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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Oct 31. 2022

Handel Sarabande

뜻하지 않은 중단

정말 음악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기분 탓일까? 하늘은 맑고 화창하고 단풍은 오색으로 물들었는데 사라방드의  두 마디의 선율이 내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를 건조하게 말리고 있다. 항상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음악은 분명 내 주변의 공기와 정서, 나의 생각과 행동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음이 틀림없다.


 사라방드는 바로크 시대 춤곡의 하나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복장으로 어떤 춤을 춰야 이 곡과 어울릴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곡이 흐르는 내내 지워지지 않을 만큼 엄숙하고 장엄하기도 하지만 때론 진혼곡처럼 우울하고 비장한 사라방드는 분명 춤곡이라고 했다. 예술이 인간의 표현 욕구를 드러낸다면 기쁘고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프고 우울함 또한 우리 삶의 일부이니 사라방드의 존재 이유는 충분히 설명은 되었고 의심할 여지도 없다. 환희의 찬가도 있지만 레퀴엠도 있듯이 결코 드문 일도 아니니까.


이 곡의 악보는 정말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원곡이 무엇인지 모른 채 변주곡에 더 마음이 쏠리다 보니 원전을 찾아보려는 의욕이 나질 않는다. 예전 같으면 '훗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라며 도전장을 내밀만도 했겠지만, 이내 포기한다. 이것도 사라방드의 힘일까? 나의 생각과 행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음악의 힘. 숨을 턱 내려놓게 만드는 화음은 나의 의욕마저도 턱 내려놓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런 음악의 힘에 얌전한 고양이처럼 순종하며 몸을 맡겨본다. 사라방드에 대한 순종은 불길함의 아름다움 때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Grave"라는 단어는 연주자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할지를 친절하고 분명하게 가리켜 준다. 하프시코드 곡이기에 페달이나 연결음이 없는 게 맞겠지만 여러 피아노 연주 버전은 선율의 울림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곡을 연습할 때면 그 곡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사라방드로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곡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아침 첫 곡을 다른 곡으로 하더라도 연습곡이 머릿속에 맴돌 수밖에 없는데, 그 선율이 나의 하루를 맴돌고 이틀을 휘감고 사흘을 지내다 보면 점점 피폐해지는 것 같다. 지배당하기 전에 서둘러 연습을 멈추고 말았다.  


표지그림 일러스트레이터 Jean Ju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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