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을 수도 없고, 표본을 채취할 수도 없고,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면 그것의 존재를 연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게 가능하긴 한 건가, 처음부터 질문이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이 들지만 천문학자들은 그 일을 해 내고 있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틀림없는 수학은 그 존재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고, 혹은 그 반대로 수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지만 관찰한 간접적인 데이터는 무언가 분명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우주를 다루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여기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향한다.
인류는 아직 밤하늘의 어둠 속에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수 백 년간의 탐구를 거쳐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라는 멋진 이름을 책상 위에 올려놓긴 했는데 이게 먹는 건지, 마시는 건지, 만질 수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정체를 모르니 어떻게 측정할지도 모르겠다. 존재여부조차도 불확실하다고 이제 와서 고백하면 지난 40년간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는 게 정말 없는 것 아닌가?라는 회의감과 그럼 이제부터는 그게 없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더 어려운 지경에 처할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든다. 하지만 데이터는 없는 것보다 있다고 가정해야 들어맞는 사건들이 많아 여전히 용도폐기하지 못하고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가당한 일인가? 없다는 증거도 없고 있다는 증거도 없다. 어느 코믹만화에서 연구자들의 인건비를 받아내기 위한 작은 사기극이었는데 이젠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커지는 바람에 계속 있을 것 같은 척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엉뚱한 상상에 빠진다. 인간의 감각으로 알 수 없는 것. 천문학은 인간이 눈으로 보지 못하는 영역을 파고든다. 단지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했을 뿐 존재했다. 눈으로 보지 못해 망원경을 만들었고 대형 지상, 우주 망원경과 가시광선, 적외선, X ray, Gamma ray 망원경까지.
68p. 에드거 앨런 포의 개념에 숨어 있는 진정한 참신함이 드러난다. 우주가 영원하지 않다면, 별빛은 한정된 시간 동안에만 우리에게 날아올 수 있다. 그래서 점점 더 먼 곳으로 시선을 옮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결국, 밤하늘의 어둠은 우주가 과거의 정확한 어느 시점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할 수 있게 한다. 69p. 우주에 시작과 진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예견할 수 있다는 이러한 답을 처음 제기한 사람이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였다는 사실은 아마도 공식적인 과학의 신중함 탓일 테다.
어느 천재가 혹은 어느 강박에 가까운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천문학의 역사를 발전해 왔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천문학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우리 외에 다른 은하도 무수히 많다는 것, 빛의 속도는 유한하다는 것, 우주의 별들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 우주는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전자기 복사, 상대성이론, 소립자 세계와 양자역학, 빅뱅까지. 하나하나가 혁명적이라 할 만큼의 진보된 지식이 차곡차곡 쌓여 왔기에 사고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겨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들어갈 몇 가지 도구들이 준비되었다. 단, 아무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여전히 하나 있긴 하다. 이것만 있어도 되는지 어느 슈퍼 테크의 과학적 지식을 갖춘 외계문명이 볼 때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여 답을 찾기까지 한참을 더 가야 할지,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질문이 맞는지 틀린지에 대한 고민은 철학자들에게 맡기고, 과학자들은 미래로만 흘러가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다.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탄탄한 지식을 하나 더 쌓아 다음 세대를 위한 진보의 길을 닦아 놓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저자가 얘기하는 95%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늘을 올려다볼 때 보이는 것 외에도 우주를 탐구하는데 축적된 화려한 지식의 현황을 두루 섭렵하며 우주를 꿰뚫어 보고 있는 95%의 연구과제들을 얘기하고 있다. 우주의 탄생, 우주를 이루고 있는 근본적인 물질, 은하의 나선팔의 회전속도가 중앙부나 바깥쪽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서 추론한 보이지 않는 힘의 정체를 탐구하는 건 그나마 가시광선으로, 망원경으로 현상을 관찰하고 데이터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사실 중 하나일 뿐이다. 진정한 전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새로운 가설의 수립과 이를 증명해 내기 위한 보이지 않는 95%의 치열한 노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주의 시작을 알고, 우리가 어디에 있고, 우주의 종말을 알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철학적인 문제를 포함한 끊임없는 욕망이니까
신호가 끊긴 TV 화면. 이 화면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면 당신은 천문 애호가. 안테나는 우주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수십억 년 전의 배경복사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라는 말이 있다. 거의 불가능한 일을 의미하지만 천문학에서는 그런 일이 흔한 일로 보인다.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를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하듯이 천문학에서 다루는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100년 남짓 사는 인간의 수명과 비교하여 138억 년이라는 숫자는 체감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항성 간의 거리를 나타내는 광년이라는 개념은 또 어떠한가. 빅뱅 이후 1초의 스토리는 두꺼운 책 한 권으로 나올 만큼 방대한 가설들이 있다. 큰 숫자도 익숙하지 않은데, 10^-34초 (플랑크 시간) 같은 찰나의 순간도 길어 보이는 이 시간 역시 상상할 수 없는 시간/숫자이다. 아무리 자주 들어도 소화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다. 앞으로도 경이로운 숫자로 남아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렇다.
철학이 인간에 대해 탐구한다면
천문학은 우리가 언제까지 철학을할 수 있는가를 탐구한다.
PS. 2023년 올 한 해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