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다.

잘 될 필요 없다. 힘낼 필요도 없다 그저 이대로 흐르는 데로 살면 그만

by 사월애

올해 2월, 많이 아팠다. 하루에 눈을 뜨고, 다시 눈을 감는 순간까지.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 존재하는 나의 모든 것이 내 인생이라 믿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화장실에 달려가 씻고 출근 준비를 했다.

나는 작은 가게 주인이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전주에서 가게를 운영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사업에 사짜로 모르는 멍텅구리였다. 자신감만 가득해서 일을 저질렀는데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어설프고 헤매는 일이 많았다. 돈도 쥐뿔 없어서 실내 페인트도 스스로 칠하고, 공장에 제품 생산할 돈도 없어서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핸드메이드 배지를 만들겠다고 직접 하나하나 그림을 그리고 칠해서 제품을 만들었다. 하나 만드는데 30분이나 걸리는데 하나 가격이 몇천 원뿐이 되지 않았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초보의 가게 운영이 시작되었다. 평일에는 사람이 없어 하루에 많이 팔아봐야 1~3만 원이었고, 매출이 없었던 날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주말에는 많이 팔리면 5만 원~10만 원을 벌었다. 내가 만든 물건이 팔린다는 신기함에 하나가 팔려도 미친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비수기가 오고 수입이 점점 줄어가면서 걱정은 날로 늘어만 갔다. 내가 유일하게 벌어들이는 수입이 가게 수입인데 이대로라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사람들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만나자고 할 때면 비용부터 신경 썼다.

내가 감당해낼 수 있는지, 아니 생활비도 못 버는데 어떻게 사람을 만나 나라는 생각이 들어 몇 번이고 약속을 취소했다. 어떻게든 가게를 잘 운영해보려 밤낮으로 매일 가게에 매달렸다. 사업은 3년은 해봐야 안다던데 이상태로 어떻게 3년까지 버티라는 말인지 머리가 복잡스러웠다. 처음에는 다들 사업할 때 빚으로 시작한다던데, 나는 빚조차도 질 수 없는 신용등급이라 돈을 빌릴 수도 없다. 온종일 내가 하는 거라곤 가게에서 물건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가게가 잘될지 생각하는 것인데, 답이 안 나온다. 가슴이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심하게 왔다. 집에서 전화가 올 때면 가게는 잘되냐 돈벌이는 잘 되냐고 물어볼 때마다 어색한 말투로 잘된다고 얼버무려야 했다.


내가 스물아홉이 되던 해였다. 주변 친구들은 다니던 회사에서 팀장으로 승진하거나, 정직원 전환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쁨의 축배를 드는 사진들, 여행을 떠나거나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는 사진들이 sns에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심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비교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끊임없이 그들과 나를 비교하고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이게 다 네가 세계여행을 다녀온다는 핑계로 가족들 내팽개치고 떠난 하늘의 저주다 라고 나 스스로한테 욕하듯이 내뱉었다. 스물아홉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반짝이는 경험과 추억마저 소멸해버리는 기분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느꼈다. 한 달, 두 달 지나갈수록 불안은 더 심해져만 갔다. 어떤 날은 sns를 보다 갑자기 손이 심하게 떨리고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몸을 못 가눌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깊은 한숨과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이 느껴지는 아빠의 목소리


"혹시, 대출 좀 알아볼래?"


여행을 떠나기 전, 어려운 아빠의 경제적 상황으로 여행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사실 나는 그 상황들을 탈피하고 싶어 떠나고 싶었다. 나는 어렸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으며, 그 무엇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고 나니 나는 이미 스물아홉이 되어있었다. 못 갚은 학자금 대출과 내 이름으로 받았던 대출들, 아빠의 산더미 같은 빚도 여전했다. 여행하는 동안 한국에 가면 빚도, 현실도 잘 극복해 낼 거라는 순수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돌아와서 알았다. 처참한 나의 진짜 인생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아빠는 매일을 빚더미에서 겨우 숨을 쉬었다. 하고자 하는 일은 족족 실패했고, 나 역시 답이 없으니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더 대출을 하고 싶어도 이미 대출받은 것이 있어서 할 수도 없었다. 세상은 나와 아빠를 빚더미 창고에 가두어 버렸다.


사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나 자신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업을 그만두고 고정수입을 받을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면 다달이 꾸준히 빚을 갚고, 아빠도 숨통이 트일 거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어서,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두 손에 꼭 쥐고 놓지 못하고 있다. 항상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던 아빠를 위해, 이깟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밉고 싫다. 나의 것을 손에 쥐고서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친구들이 미친 듯이 부러워지는 매일이 반복된다. 분명 하루를 꽉 채우며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데 왜 나만 안될까. 왜 나만 여전히 그대롤까. 되묻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복잡스러운 질문이 던 저지고 난 뒤에 나오는 결론은 항상 같았다. 네가 부족해서 그래, 네가 덜 노력했으니까 그래라는 자책뿐.


어느 날은 아침에 눈을 떴는데 당연스럽게 숨을 쉬며 잔혹한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한참을 못 일어나고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스스로가 세상에 존재할 그 어떤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불안과 잡념은 내 머릿속에 곰팡이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의 의식과 마음은 고장 난 시계가 되었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자책만 하다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원망했고, 어느 날은 패배감에 젖어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어떤 날은 하루가 짧은 필름처럼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었다. 두통이 심해지고, 잠만 자면 악몽에 시달리고, 머리카락이 빠졌다. 뭔가 내 몸에 이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출근길에 걸어가는 나의 두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 벌음 두 걸음 분주히 움직이는 다리, 이 걸음은 무엇을 위한 움직임인가라는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 수 없다. 내가 내딛는 한걸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때 내가 이 세상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묻게 된다.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쓸쓸함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것들,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마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멈출방법도 알 수가 없다. 지나가는 길 위에 이쁜 꽃들이 피어도, 기쁜 일을 마주해도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은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하나도 느낄 수 없다는 건, 무섭고 슬픈 일이다.

나는 자주 티브이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하는 강연을 자주 접하곤 했다. '행복해지는 삶', '돈 많이 버는 법', '성공하는 비결' 등의 주제의 영상들을 접했다. 노력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더 경험해야 한다. 우울증은 스스로 노력하여 극복해야 한다.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하는 저 말들을 들으며 다 쓰레기 같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에게 노력을 강요하고, 언젠가 행복해질 거라는 희망을 품으라는 소리는 더 큰 좌절감과 무력감만 줄 뿐이다.


나는 행복을 포기했다. 풍족한 삶, 빚을 더 이상 지지 않겠다는 생각 모두 그만두었다. 나에게 주어진 처절한 내 삶을 그냥 그대로 인정하며 수긍하며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행복을 기대하지 않으니 오히려 숨이 쉬어졌다.

내 삶을 그냥 내버려두니 언제 죽어도 미련 없는

평온함이 찾아왔다.


깊은 어둠은 그 어떤 밝은 요소도 구해줄 수 없다는 걸 이십 대 끝자락에서 처절히 깨달아버렸다.


- 2018.08
안녕 나의 스물아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