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야나체크 신포니에타

by KayYu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야나체크, 신포니에타


그 옛날 어릴 적부터 하늘에 대한 호기심과 엉뚱한 상상력 보태어 저 높이 태양 하나, 달 하나만 있기에 하늘은 너무 넓은 데다가 외롭고 지루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게다가 누군가 독점하고 있다는 건 정신건강에도 좋은 게 아니니 비교할 수 있다면 서로 자기 자랑으로 더 멋져질 수 있다고. 그래서 하늘에 달 두 개쯤 떠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두 개의 태양은 너무 더울 것 같아 두 개의 달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나 존재하지 않을 건 명백하니 진지하게 희망을 품는 건 사치일 것이다.


문제는 <신포니에타>다. 소설은 신포니에타로 시작해서 대 소설 속에서 여섯 번 정도 등장한다. 하루키는 클래식 애호가도 쉽게 맞히지 못할 작품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고, 어떤 연유로 이 소설에 등장시켰을까 궁금해진다. 아오마메의 입을 통해 아무나 알고 있지 않을 법한 곡은 맞는 것 같다. 물론 덕분에 일부러 찾아 듣게 만드는 건 소설의 힘일 것이다. (부족한 음악적 소양으로 신포니에타를 해석하고 설명하기는 무리다. 하하)


판타지 러브스토리 1Q84는 그렇게 야나체크 교향곡 신포니에타로 시작한다. 수도고속도로의 꽉 막힌 정체 속에 갇힌 택시 안 공간을 가득 채운 팀파니의 울림이 1Q84 세계로 들어가는 시그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등장인물들 중에서 지목된 특정 인물들만이 그 세계로 들어가기에는 접점이 빈약하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후카에리, 아모마메, 덴고 그리고 우시카와까지 이들은 모두 신포니에타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들었던 인물들이다. 이 부분은 나만의 해석이라 하루키의 생각을 들어보지 않는 한 신포니에타가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계시가 된 것인지, 누가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힌트가 맞는지에 대한 사실관계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하루키의 음악세계라면 충분히 그렇게 연결 지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하루키의 평생의 역작이라고 평가하기도 하는 1Q84 속에 음악을 눈에 띄지 않는 조연으로만 출연시키지 않았을 거라는 배경이 숨어 있기는 하다. 음악은 그런 묘미가 있다. 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지만 그게 모이면 프레이즈가 되고 선율이 되고 분위기를 만든다. 많은 등장인물들의 우여곡절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큰 굴곡을 만드는 소설과 다르지 않다.


때로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따스해지기도 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판타지세계를 들락날락할 때는 그 당황스러움에 가까운 엉뚱함에 따스해진 가슴속에 피어오른 풍선에 피식~ 바람 빠지듯 조금은 허무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짜임새 있는 구조와 인물들 간의 심리, 탐정소설 같은 긴박함이 곳곳에 배어있는 점이 몰임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무려 1,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지만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만큼은 합격점 아닐까?



힘든 한 해. 연말에 다가와 마음이 더 힘든 하루하루가 흘러가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1Q84처럼 두 개의 달이 보이는 다른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 세상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한 단어로 사랑하고. 그리고 성숙한 사회, 안전한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곳 그 어딘가에 나의 아오마메와 후카에리가 있을 것 같고,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서 든든하게 조력해 주는 다마루와 미지의 노부인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위협적일 것 같고 어쩐지 불길하긴 하지만 좋은 의미로 나를 관찰해 주는 우시카와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별 신경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덴고가 아니다. 그래서 그들과 가까워질 수는 없겠지만 그냥 그들의 사랑이 숨 쉬는 1Q84의 공간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따스한 행복감을 느낄 것만 같다.


소설은 따스했지만 현실은 냉담하다. 지금 내가 숨 쉬는 현실에서 오늘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백번 양보하여 나의 오해와 편견을 벗겨내어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이성이 당신과 내가 이렇게나 서로 다를 수 있을까에 대한 혼란을 매일 경험하고 나면 세상이 참 아득해진다. 올바른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생각이 '올바른 생각'이라고 정의되어 버리지나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다. 하지만 위대한 경험을 DNA에 품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은 힘을 보탤 것이다.


186p 레오시 야나체크는 1854년에 모라비아 마을에서 태어나 1928년 사망했다. <신포니에타>는 1926년에 작곡되었다. 야나체크는 애정 없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냈지만, 1917년 63세일 때 유부녀 카밀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기혼자 간의 노숙한 사랑이다. 한때 슬럼프로 고민했던 야나체크는 카밀라와의 만남을 계기로 왕성한 창작욕을 되찾았다. 그리고 만년의 걸작이 차례차례 세상의 호평을 받게 된다. 어느 날 그녀와 둘이서 공원을 산책할 때, 야외음악당에서 연주회가 열리는 것을 본 그는 발을 멈추고 그 연주를 들었다. 그때 야나체크는 느닷없는 행복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신포니에타>의 악상을 얻었다. 그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서 뭔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선명한 황홀감에 휩싸였다고 그는 술회하고 있다 당시 야나체크는 마침 큰 스포츠 대회를 위한 팡파르의 작곡을 의뢰받은 상태였고 그 팡파르의 모티프와 공원에서 얻은 '악상'이 하나가 되어 <신포니에타>라는 작품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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