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쟈 Feb 06. 2022

<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심윤정, 한겨레출판, 2002년 초판 발행)






심윤경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으로 어린 소년 동구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겪었던 일을 담고 있다. 동구네 가족은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1977년에 새로 태어난 동구보다 6살 어린 여동생 영주 이렇게 다섯이다. 인왕산 중턱에 위치한 산동네에서 나고 자란 동구는 난독증이 있어 글을 읽지는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 속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이다. 


엄마가 동생을 낳는 날, 동구는 높은 찬장에서 보온병을 꺼내어 따뜻한 보리차를 챙긴다. 텔레비전에서 아이 낳는 장면에서 산파가 뜨거운 물을 찾는 것을 기억하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동구는 늘 어른들 사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이런 동구의 마음을 알아주는 가족은 없는 것 같다.


동구의 할머니는 되는대로 욕을 지껄이고 며느리를 내쫓을 일념으로만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별 다른 잘못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동구 엄마에게 욕을 하고 자존심을 무참히 깎아 내린다. 책을 중반 넘어 읽을 때까지도 나에게 동구 할머니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동향에서 이사 온 모실 할머니와의 대화 내용과 동구가 환상처럼 다시 만난 박은영 선생님의 대화 부분에서 할머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남편 잃고 자식 둘을 앞세우고 오로지 아들 하나만을 자식처럼 남편처럼 의지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고향집과 땅을 모두 팔아 자식 집 사는데 보태고 할머니 이름으로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아들 하나가 그녀의 평생에 남은 것이었다. 그런 아들이 결혼하고 새로 며느리를 보았을 때, 처음이라 서툰 살림을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며느리에게 큰 소리도 쳐 보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새로 온 며느리는 야무진 손으로 살림도 깔끔하게 하고 요리 솜씨도 좋아서 뭐 한마디 보탤 게 없었다. 하루아침에 내 자리에서 내쳐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내 살림이었는데 바로 다음날 뒷방 늙은이가 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동구 할머니에게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서라도 어떻게든 며느리를 쫓아내고 다시 원래 자리를 차지하고 싶을 뿐이었을 것 같다. 


동구 아버지는 어머니와 아내의 고부갈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약한 사람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아내와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대화를 통해 이해하고 설득할 자신이 없으니 그저 손쉽게 상을 뒤집어엎어서 갈등을 종료시키려고 한다. 갈등을 더욱 큰 갈등으로 덮으려는 어리석음으로 시간이 갈수록 가족 간 갈등은 더욱 심각해질뿐이다. 


동구 주변에서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동구의 3학년 담임선생님인 박은영 선생님뿐이다. 그녀는 동구의 마음속에 숨은 아픔을 눈치채고, 동구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꾹꾹 눌러 놓았던 감정을 꺼내 보이게 한다. 슬픔과 아픔, 부러움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덮을 수 있을 만큼의 큰 사랑.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도 하지 못한 이해와 용서는 어린 동구의 몫으로 남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동구가 좋아하는 삼층집의 ‘아름다운 정원’은 인위적인 공간이 아니다. ‘희부연 겨울 햇살이 안개처럼 정원을 두르고 있었다. 조심스레 정원으로 들어서자 나와 정원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처럼 감 싸돌았다. 이곳에 가져다 놓으면 뭐든지 다 아름다워지는 걸까? 잘 살펴보면 삼층집 정원이라고 해서 값비싼 고급 나무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모퉁이에는 흔해빠진 수수꽃다리도 있고, 전혀 쓸모없이 억세기만 해서 산에서 마구 뽑아버린다는 아까시나무도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흔한 것이건 귀한 것이건 이곳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데에는 다 같이 한몫을 하고 있었다.(P311)’ 이렇듯 귀한 나무 흔한 풀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있으면서도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장소가 되었다. 


‘대문이 닫히면서, 아름다운 정원의 정경이 차츰 좁아지더니 마침내 가느다란 광채의 선이 되었다가, 갑자기 시야에는 녹슨 철문의 모습만 들어왔다.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P315)’ 동구가 문을 닫으며 기억 속에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귀여운 동생과의 추억, 깊이 의지하고 믿었던 선생님과의 추억, 이렇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렇게 그곳에 남겨두는 것이다. 문을 닫아 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정원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영원히 이별하더라도, 그래서 더는 볼 수 없더라도 동구의 유년 시절의 추억이 그렇게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자본주의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