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내가 쓰고 싶던 이야기들

by KayYu

녹턴 / 가즈오 이시구로 / 2010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녹턴>은 삶에서 음악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이야기다. 살아온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수는 있겠지만 삶의 어느 지점에서 음악이야기를 할 수 있고 여전히 음악과 함께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의미다.


1. 크루너

나는 베네치아 거리에서 기타 연주를 하는 소위 '집시'라고 부르는 떠돌이 뮤지션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연주를 듣는 관광객 속에서 미국의 유명한 올드 팝 가수 ‘토니 가드너’를 발견한다. 어머니가 좋아했던 가수였고 어머니가 좋아했기에 나도 그의 팬이 되었다. 같은 음악인이고 그런 영광을 가진 토니가 자신에게 배를 타고 자신의 아내 앞에서 세레나데를 연주해 달라고 요청한다.


얼핏 깜짝 이벤트인 듯 하지만 분위기는 그리 밝지가 않고 약간의 불안감마저 일었다. 아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소개하면서 눈물을 보인다. 이 분위기는 뭔가?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는지. 그의 태도가 분명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여하튼 그의 부탁대로 아내를 항해 세레나데 곡을 최선을 다해 연주한다. 그리고 부인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다. 사실 이 낭만적인 요청의 이면에는 토니가 재기를 위해서 아내와 이혼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세레나데는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그녀만을 위한 특별한 이별의 곡인 것이다. 연주는 감동적으로 끝났고 나는 어리둥절해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도 자신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한 아픈 결정이었다는 얘기를 남기고 사라진다. 사랑, 이상, 현실, 욕망... 같은 노래 속에서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2.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대학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레이먼드 부부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과거 친구들과 함께했던 음악 취향과 친밀감을 떠올리지만, 현실에서 그는 이미 사회적으로 ‘실패한 친구’로 취급받는 존재다. 방문 도중 친구의 아내 에밀리가 외출하면서 그에게 레이먼드를 위로해 달라고 부탁한다. '징징이 왕자 도착에 맞춰 와인을 살 것.' 하지만 우연히 친구의 집을 탐색하던 중 그녀의 수첩에서 자신을 가리키는 구절을 발견하고는 순간적 충동으로 찢어버리려다가 그만두고 정신을 차리고 사건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작전에 돌입한다.


레이먼드의 조언으로 가끔 찾는 이웃집 개가 벌인 짓으로 위장하기로 하고 집안을 더 엉망으로 만들고 개 냄새를 만들기 위해 신발 밑창을 냄비에 끓이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것도 친구 레이먼드의 조언을 따른 것이지만. 점점 엉망이 되고 마는 시트콤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위장작업을 조용히 지켜보던 에밀리가 있었다는 사실은 독자마저 닭살 지게 만든다. 이 당혹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는 자신이 과연 누구에게 의미 있는 존재인지, 그리고 과거의 유대가 지금도 유효한지를 되묻게 된다.


3. 멀번 힐스

성공하지 못한 젊은 기타리스트는 누나 부부가 운영하는 시골 카페에 머무르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그는 손님으로 찾아온 스위스 출신의 중년 음악가 부부와 교류하게 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술가로서의 고뇌, 관계에서의 상처, 이상과 현실의 충돌을 느낀다. 부부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경쟁과 질투로 인해 관계가 무너졌다. 젊은 주인공은 그들을 통해 미래의 자신을 미리 보는 듯한 감정을 느끼고, 예술을 계속 추구할 것인지 회의에 빠진다.


4. 녹턴

한때 유망했지만 지금은 주목받지 못하는 색소폰 연주자인 주인공은 성공을 위해 얼굴 성형수술을 받는다. 재능은 있지만 외모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매니저의 조언이었다. 수술 후 회복을 위해 호텔에 머물던 중, 같은 층에 유명 여배우 린, 토니 가드너의 옛 여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계기로 서로 인연을 맺게 된다. 그녀 또한 성형 수술 후 회복 중이었으니 둘은 서로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기에 서로의 진정한 모습, 그리고 성형 전의 모습은 알 수 없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녀는 주인공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고 그에게 연주를 부탁하기도 하면서 무료할 뻔했던 병원 생활을 함께 지내며 음악적 소통을 하게 된다. 그러다 호텔에서 오디션 수상자에게 줘야 할 트로피를 빼돌리고 그걸 주인공에게 수여한다. 뒷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엉뚱한 장난이다. 트로피를 주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이 분야에 영향력이 있으니 주변에 소개해 주겠다고 하며 먼저 호텔을 떠난다.


성형으로 얼굴에 붕대를 감아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한 채 헤어진다. 사실 붕대가 없었어도 우리는 그렇게 상대를 기억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인생이 않다. 성형으로 진정한 자아에서 멀어지는지, 성형으로 진정한 자아로 다가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얼굴은 그 사람에 대한 정체성일지도 모르겠다. 얼굴을 마음속에서 지우면 무엇이 남고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5. 첼리스트

유망한 젊은 첼리스트 얀은 우연히 미국 출신의 중년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스스로 ‘천재적인 첼리스트’라고 주장하며 얀의 음악적 재능을 칭찬하면서도 그의 스승이나 연주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음악가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음을 사과하며 공손한 듯하였기에 문제 삼지 않았지만 뭔가 미심쩍은 부분을 떨쳐내지는 못한다. 좀 더 얘기하고 싶다면 그녀의 호텔로 찾아오라는 얘기에 결국 뭔가에 이끌리듯 찾아가고 그녀로부터 첼로 연주에 대한 가르침을 받게 된다. 어떤 믿음도 없이 시작한 레슨인데도 자신의 소리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면서 그녀의 가르침에 빠져든다. 그녀는 얀에게 조언을 하며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항상 말로만 전할 뿐 실제 연주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점이 그녀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어느 한 구절이 잘 되지 않자 직접 연주로 보여달라는 청을 한다. 그녀는 결국 보여주지 못하고 일주일을 망설이다가 어릴 적 이후로 한 번도 연주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녀는 실제 연주를 하지 않는 예술가이며, 스스로 이상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어떤 콩쿠르의 우승자를 가르친 스승. 그 스승인 그 콩쿠르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야구 감독과 코치가 직접 뛰지 못하듯. 그렇다고 그 스승이 재능이 없는 것일까? 뛰어난 감수성과 소리를 찾는 능력이 있다면 연주자의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은 스승의 채찍질일까 아니면 나 자신과 끊임없는 싸움을 벌이며 스스로는 믿는 나 자신일까?






삶에서 음악 그리고 유머를 뺄 수 없는 사람인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다. 작가는 시트콤 같은 글을 쓰는 재주가 있었을까?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잔잔하게 흐르면서도 유머는 빠지지 않았다. 황혼이 전체를 감싸는 또 다른 주제라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비극이라는 인생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음악은 낯선 이들과도 공통의 관심사를 끌어냈고 이어지는 여운과 기억을 남겼다. 음악을 다리 삼아 잊어버린 기억이 다시 살아난다. 음악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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