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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Mar 06. 2023

황금과 음악으로 가득한 광란의 파티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리뷰



개봉: 2015년

감독: 조지 밀러

출연: 톰 하디(맥스), 샤를리즈 테론(퓨리오사), 니콜라스 홀트(눅스), 휴 키스 번(임모탄), 로지 헌팅턴 휘틀리(스플랜디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드 맥스를 보기도 전에 다른 영화의 차량 추격씬과 매드 맥스를 비교하는 글을 여러 차례 접하게 되고, 매드 맥스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야?라는 궁금증에 몇 번 보려고 시도는 했으나, 정작 그 유명한 추격 장면까지 가기도 전에 보기를 중단하는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머리가 둘 달린 도마뱀을 생으로 씹어 먹는다던가, 자동차가 낙엽처럼 도로 위를 구르는 모습은 나에게는 별다른 흥미도 즐거움도 없는 장면들이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도와 실패가 반복되던 중, 꼭 봐야만 하는 상황이 강제되고 나서야 나는 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질주하는 차량들의 숨 막히는 액션씬과 CG의 도움을 최소화하여 더욱 현실감을 높였다는 영화 속 장면들이 대단하긴 했지만, 나에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 것은 음향이었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화 속 살짝 어긋난 듯한 리듬이 숨 막히게 긴장된 순간들에 약간의 숨통을 열어주는 느낌이 좋았다.



음악 영화가 아님에도  신기하게도 영화 속 사운드에서 음악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오프닝 시퀀스에서 맥스의 내레이션이 끝나고, 무엇인가 위험을 감지한 맥스가 빠른 손놀림으로 자신의 물건을 챙겨서 차에 올라타는 장면에서 그의 빠른 손놀림이 주는 박자감은 바로 음악이 시작된다는 신호이다. 또한 그의 차 앞에 달린 모터는 굉음을 내면서 빠르게 회전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회전하는 CD처럼 보였다.



그러한 인상이 나를 지배하여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서 들리는 소음들도 마치 타악기의 소리처럼 느껴지고, 엔진의 소음도 악기의 소리로 들린다고 생각될 때쯤 빨간 내복을 입은 기타맨이 등장했다.


그의 존재감이 어찌나 큰지 그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주변에서 차가 불타고 구르고 난리가 나도 나의 시선은 그의 기타 연주에 머물러 있게 되고, 나는 마치 어떤 뮤지션의 열정적인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인 양 그의 연주에 푹 빠져서 보게 되었다. 퓨리오사의 과거를 담은 프리퀄 영화가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그 영화에 이 기타맨의 서사도 함께 담기게 된다면 나는 아마 그 영화를 보러 가게 될 것 같다.






영화 속 질주 장면 중에서 내가 가장 매혹된 장면들은 눅스가 탄 차가 사막의 모래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정확히는 모래 바람에 날려 하늘로 올라간 차들이 폭발하고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종이 인형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모습을 눅스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신나는 얼굴의 눅스가 “What a lovely day!”라고 외치자 그의 차에 달린 새 머리 모양의 장식물이 마치 그에 동의하여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는 것처럼 흔들리던 장면이다.



하늘에서 폭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하늘을 수놓는 폭죽처럼 보이고, 모래 바람에 붉어진 하늘도 ‘펑’, ‘펑’ 울리는 소리도 정말 축제의 한 장면 같아 보이기도 한다. 헤비메탈 음악으로 가득한 대환장파티의 한 장면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축제가 끝난 후 황금빛 모래와 한 덩이가 되어 있던 맥스가 천천히 머리를 들어 올리는 장면도 나를 확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 모래 덩어리가 맥스라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고, 반짝이는 금가루처럼 부서지는 모래더미의 아름다움에 눈이 사로잡혔다. 모래가 서서히 떨어져 나가고 맥스의 얼굴이 드러났을 때 그의 기괴한 입마개와 함께 그는 황금으로 된 조각상처럼 보였다. 눅스의 말에 따르면 ‘마치 크롬처럼 반짝거린다’는 임모탄의 아내들과 비슷하게 그의 육체는 그 순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에게는 ‘피주머니’에서 ‘주인공’으로 위치 바꿈 하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의외였던 부분 중 하나는 임모탄의 죽음의 순간이다. 일반적으로 게임이나 영화에서 최종 보스를 죽이는 것은 꽤 힘든 과정을 거치게 된다. 보통은 최종 보스의 죽음으로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복수도 완성이 되기 때문에 최종 보스의 죽음의 순간은 가장 클라이맥스로 그려진다. 그런데 그런 것에 비해 임모탄의 죽음은 참으로 갑작스럽고, 순식간에 처리되었다. 만약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잠깐 한눈을 판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임모탄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임모탄의 첫 등장 장면에서 그가 제왕의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은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하게 보여주었으나, 정작 그의 죽음의 순간은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에 비해 조연 중 하나인 눅스의 죽음은 아주 자세하게 묘사된다. 시타델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안전을 위해 맥스가 운전하는 차로 이동해야 하는 케이퍼블(맥스의 아내 중 빨간 머리 여자)은 망설이는 듯 눅스를 쳐다보고, 눅스는 차를 고정시켜 놓고 자기도 금방 넘어갈 테니 걱정 말고 가라고 대답을 하는데, 이러한 눅스의 표정은 그의 마지막이 임박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결국 예상대로 눅스의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고, 그는 케이퍼블에게 손을 뻗으며 ‘나를 기억해 줘’라는 유언을 남기고, 케이퍼블도 이에 응답한다. 엄청난 폭팔음과 화염에 휩싸여 눅스가 불타오르는 순간  그의 운전대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가 암전하는 형태로 편집된 장면은, 그 장면만으로 보았을 때는 주인공의 죽음에 못지않다.





이 영화에서 의외였던 다른 부분은 매드 맥스가 그리 ‘미친’ 사람처럼(그는 미쳤다기보다는 신경쇠약에 가까워 보였다.) 보이지 않았으며, 시타델의 완전한 주인이자 모든 이들이 경배하는 임모탄과 그의 자식들은 나의 상상보다 매우 연약해 보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폐에 문제가 있는 듯 산소호흡기가 있어야만 생활이 가능했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거나, 지능이 낮아 보였다. 대머리에 상의는 탈의하고 하의만 입은 그들의 모습은 하얀 분까지 바른 모습으로 화면에 나타나 덩치만 커다랗게 자란 기저귀 찬 아기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서 기이했다. 임모탄의 아들이 어머니의 우유(모유)를 마시는 장면에서도 비슷한 상상을 하게 한다.



산소마스크만 제거해도 당장 생명에 위협을 느낄 것 같은 연약한 육체를 가진 그들이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강하기 때문에 권력을 얻은 것이 아니라 권력을 얻었기 때문에 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여성인 퓨리오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죽음의 순간, 그리고 최종 보스를 죽이는 순간으로 보았을 때, 퓨리오사가 진짜 주인공이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의견에 따라 주인공이라고 하자), 임모탄의 아내들이 ‘나는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라고 주장하는 부분을 이유로 페미니즘 영화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나는 이런 시각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퓨리오사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맞긴 하지만, 여성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의 역할은 여성이 아닌 고향을 그리워하고 귀향을 원하는 남성으로 대체하여 상상해 보아도 어색함이 없다. 임모탄의 아내들은 납치 강간범에게서 탈출하고자 한 것이지 그와 가정을 이룬 것이 아니다. 범죄자에게서 탈출한 것을 보고 가부장제를 전복시켰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들은 페미니스트라기보다는 독재자를 제거한 혁명가에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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