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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Jun 30. 2020

바위로 변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방법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서평






어린이 그림책의 대가인 윌리엄 스타이그가 첫 칼데콧 상을 수상하게 된 작품이다.  당나귀 실베스터가 우연히 요술 조약돌을 발견하고 위기의 순간에 그 조약돌로 인해서 바위로 변하게 되면서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지내다가, 결국 가족과 재회 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분량은 짧지만 독자가 어떤 부분에 촛점을 맞추어 읽느냐에 따라 다른 주제로 해석 될 수 있는 내용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단순히 가족애에 대한 책으로 읽었는데, 몇년이 지나 이제 사춘기에 다다른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는 이 책의 다른 면이 읽힌다.


먼저 ‘요술 조약돌’ 은 실베스터가 좋아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를 대표하는 요소이다. 책속에서는 취미로 예쁜 돌을 모으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단지 조약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가 관심있어하고 좋아하는 모든 것이 ‘요술 조약돌’이 될 수 있다. 바위로 변한 실베스터가 다시 당나귀로 되돌아 오는 과정을 보면 아빠가 발견한 조약돌을 바위 위에 올려두는 것이 큰 역할을 한다. 아이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 바위속에 갇혀있던 실베스터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 올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실베스터는 왜 하필이면 ‘바위’로 변했을까? 

바위는 차갑고 견고하다. 왠만해서는 뚫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춘기 아이들도 자신들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해 가면서 부모의 관심을 거부한다. 어릴때는 따뜻하고 말랑했던 아이들이 점점 바위처럼 차갑고 거칠고 딱딱해져 간다. 부모들은 그 세계로 뚫고 들어가려고 노력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더 멀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겉모습과 달리 속은 여려서 쉽게 상처받고 아직 미숙하다. 현명했다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바위로 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위로 변했던 실베스터가 다시 당나귀로 바뀌는 재회의 장면은 다시 읽어도 가슴 뭉클하게 한다. 처음 책을 읽었을때는 당나귀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실베스터의 간절한 마음이 눈에 보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보니 실베스터의 마음이 아무리 간절했어도 요술 조약돌을 바위 위에 올려 놓는 아빠의 작은 행동이 없었다면 그들의 재회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서 좌절하고 현재의 고난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순간, 실베스터의 부모가 먼저 손 내밀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결국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의 관심사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부모의 마음이 바위로 변했던 아이를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했다.


사춘기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부모라면 어느날 갑자기 내 아이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을 겪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는 겉모습 속에는 한없이 약하고 미숙하며 스스로의 변화를 감당하기 힘들어 당황하는 아이들이 있다. 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어떻게 하면 되돌아 갈 수 있는지 방법을 몰라 혼자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이럴때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이를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며 언제고 돌아올 수 있도록 따뜻한 손 내밀어 주는 행동이 아닐까?       

그 터널속을 아이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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