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yYu May 05. 2023

번아웃 가까이

토닥토닥, 나를 위로하는 비창

    "선배, 제 영어이름 좀 지어주세요. 이름이 K로 시작하니 영어이름도 K로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요?"

    "음... 그럼 그냥 K로 ?", "Kay"


    와... 가벼운 감탄사와 함께 그날 이후로 내 영어이름은 Kay가 되었다. Kevin, Kenneth, Kelly 등 K로 시작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진짜 영어(?)에서 가져온 이름이 아니기에 훨씬 매력적으로 들렸다. 이름에는 그 어원이 담고 있는 의미나 가문의 내력,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이름에서 파생된 수많은 이름 등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냥 듣기 좋아서, 혹은 세련되어 보이니까 덥석 내 영어 이름이라고 짓고서는 후에 그런 비슷한 과정으로 지은 같은 영어 이름을 마주치고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다. Kay는 그런 면에서도 자유로운 이름임틀림없다.


    그 선배가 문득 생각나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차 한잔하고 싶었다. 몇 달 전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새로운 업무를 부여받았고 그 일이 지금까지 해 본일과 다르게 낯선데다가 쉽지 않은 역할이다보니 힘이 많이 부친다는 얘기를 나눴었다. 그렇기에 요즘은 어떤가 싶은지 더 궁금하기도 했다. 휴대폰 번호도 있긴 하지만 사무실 번호를 찾으려 회사 임직원조회를 해보니 검색되지 않는다. 헛! 당황했다. 잘못 검색했나? 다시 검색했고 다시 당황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검색이 되지 않는 경우' 단 한 가지 밖에 없었다. 퇴사?


    하지만 절대로 그 선배는 얘기도 없이 퇴사할 사람은 아니라고 믿었기에 여기저기 수소문해본다. 다시 알아보니 다행히 퇴사는 아니고 휴직이란다. 장기근속자는 몇 개월간 무급으로 회사를 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선배는 그걸 이용한다고 했다 한다. 책임감이 강하고 남에게 불편함을 주는 걸 어려워했던 그 선배가 그 어렵다는 일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그렇게 갑자기 휴직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건임에 틀림없다. 필시 용기를 내어 큰 결심을 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건 개인이나 가족의 신변의 큰 변화가 있던게 아니라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가본다. 그 새로 부여받은 그 일에 대해 한 숨 섞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 일 자체가 육아휴직을 간 또 다른 동료의 자리, 그것도 리더의 자리를 인계받은 일이라 하였다. 일단, 여기서부터 듣고 있는 나조차도 어질어질해지기 시작한다.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인 선배는 긍정마인드를 바닥부터 끌어올리고  어떻게 마인드관리를 해 나가는지를 나에게 조목조목 알려준다. 너무 몰입하면 안 된다, 그러면 결국 나만 지치더라, 힘들 때는 이야기 나눌 사람을 찾아서 대화를 하면서 헤쳐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와, 리더의 역할은 힘들지, 사람들이 내 마음 같지 않지만 같이 나아가야 해, 너도 힘들지?


    너도 힘들지. 고개를 끄덕끄덕, 그렇지요라고 맞장구를 치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금까지 하는 얘기는 나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라 선배가 듣고 싶은 얘기라는 걸. 누군가 자기의 정말 힘든 상황을 이해하고 들어줬으면 한다는 걸. 얼핏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고 어쩌면 이 선배에게 머지 않아 찾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실컷 들어줬다. 하고 싶은 얘기 전부 다.


    전화를 했다. 밝은 목소리였다. 털털하게 웃으면서 3개월 쉰단다. 쉬니까 좋다고. 특별히 하는 것도 없지만 그래도 쉬니까 좋다고.


    내가 각별히 좋아하는 비창 2악장. 마음이 심란하고 힘들 때 불길에 물을 끼얹듯 마음을 잠재워주는 마법이 있다. 그래서 잠시 기억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무엇 때문에 심란해했는지 잊어버리고 싶을 때면 찾곤 한다. 연주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 곡이 끝난 후의 공허한 공백이 오지않았으면 할 만큼 그 몰입감에서 오는 평온함은 의사 처방전에도 쓸 수 없는 '약'이다. 선배에게 이 곡을 들려주고 싶다. 빨리 마음의 건강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