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조율사

슈베르트 D894

by KayYu

피아노 조율사, 궈창성


피아노 조율사로서 자신을 고용했던 여성 피아니스트(이름은 에밀리)가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그 사람과의 인연, 자신이 조율했던 피아노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남편 린쌍이 나타나면서 관계는 지속되고, 자신의 삶의 과거와 현재를 담담히 되돌아본다. 되돌아보는 건 성숙의 길이다. "린 사장님. 댁의 스타인웨이는 괜찮습니까?"


p46. 신경질적인 연주자와 불완전한 피아노가 짝지어졌을 때, 조율사는 그들이 앞으로 이룰 수 있는 행복한 모습을 제시한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된다. 조율사는 결함 있는 두 물건이 내는 진동을 두 귀로 들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 나한테 왜 연주자로서 더 발전하려 노력하지 않고 조율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느냐고 묻는다면 이게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참 묘한 소설이다. 그리고 맥락 잡기가 어려운 난해한 소설이다. 미묘하고 복잡한 과거가 있을 법한 예리한 복선들이 깔려있지만 다 읽어 내지 못했다. 린쌍과 조율사 사이를 이어주는 건 분명 피아노가 맞지만 책을 덮고 나니 어쩐지 지금은 둘 사이에 피아노가 있는 건지 확실하지 않다. 이루지 못한 짝사랑을 그린 소설로 읽고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소복이 쌓인 눈길을 한 발씩 걷는 모습처럼 간간이 들리는 바람소리 속에서 뽀드득뽀드득 소리만 들릴 뿐 주변은 적막하고 인적조차 보이지 않는 외길을 걷고 있는 듯한 기운을 받을 뿐이다. 지난 사십 년간 걸어온 길은 쓸쓸했다. 우리는 이 천재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위로를 해줘야 할까? 조율사를 알고 조율사와 함께 있어야 할 것은 피아노와 음악이 아니라 사람인 것 같다.


조율사는 피아노도 알아야 하고 음악도 알아야 한다. 피아니스트도 알아야 한다. 연주회의 레퍼토리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각자의 연주 스타일에 따라 같은 곡도 서로 다른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율사는 지속적인 피아노 연습이 필수적이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조율사가 되기 위해서는 조율의 기술적 경지 외에도 그 피아니스트보다 더 뛰어난 음악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완벽한 음, 완벽히 조율된 피아노는 있을 수 없으며 피아니스트는 조율사가 조정한 건반을 연주할 수 있을 뿐임은 세상은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재능을 알아보고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은 누구일까? 그래서 함께 있어주길 바랐던 사람. 바라건대 그건 에밀리였을까? 자신보다 스무 살 많았지만 음악에 관심이 없었던 남편, 린쌍의 아내를 위한 사랑의 표현인 스타인웨이 선물이 물질적인 충만감을 주었을 수 있었겠지만 스타인웨이도 그녀가 원하는 음색을 찾지 못할 정도로 부족했다. 그래서 조율사는 결함을 찾고 에밀리의 음색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고. 음악에 진심인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은 음악에 진심인 또 다른 사람일 것이다. 피아노에 감정을 이입할 만큼 음악과 악기 모두에 진심이었던 사람이 옆에 있었고 에밀리도 분명 그와의 공명을 감지했을 것이다. 댁의 스타인웨이는 괜찮습니까? 찾는 건 피아노일까? 음악일까? 아니면 그 피아노에 온기가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에 대한 마음일까? 닿을 듯 말듯한 거리가 느껴지지만 소설의 문장 그 어디에서도 그 거리를 찾을 순 없었다.


음악을 사랑하면 그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악기도 사랑하게 된다. 숲으로 들어가 웅장한 나무들 가운데 한 그루를 고르면 벌목공이 베어 목재소로 보낸다. 피아노가 태어나는 첫 단계이다. 설계사는 공명 상자와 음향판의 틀을 구상하고 목수와 대장장이가 작업을 시작한다. 현을 한 줄씩 걸고 나사를 하나씩 박아 액션을 만든 뒤 소용돌이무늬를 살린 본체까지 만들면 마지막으로 조율사가 음악 맞춘다. (p44)


p49. 생전에 아내가 집의 스타인웨이를 놓고 신경질적으로 굴었다는 이야기를 조율사한테 듣고 나자 린쌍은 그 피아노가 점점 낯설게 느껴졌다. (왜 나한테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을까?)


고독한 조율사의 자조적인 독백으로 들리다가도 조율사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에서 다시 관조적인 독백으로 읽힌다. 그렇게 어디로 가는 중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살아온 이야기에 이끌려 책장을 넘기고 있다 보면 어느샌가 끊길 듯 말 듯 계속해서 에밀리의 존재가 모든 상황의 중심에 있는 것이 느껴진다. 피아노가 있기 전에 에밀리가 있었다. 에밀리에 대한 연모가 있었는지, 아니면 연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율사는 그 감정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건 평생 그런 감정을 조용히 누르고 살아왔던 그림자 삶에 익숙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유도 있다. 그래서 연민은 에밀리가 아니라 조율사가 받아야 할 몫인 듯하다.


p69. 어떤 사람은 악기에서 찾고 어떤 사람은 노래에서 찾아. 더 운이 좋은 사람은 망망한 세상 속에서 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명을 깨우는 모종의 진동을 찾아낼 수 있지. 스승인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기술뿐만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이었지만 그의 심금을 울리며 가슴속에 새겨진 건 기술이 아니었다. p132. 나는 음률을 잘 판별할 수 있는 귀를 가졌고 태생적으로 악보 기억력이 뛰어난 데다 음색 속 미묘한 차이도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음색은 가져본 적이 없다. 어쩌면 이것도 연주가나 피아노 교사보다 조율사가 내게 더 적합하다고 여기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음색에 대한 연주자의 집착과 완벽주의에 대해 나는 영원히 나와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조율사가 되었다. 리히테르나 굴드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게 몸에 새겨진 자신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기복이 없고 한 때 화려한 영광에서 빛을 바랄 걱정을 할 필요도 없는 이상적인 존재로서 조율사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p55. 린쌍은 오래된 피아노 같았다. 그 자신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로 린쌍에게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한지도 몰랐다. 아무도 연주하지 않는 피아노는 린쌍이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조율사에게 피아노는 하나의 인격체였다. 감정이 있고 보살핌을 필요로 했다. 피아노를 조율하면서 그는 그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진동도 함께 조율해 나갔다. 자신과 피아니스트 둘 사이의 공명을 찾을 때까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이를 이끌었고 공명해왔던 과거의 스승과 린쌍. 과거 에밀리와의 현을 조율하고 음색을 찾는데 나의 재능을 받쳤다면 이제부터는 린쌍의 영혼을 조율하면서 새로운 음색을 찾아 나갈 듯하다. 둘 사이의 공기의 떨림을 감지하고 결함을 찾고 맞춰나가는 게 직업이니까. 천부적인 직업.




Schubert: Piano Sonata No. 18 in G Major, D. 894

가르침을 받았던 청년 피아니스트와의 어떤 공통점이 있어서 슈베르트가 소설에 등장했을까? 성병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추정)한 연민 때문에? 아니면 음악이 아니면 외형으로는 결코 드러낼 수 없었던 맑고 투명했던 심장의 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 질문은 많지만 소설에서 속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는 건 그만큼 마음열지 못한 비밀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슈베르트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 지 20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리히테르가 연주하는 그의 작품을, 어느 조율사의 손길을 거친 피아노를 통해 녹음된 음색 한 음 한 음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대해 궈창성에 감사하고 있다.


https://youtu.be/4o12iQ6n6Rs?si=my05IUJusyuH6P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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