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듄 리뷰]
개봉: 2021년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티모시 살라메(폴), 레베카 퍼거슨(제시카), 오스카 아이삭(레토)
젠데이아 콜먼(챠니), 장첸(닥터 유에), 샬롯 렘플링(가이우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일부러 영화 소개를 보지 않았고, 세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감안해 물도 마시지 않고 좌석에 앉았다. 방대한 세계관과 많은 등장인물로 스토리가 복잡하여 원작을 읽지 않은 내가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나는 순식간에 빠져 들었고, 푸른 눈의 매력적인 소녀 챠니가 뒤를 돌아보며, “이건 아직 시작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가 마칠 시간이 되었음을 느끼고 아쉬워졌다. 앞으로 세 시간 정도 더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벌써 끝이라니 아쉬운 마음에 극장을 나서면서 다시 영화를 예매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영화를 두 번째 볼 때는 어떤 점에서 이렇게 매혹되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자 했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꼼꼼한 분석 같은 건 잊어버리고 다시 한번 빠져들었다. 스토리 자체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 ‘돈이 되는 행성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메시아’, ‘평온한 삶 속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강력한 힘을 각성하게 하는 고난’과 같은 소재는 그동안 흔하게 있었다. 대부분의 SF영화에 영감을 주었다는 원작 소설의 유명세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무언가가 달랐다.
익숙한 스토리에 매혹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트레이더스 가문의 모 행성인 칼라단은 물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화한 곳이다.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묘사되지만 영화 속 그 행성은 왠지 텅 비고 우울해 보였다. 그에 비해 행성 전체가 사막으로 이루어진 아라키스는 분명 척박한 곳이지만, 알 수 없는 생명력으로 가득 찬 곳으로 느껴진다. 칼라단에서의 영상은 주로 어두운 실내에서 회색 벽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야외 장면에서도 잔뜩 흐려진 하늘과 희뿌연 배경으로 묘사된다. 이에 비해 아라키스는 태양의 붉은빛을 모래 언덕이 그대로 반사하여, 붉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스파이스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래가 바로 그곳에 진귀한 것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모래언덕(듄)을 처음 소개하는 장면은 비행기에서 내려 다 보는 폴의 시선으로 보여지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주름진 모래 언덕과 모래 벌레로 인해 진동하는 모습은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가 꿈틀거리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간임에도 오히려 생명력이 가득 찬 공간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눈부시게 화면을 가득 채운 모래사막의 존재감은 영화 속 어떤 배우보다 크고 매력적이며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단순히 배경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 속 가장 긴박한 순간 중 하나는 바로 황제의 군사들, 사다우카가 아트레이더스 가문을 습격하여 벌어지는 전쟁 장면인데, 이 장면은 부감 샷으로 촬영되어 관객의 입장에서는 한발 떨어져서 관조하듯이 보게 된다. 이미 전쟁의 결과는 결정되었다는 듯이 초반부터 아트레이더스의 패색이 짙으며, 아슬아슬한 긴장감보다는 정해진 수순으로 그저 나아가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탈출에 성공한 폴이 프레멘을 만나기 위해 사막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모래 벌레 영역을 가로지르는 장면에서는 나도 거기에 함께 존재하는 듯 가깝게 느껴졌다. 타는 목마름을 함께 느끼며, 극장 안 공기 중에 모래가 흩날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막의 힘을 얻기 위해 폴이 아트레이더스로써 가진 것들을 버려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영화 속에는 폴이 예지력으로 보는 미래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보이는 단편적인 미래의 모습에서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해석하기는 어렵다. 예지몽에서처럼 아름다운 소녀 챠니를 만났지만, 프레멘 부족과의 결투에서 칼에 찔려 죽는 미래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승리한다. 물론 예지몽 속 칼에 찔려서 죽는 자신의 모습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왔던 ‘폴 아트레이더스’이며, 결투의 상대방을 죽임으로써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새로운 메시아인 ‘퀘사츠 헤더락’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폴의 예지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질지 호기심을 자아낸다. 1편에서는 폴의 예지 속 사건의 극히 일부만 현실로 나타났다. 이어지는 2편에서 과연 그가 어떤 현실을 마주하게 될지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그는 이제 겨우 한 발을 떼었을 뿐이다. 1편에서는 가진 것을 모두 잃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으며, 우리는 폴이 어떻게 자신의 힘을 각성하고 메시아로 다시 태어날지에 대한 예고(예지)만을 살짝 보았을 뿐이다. 아마도 2편은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1편에서의 예지몽들이 2편과 어떻게 연결될지 기대감이 드는 이유다. 다만, 폴이 갖고 싶어 하던 ‘사막의 힘’ 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 다시 2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2년 후에도 아라키스의 사막과 폴의 매력이 여전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