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건반, 이건 전시용입니다.
전시용입니다. 연주하지 마세요.
미술관이라면 이럴 수 있다. '손대지 마시오. 작품에 손상이 갈 수 있습니다.' 굳이 이런 문구가 없어도 상식이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한 번 더 주의를 준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미술관에서 전시용이라는 말은 쓰지 않을 것이다. 거긴 '전시'하는 곳이니까. 여러 호텔 로비에 전시된 그랜드 피아노만 어림잡아 대 여섯 곳이 떠오른다. 피아노 판매장도 아닌데, 피아노를 '전시'하고 있다.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일전에 침대를 구매하러 가구점에 갔다가 본 문구도 떠오른다. '전시용입니다. 눕지 마세요.'
전시용입니다. 연주하지 마세요.
피아노에 애증이 많은 나는 그 문구를 보는 순간 피아노를 감정을 가진 생명체로 이입하면서 안쓰러운 동정심이 훅 밀려들어왔다. 손을 대야 진가를 발휘하여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거늘 연주하지 말라니. 얼마나 가혹한 상황이며 얼마나 외로울까.
우리 호텔은 우아하고 수준 높은 교양과 품격을 지닌 호텔입니다. 고급스러운 대리석과 샹들리에, 준수한 외모의 안내원, 잔잔히 흐르는 작은 분수 조형물, 부드러운 카펫 그리고 그랜드피아노는 화룡점정이지요. 전시용 업라이트도 본 적이 없다. 음악이 필요하다면 이 세상에 수많은 악기와 음악 오브제가 있다. 우린 그런 건 잘 몰라요.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음악도 아니고 피아노도 아니고 화려해 보이는 블랙 유광의 그랜드 피아노입니다.
전시용입니다. 연주하지 마세요.
호텔 매니저의 취항이든 호텔의 지침이든 피아노 자신에게는 참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까? 의도가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냥 방치된 악기인척 연기하는 오브제라면 가엽기 그지없다. 설사 연주해도 된다고 해도 아무나 만지지 못하고 그 외로움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의자가 없다. 사일런트 모듈도 달려있으니 한때 아파트에 들인 피아노임에 틀림없다. 세월은 지났고 지금은 현에 먼지가 붙어있다. 제대로 조율된 소리가 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연주 금지와 연주 불가는 또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연주할 수도 없는 걸 연주하지 마세요라고 한 건 아쉬움이 실망감, 배신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내가 무엇을 기대했던가.
누구든 연주하세요.
일본 하마마쓰 고속철 역에 있던 누구든 연주하라는 가와이 그랜드 피아노가 생각났다. 거기서 들었던 아빠와 아이가 같이 연주한 터키 행진곡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줬다. 누구든 연주하는 피아노는 건반이 열려있었다. 피아노가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