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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May 19. 2023

무의식편향

본능은 반성할 수 없어

    '휴대폰 좀 빌려주세요'






    그 사람 방향으로 가는 나의 행동에서 그는 마음이 통했을까?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나를 지켜보더니 나에게 겨우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주말 이른 아침 7시 반, 천안에서 서울로 가는 지하철 1호선 급행열차를 타려고 서 있다. 한적한 역사, 너무 한적해서 아무도 없을 것 같았던 역사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저만치 멀리서 얼핏 보기에도 며칠 동안 씻지 못한 피부와 바닥에서 뒹굴었는지 너무나도 지저분하고 계절과 어울리지 않은 두꺼운 점퍼 힙합전사처럼 흘러내린 바지춤, 모포를 둘둘 말은 모양 같은 더블백을 매고 있다. 이 모습을 읽어내는데 1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사람과 얼굴이 마주쳤다. 애당초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 사람을 보고 방향을 돌린다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게 분명해 보였고 나는 최소한 사람 대 사람으로서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누군가에게 직진한다는 건 그 사람이 연인이거나 나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그건 이상한 행동이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는 발걸음을 멈출 수도 없었고 방향을 바꿀 수도 없었다. 그 사람의 행색이 지극히 정상적이었다면 멈추고 방향을 트는 건 누구도 눈여겨보지않는 평범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휴대폰을 빌린다? 누구에게 전화하려는 것일까? 휴대폰이 정말 없기는 한 것일까? 지하철을 타고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지하철 탈 돈은 있었나? 휴대폰이 있지만 배터리가 없는건가? 휴대폰을 얼마나 쓰려는 것이며 내 손에 무사히 돌아올까? 정말 전화가 급하다면 역무원에게 요청해도 될 일 아닌가? 경찰서를 찾아도 될 일이다. 여러 가지 합리적인 의심으로 나는 그 사람 가까이 다가가기를 주저하다가 결국 저만치 떨어져서 역무실로 가시면 전화를 쓸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목소리를 높여 얘기했다. 다시 물어 보지 못하게 조금 강한 어조로.


    한 주가 지났는데도 그 5분이 잊히지 않는다. 휴대폰을 빌려달라는 눈빛은 분명 순수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몸거지는 나에게 분명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그게 나를 지키려는 본능이었을까? 거기에 충실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무의식편향이니 뭐니 심리학용어는 '본능'을 해체해서 언어로 표현해 본 어느 똑똑한 심리학자가 만들어낸 작품일 것이다. 정말 아무 일 없이 곱게 전화 한 통 쓰고 고맙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불안함은 나 혼자 뒤집어쓰고 있었을 뿐이다. 죄책감이 살짝 밀려왔지만 다시 그 사람을 만난다 하여 휴대폰을 건네줄 용기는 여전히 없다. 그렇다고 죄책감이 가시지도 않는다. 사람에 대한 원죄다. 나는 반성해야할까? 


    사실, 사기꾼들, 혹은 조폭들도 항상 말끔히 양복을 차려입고, '착하게 살자', '근면성실'을 가슴에 품고 산다. 말끔히 정장을 입은 젊은 숙녀에게 휴대폰 빌려주었더니 냅다 튀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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