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주하기 위해 택한 방법
모두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알던 내가 정말 나일까?"
어린 시절부터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모습과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달랐던 것 같다.
물론 주변환경이나 나이에 따라 조금씩 성격과 성향이 변해갈 수 밖에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는 '활달하고 외향적인 아이' 로 비춰졌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소심하고 내향적인 모습은 혼자 있을 때만 드러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바깥 세상에서 꾹 누르던 감정이 엄마 앞에서나 집에 혼자있을 때 터져나오기가 일쑤였다. 아이들 중에 넘어지거나 친구랑 싸우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 다시 방긋 웃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렇지 않은 것 처럼 보이다가 나중에 서러움이 폭발해 우는 아이가 있는데 나는 후자였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다른 사람 앞에서는 내 감정을 보이기 싫었다. 아무렇지 않게 씩씩하고 싶었다. 그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계산이 되어있었다는 걸 20대 후반에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이런 성향은 바뀌지 않아서, 눈치 백단인 나는 어딜가도 '활달하고 외향적'으로 행동하며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에 잘 맞추려고 노력했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팀원 누가 어떤 메뉴를 좋아하는지 뭘 못 먹는지 기억해 그에 맞게 주문했고, 누가 뭐라 하더라도 상처 하나 안나는 강심장인 것 처럼 굴었다. 가기 싫은 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가서 '너무 재밌어요' 하며 깔깔댔고, 불합리한 상사의 지시에도 거절이란 없는 '예스맨' 이었다. ('노'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물론 이 때에는 어린시절의 나와 달리 불만을 속으로만 쌓아두지 않고 친구나 동료들이랑 격하게 욕하는 걸로 해소하려 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전혀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뒤에 알게되었다.
'출근이 기대되고 퇴근이 아쉬운 직장인은 아무도 없어'라고 생각하며 자기 위안하며 보낸 직장인으로서의 하루 하루는 내 마음속에 너무 많은 억울함과 부침을 남겼다. 일주일 중 평일 5일을 자판기에 동전처럼 욱여넣고 짜증과 피곤의 손으로 힘껏 레버를 돌려 주말 2일을 얻어내는 삶.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보낸 하루하루는 생각보다 깊게 내 마음을 병들게 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건 스스로 찾아야만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성취감과 효능감, 몇 백만원의 월급 뿐이라는 생각이 더욱 나를 허무하게 했다. 거기에 불평불만이 하루 동안 내가하는 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자괴감이 더해지면서 '나'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내가 알던 내가 정말 나일까?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언제 행복하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이지?"
먼 길로 돌아가더라도 진짜 나를 찾고싶다는 열망이 시간이 지날 수록 강해졌다. 학창시절 방에 틀어박혀 좋아하는 음악을 밤새 들으며 예술에 대한 동경을 키워나가던, 시와 철학의 아름다움에 두근거리고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을 닳도록 음미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 때의 '나'를 찾고싶었다.
나를 찾기위한 첫 발걸음으로 '질문하기', '다른 길 찾아보기' 라는 두가지를 택했다.
직장인으로 살아온 10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려는 앞으로의 10년의 여정은
나 자신을 마주하고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다양한 길을 통해 찾아가는 모습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제서야 남이아닌 나를, 스스로를 진지하게 정면돌파하겠다는 마음을 갖게된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기대가 더 크다. 새로운 질문이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차분히 기록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