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클로즈] 리뷰
개봉: 2023년
감독: 루카스 돈트
출연: 에덴 담브린(레오), 구스타브드 와엘(레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초반 꽃이 활짝 핀 들판을 내달리는 어린 두 소년(혹은 소년과 소녀로 보이는)은 참으로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막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우면서 쉽게 상처받을 것처럼 여리게 보이는 두 아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영화들은 캐스팅된 배우의 이미지가 영화의 서사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영화 ‘에에올’에서 멀티버스 안에서 다양한 역할로 나타나는 에블린을 배우 양자경의 과거 배역들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양자경이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에블린을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지금의 에블린과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그렇다면 루카스 돈트 감독은 어떤 기준으로 두 아이를 캐스팅했을까?
나는 영화 초반에 레오의 성별에 혼란을 느꼈다.
그것은 아름다운 금발과 예쁜 눈을 가진 레오의 외모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레미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눈빛이나 대화 내용, 동작 등이 소년보다는 소녀에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장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하는 시기인 사춘기 소년임에도 서로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둘의 모습을 보며, 단순한 친구가 아닌 어린 연인의 관계로 보이기도 했다. 특히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레미의 방은 가까이 붙어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두 아이의 볼에 붉은빛을 반사하여, 서로를 바라보는 둘의 뺨에 홍조를 띤 것처럼 보이게 했다. 똑같은 자세로 가까이 붙어서 잠든 두 아이의 모습은 단순한 친구 이상의 관계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감독은 어째서 이렇게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쯤, 두 아이는 방학을 마치고 새 학교에 진학한다. 내가 느꼈던 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은 학교 친구들도 똑같이 느끼게 된다. ‘서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레오가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서 둘의 관계에 서서히 균열이 발생한다. 두 아이는 자신들이 만든 세계에서는 행복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학교라는 사회는 그들의 관계를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선택을 해야 만 했다. 레오는 더 이상은 ‘실체가 없는 적’을 피해서 도망치는 둘만의 놀이를 지속할 수 없게 되었고, 같은 침대에서 몸을 꼭 붙이고 함께 잠들던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장난처럼 시작된 몸싸움은 어느새 불편한 감정이 섞여 들고 더 이상은 전과 같이 지내기가 힘들어졌다. 학교생활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친구가 생길수록 레오와 레미는 멀어져 간다. 레미가 없는 공간을 늘려가는 레오와, 그런 레오가 야속하게 느껴지는 레미는 쏟아지는 눈물을 꾹 눌러 참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눈물 대신 주먹을 내지르며, 그 핑계로 눈물을 흘리던 레미는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레미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영혼의 단짝이던 레오를 잃은 이후에 죽음을 선택하였다는 것에서, 레오의 부재가 죽음의 원인 중 하나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단단해 보였던 레오와 레미의 관계가 달라진 이유가 동성애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었다는 점에서, 영화 초반 둘의 관계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책임을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레미의 죽음 이후 레오의 불안한 듯한 시선은 레미의 어머니를 향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 시선은 나를 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초반의 영상들은 레미의 죽음에 대해 관객들에게 공동책임을 묻기 위한 장치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레미의 죽음 이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레오의 모습이 나에게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레미의 사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욕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것을 유독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어쩌면 이전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하게 된다. 영화 속 레미의 엄마는 아이들과 밀접한 관계로 보인다. 친아들 레미와 가슴으로 낳은 아들 레오와 함께 누워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 저녁식사 때 아이들과 파스타를 먹는 장난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의 마음을 세세하게 알아주는 좋은 엄마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런 엄마도 아들의 마음속에 드리운 그늘을 알아채지 못했다. 레미가 보내는 위험 신호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상황에서 레미의 어머니는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레미의 죽음이라는 사실 앞에서 각자의 죄책감을 무겁게 드리운 채 레오와 레미의 어머니는 서로를 바라본다.
성장 과정에서 친구와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사실 레오의 행동 자체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그 사건 이후 레미의 일상을 너무나 자세히 들여다본다. 마치 레미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마땅하다는 듯이 레미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을, 레미의 장난감을 만지는 손끝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마침내 그가 죄를 자백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런 지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불편해졌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레오의 시선의 끝은 항상 레미의 어머니에 닿아 있고 그 어머니가 가졌을 무거운 죄책감과 상실감이 나에게 너무나 가깝게 느껴져서 불편했던 것 같다. 다시 피어난 꽃 밭 위로 가볍게 달리는 레오의 모습은 영화 앞부분에 레오와 레미의 질주 모습과 겹쳐지면서 레미의 부재를 더욱 강하게 부각한다. 아름다운 꽃밭에서 뒤를 돌아보는 레오의 시선에서 지금은 없는 레미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