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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Nov 20. 2022

Mozart 피아노 협주곡 no. 21 Andante

엘비라 마디간

Mozart Piano Concert no. 21 Andante


화가 나 있다. 과거의 잘못에서 배우지 못하고 고치지 못하는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이 원망스럽다. 그렇게 원망만 하고 있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러다가 기껏 내린 결론이 회의적인 결론이고 그런 생각들이 반복되면 무기력, 우울, 좌절...로 빠질 수 있다는 걸 아는 지혜는 있으니 그 힘으로 탈출을 시도해 본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를 세우고 법을 만들었는데, 여전히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변함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만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주체만 달리할 뿐. 법이 우리를 항상 지켜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심지어 이성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무기력해지는 모습에 실망하고 만다. 새로운 갈등을 만드는데 천재적인 또 다른 '만인'들은 자기 영역을 보존하기 위해 오히려 법을 이용하여 그 빌미를 찾으려는 영악함에 다시 한번 진저리 치게 한다. 이럴 때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릴 적 그때보다 더 잘 살기 좋은 세상인지 깊은 의구심이 든다. 휴대폰이나 인터넷이 없어서 차라리 모르고 살았다면은 더 좋았은지도,.. 당분간 뉴스를 보지 않는 실험을 해 본다.


잠시나마 생각을 돌리고 나를 위로할 무엇을 찾는다. 그래서 음악은 더 절절히 다가온다. 음악이 우울할 때 위로를 주고, 들떠 있을 때 기분을 가라앉혀주고 평온함으로 이끌어준다. 힘에 부친 일이 있을 때 음악은 안정제 같은 역할을 해 주니 다시 생각할 힘을 얻게 해 준다. 회사일을 하면서도 계획된 일,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면 그리 고단하지 않을 터인데 가끔씩 예상에 어긋나는 갑작스럽고 당장 판단이 어려운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면 스트레스 지수는 급격히 상승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 주간 업무에 지치고 치열한 고민으로 시간을 보냈다면 주말은 더욱 기다려지고 소중한 시간이 된다. 이와 반대로 주중에 늘어지는 낮잠을 즐기듯 한가하다면 주말은 그저 그런 의미 없는 날 중에 하나일 뿐일 것이고. 소중함을 느낄 수 없으니까. 음악은 그렇게 기다리는 주말처럼 잠시 숨 돌릴 틈을 준다.


참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듣는다. 하지만 음악이 없어도 세상은 아름다워야 하는데...


어느 성공적인 영화 덕분에 어떤 음악들은 본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또 다른 별칭을 갖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영화 피아니스트 - 쇼팽 녹턴 21번처럼. Mozart Piano Concert no.21 Andante. 이 곡은 엘비라 마디간이 점령해 버렸다. 1967년에 제작된 스웨덴 영화로 당시 외국어 영화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이 뒷받침되면서 영화와 배우 모두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덩달아 이 곡의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영화도 클래식 음악도 잘 몰랐던 어린 시절, 이 곡이 어떤 영화 음악으로 작곡된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곡으로만 알고 있었으니, 그 순간만큼은 모차르트보다 더 위대한 영화음악 작곡가 그 누군가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는 모차르트 곡 외에도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나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등 몇몇 클래식 곡들이 등장한다. 비발디의 겨울은 가슴속에 불어오는 찬바람과 같은 불안한 감정을 잘 대변해 주고 있긴 하지만 모차르트의 안단테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 화면의 목가적인 사랑의 풍경과 음악이 주는 인상에 매료되어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몇몇 장면만 기억에 남아 있었던 영화 엘비라 마디간을 다시 찾아내어 돌려본다.   


Mozart Piano Concert no.21 2nd movement Andante, 도입


단선율은 마음부터 편안하다. 협주곡이기 때문에 피아노가 대표 악기라고 할 수는 없고 낭만적인 현악기의 선율이 없다면 피아노 역시 빛을 발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자주 들었을까? 그래서인지 여기 피아노 파트를 연주하면 들리지 않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서로의 박자를 마음의 손짓으로 맞춰가며 연주를 시작한다. 특별히 복잡한 부분이 없는 물방울 떨어지듯 잔잔한 선율과 반주이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곡 보다도 감미롭고 풍성한 현악기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지우려 해도 연주가 시작되면 더 생생하게 들려오는 건 어찌 막아낼 도리가 없다.

  

'Andante'가'느리게'를 의미하지만 단순히 직관적인 의미로서 '느리게'라고만 해서는 이 곡이 설명될 수는 없을 듯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지만 '느리게'보다는 '천천히'가 더 어울리고, 좀 더 살을 붙여본다면 '천천히 숨결을 느끼면서'라고 해석하면 어떨까 한다.


반주와 선율이 호흡을 맞춰 흘러가는 건 맞지만 왼 손과 오른손이 서로에게 무심한 듯 조금씩 엇갈리게 갈 길을 가는 셋잇단 음표의 흘러내림은 작은 기술이지만 곡 전체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절묘한 기술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애증을 불러일으킨다. 왼손의 반주에 맞춰 딱딱 끊어졌다면 피아노 선율에서 오는 따뜻한 감정은 이보다 덜 하였을 것 같다. 이 때문에 반주의 박자에 맞추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연습은 필요한 부분이다.


극적인 아름다움은 왼 손과 오른손이 서로의 발걸음을 맞추지 않는데서 피어오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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