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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Dec 23. 2023

꿀벌과 천둥, 치열함

    가자마 진,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제3번


한 때 천재소녀로 불렸으나 사라졌다 7년 만에 다시 나타난 에이덴 아야. 그녀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아야의 어릴 적 친구였다 음악공부로 헤어지고 다시 만난 마사루. 인격자이며 탁월한 재능을 가졌지만 고스란히 '보통'사람의 감각도 가졌다.


음악계에서 명성 높은 폰 호프만의 추천서를 받아 든 것부터 남들과 다른 아이. 순수하고 이질적인 천재 소년 가자마 진. 집에는 피아노조차 없다.


평범함 속에서 천재들과의 싸움을 바라보면서 그들과의 경쟁에 발버둥 치면서 스스로 음악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마지막 도전을 준비하는 아카시 


이 네 명의 뮤지션들은 각자의 개성을 머금고 국제 피아노 콩쿠르로 참가한다. 아무래도 주인공인 가자마 진의 독특한 행동들과 배경은 소설 전체에서 여운을 이끌며 그 결말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쉽게 덮지 못하게 만든다. 호프만이 직접 찾아갔다거나 집에 피아노가 없다는 것, 음악과는 거리가 먼 꿀벌을 다루는 양봉가의 아들이라는 점, 연주하는 날 갑자기 흙 묻은 손으로 나타났다 연주를 마치고 홀연히 사라지는가하면, 악기 위치 하나까지 포착해내는 소리에 대한 비범한 능력 등은 우리들과 다른 천재라는 점을 수 없이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의 연주는 단숨에 청중과 심사위원들을 혼돈에 빠뜨리곤 한다. 그들이 모두 타고난 천재이든 노력의 천재이든 혹은 평범하든 콩쿠르라는 긴장된 상황 속에서도 모두의 공통점은 피아노를 통해 음악을 끌어 내려는 열정에 대한 본질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분명하게 말해준다. 그들은 음악을 하는 피아니스트다. 음악은 내 안에서 끌어내야 하고, 피아노 안에서 끌어내야 한다. 음악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제자리에 있었다. 꿀벌의 미세한 날개짓에서 가슴 울리는 천둥의 소리를 찾은 듯 하다.


  

"이렇게 호되고 가혹한 세상이 또 있을까"


한국인의 피아노 국제 콩쿠르의 수상 소식은 간간히 들을 수 있다. 물론 흔한 소식은 아니지만 에전부터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것도 K-컬처의 영향일까? 박세리 이후 그 뒤를 잇는 국제적 골프 스타들이 줄줄이 나타났고 김연아 이후 김연아 키즈들이 등장했다. 대중의 인기에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있었던 노력과 누군가 국제무대 우승이라는 첫 테잎을 끊어 준 덕분에 후배들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고 더욱 더 숨은 진가가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없었던 게 아니라 있었지만 내가 알지 못했을 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피아노 콩쿠르를 보자면 쇼팽 콩쿠르의 조성진이 있고, 최근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임윤찬이 있다. (사실 피아니스트 중에 어느 콩쿠르에서 우승 경력 없는 연주자는 없다. 단지 우승했던 콩쿠르에 유명세 차이가 살짝 있을 뿐이다.) 우승자와 본선 탈락자의 실력 차이를 구분해 내지 못하는 나는 대중을 끌어들이는 저력은 그의 연주 실력이 아니라 매체의 힘이라고 믿고 있다. 어쩌면 매체의 역할일 수도 있고. 하지만 누가 뭐라 한들 그 영광을 누리기까지의 노력은 감히 평할 수 없다는 데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지난 2021년 쇼팽 콩쿠르의 온라인 실시간 경쟁 영상들을 중국 출장 중에 저녁마다 챙겨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음악가 출신이 아닌 진출자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참가 자체를 즐기는 수준높은 아마추어들도 있었다. 그들의 혼신의 연주가 그저 어느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곡들보다 훨씬 더 감미로웠고 감동적으로 들렸음이 단지 타지생활에서의 외로움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숨결을 귀 기울여 들어보려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진심이기에 더욱 더 기억에 남아 있는 듯 하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결승점에 다가가는 손 끝의 터치 소리를 듣는 한 달간은 전 세계 새로운 피아니스트들을 접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5년에 한 번씩 하는 콩쿠르이기에 우승자는 5년간의 이목을 집중을 보장받을 수 있겠지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콩쿠르가 피아니스트의 목표는 아니겠지만, 이 세상에 누가 누가 잘하는지를 평가받고 싶고 거기에 명성이나 그에 따라오는 금전적인 수익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유혹일 것이다. 너무 속물 티를 내었나? 물론 에르게이 키신처럼 콩쿠르를 나가지 않고 이미 귀하신 몸이 된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당시 우승자인 이소령을 자꾸 떠오르게 만드는 Bruce Liu. 그리고 그가 다뤘던 피아노가 그 흔한(?) Steinway & Sons가 아닌 FAZIOLI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콩쿠르, 그토록 훌륭하고 독창적인 연주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재능이란 대체 뭘까?


가자마 진의 너무나도 돌발적인 행동이 마치 천재의 전형적인 모습처럼 등장하는 건 탐탁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라며 위안을 가져본다. 실제 그런 천재들이 있다면 그들이 사는 세상이 따로 있었으면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다른 경쟁자들과 함께 숨을 쉬고 있다면 곳은 희망이 없는 지옥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 과연 그런 천재들이 들려주는 피아노 소리는 여타 연주자의 그것과 과연 다를까? 과연 청중의 넋을 잃게 만들고 봄 내음이 느껴지며 바람이 휘몰아치는 연주가 있을까?


나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겁내고 있다. 떨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못 견디게 기쁘다. 못 견디게 사랑스럽다. 못 견디게 애틋하다.


괴롭다 괴롭다 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렸고 즐기고 있었다. 음악가란 그런 존재들인가 보다.



https://youtu.be/rlJP4fAckpM?si=uyqXf8u5WQ_R5na3

Martha Argerich plays Bartók's Piano Concerto No.3


더 이상 '클래식'은 태어나지 않는 걸까?


클래식에 대한 나의 궁극적인 질문도 여기에 담겨 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처럼 무한할 것만 같았던 클래식 음악의 한계가 있다. 분명 새로운 음악은 계속해서 태어나고 있지만 우리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등 고전, 낭만파 시대의 음악의 범주 내에서 맴돌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창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즐기면서 수용할 수 있는 음악의 수량은 한정판매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온다 리쿠도 같은 의구심을 가졌던 듯하다.


소설 이야기보다 나는 온다 리쿠가 음악인들을 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나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그의 생각을 쫓아가 보는 게 훨씬 더 흥미로웠다. 내가 남은 생애에 여느 피아노 콩쿠르에 나갈 가능성은 없지만 음악을 즐기고 피아노를 각별히 좋아하는 애호가로서 이들과 동화되어 음악에 몰입해가는 그 과정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벨라 바르톡 Bela Bartok (헝가리, 1881 ~ 1945) 피아노 협주곡 3번

분명 바로크나 낭만 시대 음악과는 사뭇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음악이나 불협화음으로 혼란스러운 실험적인 현대음악과도 거리가 있다. 곡이 작곡된 1945년의 분위기가 딱 그랬나 보다. (그렇다. 작곡 시기도 1945년, 바르톡이 생을 마감한 시기도 1945년이다. 바르톡은 이 곡을 거의 마무리하였지만 완성하지는 못하였고, 초연은 그 다음 해 1946년 연주되었다.)

표제음악이라고 광고를 하지 않은 이상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가는 모든 음악 작품을 탐구의 대상으로 만들게 하는 이유인 듯 하다. 그래서 평론가들과 애호가들은 작곡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혈병과 싸우는 투혼을 발휘하며 버티고 있지만 곡은 결코 어둡지 않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아내를 위한 곡이니까. 서로 음정 조율을 하는  시작되는 분위기는 밝고 천진난만하다. 때로는 찬란하고, 평온한 목가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때로는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 피아노 선율이 관현악기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듯 홀로 갈 길을 걸어가는 듯 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타고난 천진난만함은 자신의 재능을 뽐내며 주변 금관악기 친구들을 불러내어 함께 춤을 춘다.


"흐음, 버르토크로 결정한 이유는 뭐야?"

"이유는 단순해. 프로코피예프 3번이 참가자들한테 인기가 있으니까 버르토크를 고르면 안 겹칠 것 같아서."

가자마 진이 갖는 자연스러움, 예측할 수 없는 변박자 같은 분위기는 어쩐지 버르토크와 잘 어울린다.




하나 더, 소설과 비슷하게 쇼팽 콩쿠르의 여정을 다루는 천재소년의 이야기인 24부작 애니매이션 '피아노의 숲'도 음악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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