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yYu Sep 18. 2022

Lange Blumenlied 꽃노래


랑케의 꽃노래 (Blumenlied _ Lange)


작품에 제목이 있다면 곡의 심상을 떠올리는데 더할 나위 없이 편하다. 꽃노래. 이 얼마나 깔끔한가. 작품의 제목이 없고 작품번호만으로 된 곡은 어떤 기분으로, 무엇을 떠올리면서 작곡을 하였는지 작곡 시기와 작곡가의 주변 상황을 연구해가면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출판업자나 후대의 누군가가 그렇게 유추해서 붙인 닉네임이 잘못된 이해를 불러일으켜 오히려 음악 감상에 방해를 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해 왔기 때문에 그 닉네임에 항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이 마음 한편에 웅크리고 있다. 그래서 랑케의 꽃노래는 누군가의 유추도, 닉네임도 발붙일 여지는 없어 보인다. 시작은 그랬다.  


시작은 그랬지만, 흑흑,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탐구하는 알쏭달쏭한 사람의 마음은 꽃노래라는 타이틀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나는 그 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랑케는 어떤 꽃을 생각하면서 작곡을 하였을까? 꽃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계절은 봄이었을까 아니면 가을, 그것도 아니면 여름 비바람을 이겨내고 물기를 막 털어내고 있던 찰나였을까? 꽃을 노래하는 것일까? 꽃이 사람에게 얘기하는 것일까? 음표의 개수만큼이나 종 잡을 수 없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처음 조금 빠른 구간에서는 살짝 더워지려는 한 낮 오후에 무심하게 흔들리는 꽃이 보이다가도 중반의 단조 분위기는 어쩐지 깊은 사연을 가진 흐드러진 꽃 길이 보이기도 한다. 웨딩마치에 나부끼는 화려한 꽃 길은 분명 아니고 천둥번개 비바람을 이겨내고 있는 사연도 없는 듯하다. 때로는 느리고 밝다가, 때로는 조금 진중하고 화려한 듯한 곡의 분위기에 따라가다 보면 랑케는 꽃을 본 게 아닌 꽃처럼 아름다운 그 누군가를 상상하면서 음표를 그려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흘러가는 선율에 딱 들어맞는 꽃이 무엇일까를 찾아보려 했지만 둘러보아도 꽃은 없었다. 꽃노래를 연습하면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다. 도심 속에 꽃이 없구나... 내가 살고 있는 곳에 꽃이 없구나. 그동안 관심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정말 없어서 볼 수 없었구나. 그래서 달리 생각하면 이거 하나만은 분명한 듯하다. 랑케가 살던 마을에는 꽃이 많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론도 형식의 곡이다. (첫 주제는 마지막에 다시 반복된다) 8분의 6박자로 조금 느리지만 밝은 선율로 시작하여 2 주제 단조로 변하면서 살짝 하늘이 흐려지는 듯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내 첫 주제로 돌아오면서 밝게 마무리된다. 아르페지오 구간은 여전히 정확성과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워 많은 반복 연습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연습 팁을 공유하자면 먼저 화음으로 묶어내고, 정확한 도약을 연습하고 난 다음 화음을 풀어 연습하는 게 도움이 되는 듯하다.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모두 그렇게 반복한다. 다만 화음을 풀어 연주할 때 연결이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해서 마치 셋 잇단음표처럼 끊어져 들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Lange Blumenlied
긴 아르페지오 구간은 화음으로 나눠서 연습


2 주제의 도입부이다. 사실 이 곡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서 들려오는 선율에 반해서 수소문해 알아낸 곡이다. 그런데 어떤 점에서 내 발걸음을 멈추고 주차장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게 했을까? 꽃을 애찬하는 가사와 조수미의 목소리를 입혀야 할 것 같은 "노래"같은 멜로디에 신나는 듯 풍부한 화음이었다. 풍부한 화음은 여러 성부의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는 듯한 느낌과 시원한 청량감을 갖게 한다. 2 주제부터 이런 형태의 화음이 전체에 걸쳐있다. 흥겹기도 하다가도 주말 드라마 끝나면서 빠르게 넘어가는 예고편에 어울릴 듯한 비장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발랄하고 신나게 해야 할지 차분하게 해야 할지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다. 연습에 주의해야 할 포인트는 때론 스타카토로, 때론 연결음으로 이어지는 부분과 곡 전체에 쏟아지는 페달이 너무 과하지 않게 하는 것도 포인트로 보인다. 화음도 많고 셈여림도 강한데 페달을 적절할 타이밍에 놓지 못하면 쉼표들이 살아나지 못하고 찢긴 꽃잎처럼 지저분해질 수 있다.

스타카토, 쉼표, 페달을 깔끔하게


꽃노래 종지부로 향한다. 오른손 4개의 손가락이 열일해야하는 부분이다. 스타카토이면서 글리산도, 매끄러운 이음.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었던 구성은 새로운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열심히 해보자.


그리고 감동스러운 종결. 계속 이어질 듯하다가 마지막 두 화음은 깔끔하게 곡을 종결시켜버린다. 그것도 아주 편안하게. 단 두 화음으로 흥분된 마음은 순식간에 가라앉는 마법처럼 느껴진다. 참 아름다우면서 놀라운 화성의 힘이다. Tranquillo의 고요함으로 스르륵 빠져들어간다.

마지막 두 화음은 마법이었다


주변에 꽃이 없으니 나에게는 구름이 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Handel Saraband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