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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Feb 05. 2023

코케로 가는 길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리뷰




개봉: 1991년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파해드 커라드먼드, 부바 베이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촬영 장소인 코케에 큰 지진이 나서, 영화에 출연했던 아이들이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감독이 직접 코케를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가는 실제 상황을 담은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지진이 난 다음날 결혼을 한 신혼부부의 모습으로 잠깐 등장한 테헤레와 후세인에 대한 영화,  [올리브 나무사이로]를 보고 나서, 사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도록  촬영 것이며, 영화 속에 등장한 사람들 모두가 현지에서 캐스팅한 배우라는 것, 심지어 코케로 운전해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지진이 났을 때의 상황을 질문하는 사람조차 키아로스타미 감독 본인이 아니라, 감독 역할을 맡은 배우라는 점에서 놀랐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상황들이 사실은  감독에 의해 연출된 장면들이라니….






영화 속 장면들은 다큐멘터리로 인식하고 보는 경우와 감독의 의도대로 연출된 장면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그 느낌이 많이 달랐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등장했던 사람이 우연히(사실은 키아로스타미 감독에 의해 연출된 우연이겠다.) 차에 동승하면서,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해야 예술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더 늙고 추하게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는 말을 하는 장면은 다큐멘터리로 생각하였을 때는 단순히 한 노인의 불평을 담은 경험담으로 보였지만, 이 장면들이 모두 연출된 장면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보면, 영화를 대하는 감독의 자세를 드러내는 장면으로도 보였다.   





그들이 코케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이 계속되는데,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어디에서 막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갈림길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코케로 가는 길이 어디냐고, 코케까지 갈 수 있냐고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씩 다르다. 그렇지만 대체로 어느 지역까지는 차로 접근이 가능하지만 코케까지 차를 타고 가는 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길이 막혀서 갈 수 없을 거라는 부정적인 대답을 들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아주 원대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이 찍은 영화에 출연한 두 배우가 지진에도 무사한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이유뿐이다. 하지만 결국 두 아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장면은 우리가 보지 못했기에,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코케로 가는 여정 그 자체가 아니었던가 싶다. 





코케로 가는 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장면은 자동차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사람들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챙길 수 있는 물건을 찾고 쓰러진 잔해를 치우며 복구하려고 노력한다.  무너진 집터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사람들과 무거운 짐을 지고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코케로 가는 길을 묻는 감독에게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준다.





날카로운 경적소리와 무너진 잔해를 치우는 무기질의 소리만 가득한 공간이 계속 이어지던 중, 감독은 소변을 보기 위해 잠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올리브 나무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햇빛에 바싹 메마른 흙먼지만 날리던 건조했던 공기는 지저귀는 새소리로 어느새 촉촉해진다. 잠시 후에 들리는 아기의 칭얼거리는 울음소리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던 공간을 순식간에 생명력으로 가득 채운다. 무수히 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모두 무너트린 대지진의 재앙 속에서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은 다른 모든 일들을 잠시 잊게 만든다. 이 마법과도 같은 순간은 텅 비어 있는 줄 알았던 공간을 순식간에 생명의 소리로 가득 채운다. 





그들은 코케로 가는 여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들 모두는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 상황에 주저앉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지진은 많은 것을 파괴했지만 그들의 ‘생’ 그 자체는 파괴하지 못했다. 무너진 집터에서도 따뜻한 한 잔의 차를 꿈꾸며 주전자를 흙더미에서 파내고,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서 안테나를 설치한다. 지진은 40년에 한 번이지만 축구는 4년에 한 번이니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재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해 내야 하는 ‘좌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다가 마주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며, 지나가는 일 중 하나로 보는 것 같은 시선이 어쩐지 나에게는 위안을 준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 영화의 제목이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가 아니라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인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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