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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Nov 19. 2023

단테 신곡 그리고 소나타

지옥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건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은 지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성큼성큼 내딛지 못하고 누군가 붙잡아줘야 할 듯 흔들리며 위태롭게 내려간다. 꾸밈음이 그렇게 부축해 주고 있고, 그 계단은 다시 한번 이어진다. 리스트는 단테 소나타의 서막을 이렇게 열었다. Andante maestoso 가 자꾸 An Dante Maestro로 읽히는 건 내가 베아트리체만큼이나 단테에 빠져 있기 때문이고, 나에게는 이 악보가 코메디아의 한 페이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옥문을 열고 아래로, 아래로 침잠해 간다. 절규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지옥, 제1곡, 1~3행)


    1,300년 3월 25일 부활절 목요일 밤. 나이 서른다섯, 인생길 반 고비에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늑대, 사자, 표범과 마주친다. 두렵고 도망치고 싶은 이들은 탐욕, 교만, 정욕을 상징하는 동물로 인간이 죄를 짓게 하는 3가지 악의 본성이기에 인생에서 끊임없이 마주치는 유혹들이다. 그들 앞에서 당황하던 중 그가 과거에 존경했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났고, 짐승들을 피하기 위한 길로서 지옥과 연옥의 순례를 시작한다. 사실 베르길리우스는 고뇌하는 단테를 구원하기 위해 베아트리체의 부탁을 받았고, 베아트리체 또한 그의 순례를 위해 신의 은총을 청하였음을 후에 알게 된다. 그녀는 단테를 이끌만한 적임자로 그가 존경해 왔던 스승 베르길리우스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 - 1321, 본명 Durante degli Alighieri로 Dante는 그의 애칭)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으로 시인이자 사상가, 정치가이며 어릴 적부터 수사학, 철학, 논리학, 수학, 천문학, 음악, 기하학 등을 배웠다. 당시 학문의 영역을 볼 때 그냥 모든 걸 배우려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2유로 화폐에 새겨진 그의 초상이 그 위상을 말해주고 있으니 어느 날 당근 마켓에서 인디언이 그려진 유럽 동전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 그게 단테라고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작품 신곡(Divina Commedia)서양 문학사의 한 획을 그으면서 그를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로 만들어준 작품이 되었다. '코메디아'라는 단어가 주로 희극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당대에는 넓은 의미로 비극, 희극 모두를 다루고 있다 하니 꼭 희극이라는 해피앤딩을 생각하며 이 작품을 읽어 내려갈 필요는 없을 듯하다. 물론 지옥에서 시작해 천국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희극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코메디아는 총 100곡으로 구성된 한 편의 대 서사시로 지옥, 연옥, 천국 3편의 구성으로 지옥편 34곡, 연옥 편 33곡, 천국편 33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제1곡은 신곡 전체를 조망하는 서곡이고 아직 지상에 있어 순례를 시작하기 전이기에 사실상 지옥, 연옥, 천국 모두 딱 33편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본다. 짐작했듯이 단테는 집착할 만큼 3이라는 숫자를 중요시했고 숫자 3을 통한 삼위일체의 사상을 작품에 투영하려는 노력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는 모두 3행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행은 11음절이므로 각 연은 모두 33음절로 되어 있다.


《나를 거쳐서 길은 황량의 도시로, 나를 거쳐서 길은 영원한 슬픔으로, 나를 거쳐서 길은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나의 창조주는 정의로 움직이시어, 전능한 힘과 한량없는 지혜, 태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드셨다. 나 이전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뿐이니, 나도 영원히 남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 제3곡, 1~9행)


    지옥의 입구에서 선언한다. 모든 희망을 버리라고. 그 희망이 없는 공간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에는 희망의 상징인 별이 없다. 제우스와 미노스에 의해 판결을 받은 죄인들은 그 엄중함에 따라 깊이를 달리하며 떨어진다. 지옥의 모습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몸통이 두 갈래로 갈려있고, 자기의 머리통을 들고 있거나, 불구덩이 혹은 무거운 바위에 깔려 있거나 피로 넘실대는 호수에 간신히 머리만 내밀고 있는 등 썩은 악취가 풍기는 잔혹한 모습과 그 고통이 영겁의 시간 동안 계속된다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상상하는 이로 하여금 몸서리치게 만든다. 그들에게는 이 고통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영혼의 완전한 죽음이 그들의 희망이겠지만 그런 희망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한 번 그리면 지우기 힘들 만큼 뇌리에 깊이 새겨지니 당시 사람들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된 모습에 경악하였고 그래서 그가 진짜로 지옥을 틀림없이 다녀왔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문학, 영화 등의 예술이라는 이름에서 지옥의 이미지를 각인하는데 큰 이정표를 새겼다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을 듯하다.


    지옥의 세계는 총 9단계로 그려져 있다. 지옥의 문에서 시작하여 아케론 강을 건너, 제1층 변옥(림보), 제2층 음욕의 지옥 - 제3층 식탐의 지옥 - 제4층 탐욕의 지옥 - 제5층 분노의 지옥 - 제6층 이단의 지옥 - 제7층 폭력의 지옥 - 제8층 사기의 지옥 - 제9층 배신의 지옥 까지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어두워지고 더 참혹해진다. 어떤 죄를 더 무겁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아무런 절규도 고통도 없는 장소인 변옥은 사실 지옥이라기보다는 지옥의 입구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나 은총을 받지 못한 그리스, 로마의 성인들과 사상가들이 여기에 있다. 고대인이거나 종교가 다르거나 없었던 사람,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지만 죄를 짓지는 않은 성인들, 아기들이다. (그럼 네안데르탈인도 여기 있을까라는 쓸데없는 생각... 은 여기서 그만)


    코메디아를 읽으면서 어려운 점은 수많은 사상가, 철학자, 정치인들이 등장하고 여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까지 불러들였는데 여기어 더하여 많은 은유와 상징적인 표현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배경지식이라는 것 또한 단순히 누구인지를 아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그가 주장하는 게 무엇이었으며 신화의 인물은 그들의 문화에 어떻게 흡수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흥미는 한 번 더 반감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너무나도 유명한 책이지만 다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작품임에도 등장인물들 간의 연결고리에 대한 난해함으로 소위 중요한 고전이면서 필독서에 포함시키지 못한 이유도 되겠다.  


    지리적으로 서양의 정 반대 동쪽 끝 나라에 살고 있는 나, 대한민국 네이티브 한 사람이면서 한국사와 단군 신화도 잘 설명 못하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와 당시 정치 사회가 버물려진 코메디아를 이해하는 방법은 "왜"라는 질문으로 단테를 쫓아가보는 것이다. 단테는 왜 그들을 지옥의 입구에 두었을까? 연옥 1층이 아닌 지옥의 입구에 변옥이라는 세상을 만들어 최소한의 배려를 베풀었을까. 신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몸을 버리고 (자살), 신의 율법을 어기고(배신) 탐욕을 부리며, 남을 괴롭히고 해치는 전쟁을 재미 삼아하는 폭군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저주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착하게 살지 않은 사람'이라는 세상 보편적인 가치에 반하였다고 여겨지기에 이들에게 벌을 내리는 통괘함도 있지만 분명 단테 본인이 처한 환경과 경험도 분명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옥의 마왕 루시퍼를 마주하는 배신의 죄는 어쩌다가 지옥의 가장 깊은 곳 얼음 속에 파묻혀 있게 되었을까? 단테 자신이 피렌체에서 배신으로 쫓겨나게 된 경험이 분노로 이어졌고 그 결과가 여기에 나타났을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라 믿는다.


    사람들은 신을 향한 노래에서 신의 배반, 저항, 반역은 가장 어두운 지하 끝에 있어야 함은 진리로 받아들였고 절대적인 명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명제는 그동안 쌓아 올린 보편적인 가치를 더욱더 공고히 다지는데 기여를 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어느 죄를 얼마나 깊이 넣을지, 그리고 그와 연결된 수많은 죄인들을 소환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주석과 함께 차근차근 곱씹어본다. 마치 일기장을 쓰면서 언젠가 누군가가 볼 것이라는 걸 기대하고 세상에 통쾌히 알릴 것이라는 무서운 계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타락하고 무지한 인간들에게 신의 용서를 구하는 길로 인도하는 것은 신을 찬미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죄가 더 깊이 있는지는 호기심을 넘어 나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과연 내가 살 길은, 이미 육신은 죽어 남은 영혼에게 축복을 내리기 위해 지금까지 무지했던 자신의 죄를 속죄할 길은 없는 것인지를 되묻게 만든다. 코메디아는 신을 노래하는 곡이 아니라 인간에게 고하는 노래인 것이다. 그 의미를 이해하면 속죄를 받을 자격이 있을 것이요, 이를 무시하면 그 결과는 참혹하리라는 노래.  




《이제 나는 인간 영혼이 정화되고, 천국에 오를 준비를 하는, 이 두 번째 왕국을 노래하려 한다.》 (연옥, 제1곡, 4~6행)


    마침내 두 순례자는 루시퍼의 다리를 기어올라 긴 동굴을 도망치듯 뛰어나와 지옥을 탈출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맨 처음 본 건 빛이다. 별빛이다. 별이 있고 바다가 있고 태양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제 연옥의 산으로 향한다. 죽기 전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용서를 구한자라면 지옥은 면하게 해 주었지만 죄를 완전히 씻기 위한 길은 여기서부터 시작인 샘이다.


    연옥의 개념은 사실상 단테가 창조해 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그만큼 모호했던 부분을 급진적이면서 명료하게 풀어내었다. 연옥(煉獄 - 달굴 련, 감옥 옥)은 참회한 죄인의 정화할 수 있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점이다. 감옥이라는 한자어가 붙어 있지만 감옥의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게다가 일본어로 れんごく 렌코쿠는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인데... 이게 여기서 연유한 것인지는 좀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본래 이탈리아어 '정화'라는 의미에서 연유한 것인데 아마도 일본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고 최초로 연옥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한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러자 그는 칼 끝으로 내 이마에 일곱 개의 P자를 그었다. "들어가거든 이 상처를 씻어 버려라!"》 (연옥, 제9곡, 112~114행)

《그가 거룩한 문을 뒤로 밀어 열면서 말했다. "들어가라! 그러나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밖으로 다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연옥, 제9곡, 130~132행)


    연옥으로 올라온 두 순례자는 희망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왔다. 여기서부터는 별을 볼 수 있는 곳이며 누구라도 죄를 씻겨낼 수 있고 구원을 받으면 천국에도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누군가의 기도를 받으면 좀 더 빨리 죄를 씻어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단테는 지옥에서 보았던 죄를 더 이상 짓지 않고 이제부터 더 열심히 받들고 기도하고 선행을 쌓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였고 현세 사람들에게 더 잘 들리도록 소리치는 듯하다. 신은 지옥에 있는 누구라도 꺼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인간의 기도는 연옥의 영혼까지만 힘을 미친다.


    이제 연옥의 순례를 허락받은 순례자는 회개를 상징하는 계단을 올라 연옥의 앞에 도착했다. 앞에서 천사는 단테의 이마에 7개의 P자를 새기게 된다. P 글자는 연옥의 산을 올라가면서 오만, 질투, 분노, 태만, 탐욕, 과식, 음욕의 죄를 사함을 받게 되면서 하나씩 지워지게 된다. 그렇게 정화된 단테의 육신은 마침내 상쾌한 기분으로 베아트리체에게 인도되어 천국으로 향할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되며 오직 정화에만 힘써야 하기에 뒤를 돌아봐서는 안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이미 우리를 떠나 홀로 사라졌다. 더없이 따스한 아버지 베르길리우스여, 나의 구원을 위해 영혼을 맡겼던 베르길리우스여.》 (연옥, 제30곡, 49~51행)


베르길리우스는 떠났고 인간의 행복이 놓여 있는 산 정상에 올라 이제 베아트리체에 이끌려 천국의 문으로 향한다.


물결치는 트레몰로는 분명 하늘에 수 놓은 별빛이리라. 그 희망과 구원의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그 빛을 흠뻑 받으며 이제 천상으로 올라가 그 영광을 누리리라.




    국은 빛이다. 빛은 힘이며 지혜이며 사랑이다.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건 바로 빛이다. 그리고 그가 바로 빛이다. 빛과 함께 그곳에는 음악도 있다. 천사의 노래다. 이제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따라 천국으로 들어간다.


    천국은 제1천 월광천에서 시작하여, 제2천 수성천, 제3천 금성천, 제4천 태양천, 제5천 화성천, 제6천 목성천, 제7천 토성천, 제8천 항성천, 제9천 원동천 그리고 마지막 지고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행성의 존재와 거리에 대한 천문학적 지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천국은 빛으로 가득하고 그 아름다움은 언어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정확히 언어로 표현했다. 베아트리체의 역할은 신의 대리자의 역할과 맞닿아 있는데, 베아트리체를 죽어서도 다시 보고 싶은 단테의 욕심 그리고 마땅히 천국에 있어야 할 것이라는 소망이 함께 묻어나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이 흠모했던 여인의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를 대신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평론도 있다. 바로 성모 마리아다. 마리아를 사모한다는 건 신성한 율법에 어긋나기에 이를 상징적으로 연결하여 진심으로 마음에 품고 있었던 베아트리체와 마리아를 동시에 흠모하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내려고 했다는 해석이다. 비록 천국의 명을 받든다는 허구를 창조한 건 맞지만 분명한 건 대중에게 인지도가 없이 개인적인 감정의 대상임에도 천국편 전면에 내세우는 건 결국 그녀에 대한 깊은 사랑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물론 코메디아 이후로 그녀를 모르는 이탈리아인은 없을 것 같다.)


《저는 오직 한 분을 믿습니다. 영원하신 유일자 하느님은 다인의 사랑과 소망 안에서 돌고 있는 모든 하늘들을 당신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시면서 움직이십니다. (천국, 제24곡, 129~132행)


《이것이 제 신앙의 원천이며, 곧이어 살아 있는 불로 퍼지고 하늘의 별처럼 내 정신에 빛을 비추는 바로 그 불꽃입니 (천국, 제24곡, 145~147행)


제2 주제 (103~105마디), 연주하면서 지옥을 경험하게 하려는 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에게 어떤 등대가 되고 있을까? 이미 천사와 악마, 빛과 어둠, 루시퍼, 인페르노, 세라핌... 문학의 영향은 이미 대중에 깊이 들어왔고 수많은 모티브를 주어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어지러운 주석을 살펴가며, 인물들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얻은 결론은 인간으로서 내가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인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작품이 그 이후의 사상과 문화에 녹아들어간 영향을 찾다 보면 그 가치는 더욱 분명해지고, 반대로 표현하면 그렇게 영향을 미쳤기에 칭송받게 되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가치를 인정받았으니 고전으로 살아남았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코메디아에 주목하는 첫 번째는 그리스도 사상에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여러 신들이 한 작품에 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뭔가 불편했고 갈등이 있을 것 같은 불길함이 있었으나, 이 모든 것을 하나님 아래에 두면서 단테는 이 둘을 멋지게 융합하였다. 서양문화의 근간인 그리스 로마문화와 종교로서의 기독교, 그리고 BC 이전의 서양철학과 천문학 등의 과학까지를 버무린 융합을 보여주며 르네상스의 시대를 부응하기도 하였다. 르네상스가 무엇인가? 중세와 근세를 이어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사상, 예술 정신을 부활시켜 인간 중심의 정신을 세우려고 했던 문예부흥 운동 아니겠는가? 단테는 초기 르네상스를 서술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로 고전과 가톨릭을 함께 담아내어 그렸다는 점이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이블이 뿌리깊이 박힌 신앙의 기원이라면 코메디아는 신앙을 구체화하였고 더불어 신의 메시지를 전한 기념비적인 이유가 있다. 지옥을 묘사하였고 그 죄는 무엇인지도 펼쳐 놓았으며, 연옥을 소개하며 구원의 길도 있음을 전하였다. 천국에 이르러서 유일한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대신 전달하여  육신과 영혼이 함께 살아있는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준 것은 분명 메시아에 버금갈 일인 것이다. 그래서 신은 무너져가는 인간 세계에 메시아로 돌아오기 전에 미리 경고를 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신은 단테를 잠시 고용했고, 그에게 전례 없었던 순례의 기회를 주어 이를 생생하게 보게 하였고, 살아 숨 쉬고 있는 너희 인간들에게 알리라는 의무를 쥐어주었기에 우리는 지금 지옥과 연옥, 천국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인 사유로 돌아와 본다. 지옥, 연옥, 천국은 있을까. 그 질문 이전에 과연 '신'은 있는 것일까. 과학, 특히 천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138억 년의 시간을 믿으면서 신의 존재를 묻는 의문 자체가 있을 수 있는가라고 할 때 물론 있을 수 있다고 답한다. 과학은 증명하고, 보여주는 것이라면 종교는 믿음이다. 그래서 과학에서는 '믿는다'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는 과학적인 답변으로 갈음해 본다. 순례를 따라다니는 내내 나의 영혼은 어디로 갈 것인지도 생각해 본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을 수 없으나, 나 정도라면...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자연스레 내가 했던 행동을 돌이켜보고 근본적으로 신앙심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지옥일까 아니면 이제부터라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최후의 심판에서 내가 지은 죄은 죄의 사함을 받기 위해 그분을 모시고 선행을 쌓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깟 서사시가 뭐라고,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소설 중 하나로 치부한다면 줄거리도 기억에 없을 만큼 나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느 텍스트와 비견할 수 없는 이유는 치밀하면서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무게감 있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장에 꽂힌 신곡 세 권을 볼 때, 내면의 나의 목소리가 던지는 질문들이 들려온다. 나는 내 할 일을 하고 있는가?




    먼 길을 돌아 단테 소나타로 다시 돌아왔다. 프란츠 리스트(1811 - 1886)는 1849년 단테 소나타 (부제: 소나타 풍의 환상곡)를 작곡하였다. 이 곡은 리스트의 작품 "순례의 해"에 수록된 곡으로 크게 3개의 해로 구성된 작품집의 <두 번째 해>의 7번째에 수록된 곡으로 단테의 신곡과 1837년 출판된 빅토르 위고의 시집에 수록된 "단테를 읽고"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즉, 리스트가 코메디아를 읽고 작곡한 것은 아니며, 빅토르 위고가 코메디아를 읽고 쓴 그의 시집 '내부의 소리'에 실린 "단테를 읽고"를 읽고 작곡한 것이 되겠다. 다만, '단테를 읽고'라는 시에는 지옥편만 얘기하고 있지만 리스트는 지옥에서 천국에 이르는 전 편을 염두하고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스트 자신도 이탈리아 순례를 하면서 받은 영감에서 작품집을 만들었으니 이탈리아에서 절대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단테를 마주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총 373마디로 장장 15분이 넘는 대곡을 완성하였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도입부 - 제시부 - 재현부 - 코다로 구성되어 있다.  


리스트, 순례의 해 두 번째 해: 이탈리아(S.161)

1. Sposalizio 혼례

2. Pensieroso 생각하는 사람

3. Canzonetta del Salvator Rosa 살바토르 로자의 노래

4. Sonetto 47 del Petrarca 페트라르카 소네트 47번

5. Sonetto 104 del Petrarca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

6. Sonetto 123 del Petrarca 페트라르카 소네드 123번

7. Après une lecture du Dante: Fantasia quasi sonata 단테 소나타


단테 소나타 종지


    음악은 그림과 달리 마음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신곡을 알았으니 이제는 그가 설명한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다. 정확히 무엇을, 어떤 심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는지는 리스트 본인 밖에 모를 것이니 우리는 음악의 선율에 몸을 맡기며 각자 해석해 본다. 불길함과 숨 막히는 혼돈이 전반에 깔려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지만 이제 제2주제로 전환되면서 암흑 속에 한 줄기 빛이 비치듯 희망이 보인다. 그렇게 어두운 분위기는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니 마음은 가벼워지고 기분은 상승한다. 연옥의 산을 오르고 천국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옥타브도 함께 올라가는 듯하다. 사랑했던 연인과 유일한 그분을 노래하는 듯 앞선 불협화음은 차차 없어지고 정화된 음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마무리된다. 그의 연인과 함께 스위스로 도피 중인 리스트 또한 단테의 마음, 베아트리체에 대한 마음을 남들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다만, 소나타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다. 음악은 무엇을 표현해도 아름답다는 것. 그러니... 지옥이 너무 아름답잖아!  



인용문은 민음사 신곡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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