 마찬가지로 아사코의 일상의 순간을 마치 사진처럼 담은 그 장면들은 그녀를 그 순간으로 박제하고 붙잡아 둔다.5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꾼다. 절대 영어 이름을 만들 수 없다던 전통주도 새로운 영어 이름을 갖게 되고, 티격태격 싸우던 친구는 어느새 부부가 되어 아이도 갖는다.


행복한 꿈 같았던 시간들은 일상이 되고, 하루요의 말처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내가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런데 눈을 떠보니 나는 전혀 변한게 없어” 라고 말하는 아사코는 실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해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다시 돌아온 아사코와 상처 받은 료헤이, 쏟아지는 빗속에 료헤이를 뒤쫓는 아사코, 그런 그들의 모습은 익스트림 롱 샷으로 촬영되어 있는데, 그들이 달려가는 뒤쪽으로 잔뜩 흐렸던 하늘의 비가 멈추고 밝은 햇살이 그들의 뒤를 따른다. 실패하고 실수해서 덧칠할 때마다 사랑은 더욱 깊고 강해지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아사코는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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