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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Aug 13. 2023

어쩐지 위태로운.

영화[애프터썬] 리뷰


개봉: 2023년

감독: 샬롯 웰스

출연: 폴 메스칼(캘럼), 프랭키 코리오(소피), 실리아 롤슨-홀(어른 소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딸과 아빠의 일주일간의 여름휴가,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불편함을 느꼈다. 그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데,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서 나타나는 긴장감이 이유인 것 같다. 사춘기 딸과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젊은 아빠가 단둘이 여행을 떠난다? 거기에다 아직은 어린아이로 보이는 11살 소피의 시선에 보이는 성적인 장면들, 그리고 여름휴가 장면들 사이사이에 편집된 눈부시게 점멸하는 조명 속에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과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멈춰 서서 눈을 감고 있다가 정면을 응시하는 여성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 나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런 설명도 이유도 없이 러닝타임 내 점멸하는 조명 속 춤추는 사람의 영상을 반복해서 보아야 했으며, 영화가 거의 끝날 때가 되어서야 그 장면들이 어떤 의미인지 대강 짐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애프터썬 스틸컷


점멸 영상 속 여성이 비디오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영상은 소피가 아빠와 함께 여행하면서 촬영했던 영상이다. 캘럼이 샀던 카펫과 비디오카메라는 그 성인 여성이 바로 소피임을 알려주고, 소피가 그 영상을 보던 날이 소피의 서른한 번째 생일날이라는 정보 또한 제공된다. 튀르키예 여행 기간 중에 캘럼의 서른한 번째 생일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른이 된 소피가 캠코더 영상을 확인하는 장면은 아빠와 같은 나이가 된 딸이 그 나이의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마음이 어떤지 추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점멸하는 영상 속 춤추는 아빠를 가만히 안아주는 소피의 모습은 아빠를 위로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소피의 과거 여행 영상 사이사이에 현재의 (어른이 된) 소피의 얼굴이 교차해서 등장하는 것으로 편집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점멸하는 영상이 없었더라도, 이야기의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보여서 나는 그 점멸 영상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애프터썬 스틸컷


영상은 대략 0.5초 간격으로 번쩍이는 조명이 반복되고 있어서, 조명이 꺼져있는 0.5초 동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조명이 켜지는 그 순간에만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연속적인 사건을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기억과 기억 사이에 빈 공간이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채워 나가게 되는 것이다. 마치 점멸하는 조명이 꺼진 순간의 동작을 조명이 커진 부분의 영상의 조합으로 연결하여 기억을 채워나가는 것과 같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조명이 켜진 그 짧은 순간들 뿐이라는 점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소피가 어린 시절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어서야 짐작하고 마음으로 안아준다는 따뜻한 결말로 볼 수도 있으나, 나에게는 눈을 찌를 듯이 날카로운 조명은 포근한 포옹보다는 날카로운 통증을 떠오르게 했다. 사랑과 위로의 나눔 보다는 고통의 대물림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어떤 일들은 차라리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지 않을까. 


애프터썬 스틸컷


캘럽의 사정이 어떤지 영화 속에서 명확하게 설명되고 있지 않지만 카페 사업을 하다가 사업이 어려워져서 사업을 접었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소피를 낳았지만 현재는 이혼하고 혼자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금전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소피와 함께하는 여행이 어쩌면 조금은 무리를 한 여행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소피는 여행을 즐거워하지만 소피의 눈에는 엄마 아빠와 아이가 함께 가족여행을 오거나 연인들의 여행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여행 중인 둘의 모습은 느긋하게 즐기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이상하게도 종종 불안감이 느껴진다. 소피는 소녀와 여성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보인다. 성인 남성과 어울려 놀거나 언니들의 연애 이야기를 듣고 'girl’s talk' 과 같은 잡지를 읽는 소피의 모습을 아빠는 알지 못한다. 위험하게 파도치는 밤바다에 뛰어들거나,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 있거나, 알몸으로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우는 아빠의 모습을 소피는 알지 못한다. 


애프터썬 스틸컷


캘럼이 관심을 가지고 구매한 양탄자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양탄자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알 수없다. 캠코더에 녹화된 영상을 보더라도 그의 우울증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성인이 된 소피는 캠코더의 영상을 여러 번 리와인드하며 녹화된 영상과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건들을 맞춰보려고 하겠지만, 정말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점멸하는 조명의 어두운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저 짐작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캘럼과 같은 나이가 된 소피도 어쩌면 캘럼과 비슷하게 우울증을 겪으며, 그 시절 아빠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창백한 조명 아래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춤추는 사람들 속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의 캘럼을 껴안으며, 이제 막 부모가 된 소피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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