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yYu Aug 06. 2022

세 가지 집중력

과학적 양념을 곁들인 악보 암기가 필요한 이유

     암기 콤플렉스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나를 긴장되게 만드는 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암기다. 남들 앞에 서서 얘기하는 것도 별로 나서지 않는데 무언가를 암기해서 얘기해야 할 상황이면 멘털을 붙잡아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생겼으니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진. 한두 번의 암기 실패로 당황한 경험은 다음 비슷한 상황에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암기도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거나 순서대로 연상을 한다거나 하는 암기 기법은  철부지 어린이는 상상할 수 없었고, 설령 누군가 귀띔해주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아예 그런 상황을 결사적으로 피해 가려는 잔머리는 늘어만 갔다.


    얘가 머리는 좋은데 암기력이 부족하네요. 와.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 사실 머리도 좋지 않았다. 국사 1등 하신 분께서는 국사는 암기가 아닌 이해 과목이라고 하는데 어느 특정 시대와 그 당시에 제작된 무엇과 연결 짓는 것들이 기본적인 암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주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각 시험 결과와 등수를 과목별로 뽑아 교실 뒤편에 붙여놓는 잔인하면서 아름다운 현황판에는 전교 350명가량 되는 학생에서 수학 전교 1등과 국사 전교 꼴등, 사실 2~3명이 내 밑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사실상 꼴등 그룹의 두 등수 표가 나란히 붙은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 등수를 전교 등수로 나누면 1에 수렴된다는 수학적 개그를 뭘 잘했다고 그리 웃고 떠들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공부 좀 하는 친구들은 그들대로, 잘하지 못하는 친구들은 그들대로 모두 나를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았고 뭐가 잘못된 녀석인지를 캐묻곤 했다. 외우기로 따지면 수학 공식 암기가 태종태세문단세 왕 이름이나 연도 외우는 것보다 어렵다고들 하지만 전혀 나에게 먹혀들지는 않았다. 나 스스로 상위권 학생과 하위권 학생을 대하는 선생님의 서로 다른 두 가지 태도를 같이 느껴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케이스라 여기며 이 오묘한 상황을 관찰하곤 했다.


    피아니스트들의 무대를 보면 악보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악보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외우지 않았기 때문에 펼쳐놓은 게 아닌 심리적인 안정감을 위한 도구일 뿐이며 실제로는 그 악보를 읽지는 않는다고도 한다. 결국은 외웠다는 얘기인데 어떻게 훈련해야, 아니, 그게 훈련으로라도 가능할까 싶다. 몇 분짜리 곡도 아니고 연주회 한 번 하게 되면 최소 2시간가량 예닐곱 곡을 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연주를 듣다 보면 음악을 감상하면서도 때로는 초인적인 암기의 능력에 넋을 잃는 건 덤으로 느끼는 경이로움이었다. 암기의 대가인 어느 지휘자는 다음 공연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곡 전체를 외우기도 한다는데 나는 믿고 싶지도 않고 음악은 내가 할 수 없는 직업이었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단어나 숫자는 내가 외워야 하는 실체가 분명하다. 그런데 악보에서는 정확히 내가 무엇을 외워야 하는지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실증주의, 실존주의에 열광하는 나에게 있어 음의 높낮이를 가리키는 계이름이라는 명확한 실체가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영어 단어 암기장처럼 틈날 때마다 들여다볼 수 있는 문자화 된 그 무언가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중가요로 치면 가사가 있는 부분은 외울 수 있지만 가창이 시작되기 전 멜로디는 내가 외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불분명하다. 단지 관심이 적은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개운하지 않다. 심지어 나는 가사도 제대로 다 못 외운다! 선율이 기억되긴 하지만 연주 속도를 생각하면 섬세한 부분까지 암기된 그 무엇인가를 기억 저장소에서 꺼내어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지시를 내리는 과정을 볼 때 결코 생각의 속도가 연주의 속도보다 앞서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좀 배우신 분들은 코드라는 문자화 된 실체가 암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는 점이 나에게 굉장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다행스러운 건지 모르겠으나 인간은 세 가지 이상을 동시에 집중하기는 어렵게 만들어진 동물로 보인다. 맨 땅에서 무언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교도소에서 죄수들에게 혹은 수도승들에게는 의도적으로 벽을 바라보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벽이 아닌 세상의 사물을 보고, 자연을 보고, 더 구체적으로 책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에 자극되어 나의 생각이 떠오르고 전이되어 또 다른 생각이 무럭무럭 샘솟는다. 산책을 하면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에 자극되고 여기에 나의 경험이 이입되면서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서 사색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창의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을 바꾼다. 이 부분은 엄연한 연구결과이다. 세 가지 이상을 동시에 수행할 수는 있다.


   그래서 산책하면서 사색에 잠기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건 걷는 행동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나머지 두 활동인 사색과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춘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며 사색에 잠기기는 어렵다. 춤이 음악을 무시하고 음악을 리스닝(Listening)이 아닌 히어링(Hearing)만 한다면 어쩌먼 춤추면서도 사색에 잠길 수는 있겠다. 공부할 때 배경음악이 공부에 집중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은 다 그럴만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 신은 왜 두 가지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는지에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세 가지를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인간은 필히 네 가지를 집중하지 못한다고 불평했을 테니까. 사용 가능한 두 개의 집중력 중 하나의 자극을 할당해 버리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집중하고 있는 일, 외에 더 이상 다른 자극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진다는 결론이다. 집중력이 필요한 세 번째 자극이 들어오면 셋 중 하나를 정리하기 위해 뇌는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기 시작한다. 그걸 정하지 못하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시간이 지나서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게 된다. 학습효과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주위가 산만한 아이였던 나는 그래서 암기를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피아노 연습에는 세 가지 집중력이 필요하다. 눈으로 악보를 읽는 집중력, 악보를 손가락으로 옮기는 집중력, 손가락에 감성을 더하여 표현해내는 집중력. 우선순위는 정해져 있으니 욕심을 버리고 순서대로 어디서부터 집중력을 풀가동해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악보를 보는 건 지식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고, 손가락을 옮기는 건 신체에 대한 행동의 노력이 필요하고, 감성을 표현하는 건 결과물의 성취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 점이다. 소리가 먼저 탄생하고 악보가 나중에 창조되었지만 연주를 위한 첫 번째 자극은 악보다. 악보를 읽는 게 익숙지 않으면 정확한 지시를 내리지 못하거나 잘못된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인간의 직관 능력은 타고난 게 아니라 많은 경험과 훈련을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는데 필요한 생각하는 시간이 극히 짧아진 것일 뿐이라는 것은 과학이다. 피아노에 직관 능력이 뛰어난 유명 피아니스트에게 나의 투자 성향과 현재의 미국 중국 분쟁을 고려해서 펀드 시황을 분석해 달라고 하면 곧장 귀담을 만한 조언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관은 절대적으로 훈련받은 분야에 한정될 뿐 그 외의 분야는 일반인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어때, 좀 위안이 되는가? 그렇게 악보가 차차 익숙해진다. 악보가 익숙해지면 눈으로 악보를 읽는 집중력에 에너지가 차차 줄어드니 두 번째 집중력인 손가락을 제 위치에 찾아 올리는 집중력에 에너지가 흘러간다. 그리고 이때 즈음에서야 세 번째 자극이 들어올 여지가 생겨난다.


    아쉽게도 우리가 세 가지 이상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얘기로 돌아가면 피아노 얘기와 맞물려 마지막 세 번째 집중력인 표현력을 끌어올리려면 한 가지 집중력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첫 번째 집중력인 악보 읽기에 있어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상태 즉, 악보 암기가 필요하다. 암보는 첫 번째 집중력을 건반의 섬세한 터치와 페달링으로 옮겨 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리는 눈을 감고서야 비로소 손의 움직임을 통제하면서 표현력을 끌어올리는 두 가지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암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되겠다.


사진출처: NASA, James webb telescope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은 무엇을 하면 그만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