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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Aug 10. 2022

Chopin 녹턴 no.20

Chopin Nocturne No. 20 Op. Posthume.

Chopin Nocturne No. 20 Op. Posthume.

 

      # 4개가 붙은 C# minor (올림 다단조)이며 Chopin의 21개 녹턴 중 사후에(Posthume)에 공개된 곡이다. 하지만 실제 작곡은 그의 젊은 시절에 다른 녹턴보다 훨씬 먼저 작곡된 곡이다. 어느 평론가는 다른 녹턴과 형식이나 길이가 다르기에 ‘쓰다 만’ 곡으로 다른 곡에 비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영화 피아니스트에 등장하면서 단번에 대중적인 인기곡으로 떠오른 곡이기도 하다. 영화감독의 선곡과 표현 능력에 박수를 보내기도 하지만 이렇게 매체의 영향이 무섭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C# minor 곡으로 쇼팽의 즉흥환상곡(Op. 66 Fantaisie-Impromptu), 베토벤의 월광(Moonlight Sonata), 쇼팽의 이별의 노래(Etude Op.10-3 Tristesse)가 있다. 내가 피아노 곡에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 대표적인 곡들인데 모두 C# minor다. 와우! 화성학은 학창 시절 장, 단조 변환을 수학공식처럼 외웠던, 그래서 답답해했던 음악수업 기억 이후 깨끗이 잊고 살았기에 악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악보를 다시 펼쳐 들기 시작하고 관심 있는 곡들의 악보를 찾다 보니 그제야 조성이 보이기 시작한 거다. 그런데 모두 C# minor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같은 조성에서 오는 강렬한 끌림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깨우친 듯한 놀라움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이유에 대한 호기심도 함께 일어났다. C# minor 조성이 대부분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안개가 가득한 새벽 숲 속의 모습이 음산하지만 곧 해가 뜰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 분위기라면, 한 겨울 눈과 비가 섞인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질척한 회색빛 도시 거리에서 방황하는 모습에 더 가까울 듯하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포스터 속 전쟁 폐허 도시 속에서 가족을 잃고 삶의 희망도 없이 살아남기 위한 절망적인 상황이 딱 그것이다. 깊은 내면의 모습을 들켜버린 듯하다.


    악보를 읽고 있다. 이미 충분히 들었기에 환청처럼 생각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을 지경이 되었다. 감정은 절정에 다다른다. 누군가 나의 표정을 보았다면 이미 세상을 다 잃어버린 듯한 정말스러운 표정 발연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엊그제 잠시 굴려보았던 C# minor 스케일로 흑건, 백건의 위치를 번갈아가며 확인하였고 조심스럽게 첫 화음을 눌러본다. 아… 황홀한 그 선율 그대로다. 그리고 멈춘다. 쉼표에 새겨 있는 고뇌에 찬 깊은숨을 내쉰다. 4분 쉼표의 정적을 깨기 위해 살짝 실눈을 뜨고 다음 음을 확인하고 손가락을 옮긴다. 여리면서도 조금 강하게 눌러본다. 제멋대로의 감정이입도 끝냈고 얼토당토않게 기가 찬 곡 해석까지 완성한다. 이렇게라도 제 멋에 잠시 정신줄을 놓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땡! 어라? 이상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화음이 아닌 이 불협화음은 어쩐지 이상하다. 틀렸다. 땡! 전국 노래자랑에서 들렸던 그 땡! 소리가 들린다. 현실과 타협해야 할 순간이 왔다. 그럼 그렇지 뭐, 꿈은 그만 꾸시고 연습을 하세요.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다. 어제는 악보도 없었는데 오늘은 악보가 있고, 오늘 첫 음을 눌렀으면 내일은 다음 음을 누르면 된다. 갈 길이 있고 목표가 있다면 즐겁다. 그렇게 첫 연습은 10분 30초가 걸렸다. 스케일은 엉망진창, 속도는 역시나 기대할 게 없다. 검은건반, 흰건반 위에 손 끝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건 내가 지난밤 마신 술이 맨 마지막까지 깨지 않고 남아 있는 부분이 손가락 끝에 있기 때문인 게 아닌가 싶다. 쇼팽 녹턴 중에서 가장 쉬운 곡이라고 생각하지만 30년 전 체르니 30번에 10번을 넘기다가 그만둔 나에게는 꽤나 암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초보자들은 얼마나 연습하면 이 곡을 완성할 수 있느냐는 답에 목말라하지만 사실 그런 데이터는 없다. '완성'한다는 의미도 모두 다르기에 더 어렵지만 전문 연주자와 비슷한 시간으로 미스터치 없이 연주해보려는 나의 완성의 목표를 세워본다. 다시 연습한다.


도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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