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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Apr 26. 2019

역지사지도 정도껏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했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해왔던 노력에 내 에너지를 너무 많이 빼앗겼다. 

이젠 나를 이해하기 위해 에너지를 써야겠단 생각을 한다. 


그때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내게 날 서게 굴었을까? 왜 나를 배려하지 못했을까? 그건 날 존중했던 것일까, 아닐까.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그 사람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까? 오해할까? 나에게 어떤 편견을 가졌을까? 등등……


그동안 나는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온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역지사지를 해보려는 나의 지나친 노력은 어쩌면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서 오는 콤플렉스 때문일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 전반적으로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혹은 착각)하고 있지만(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그렇듯이) 그만큼 내 안의 자리한 작고 유치하고 어리석은 마음 역시 나는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따금씩 인간관계 때문에 힘든 마음이 들 때면 ‘지금 나는 너무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던지는 편인 것 같다. 


‘너는 외동이니까 이기적인 면이 있어.’

‘너는 외동이라서 너밖에 모를 거야.’


외동이었던 나는 이러한 편견에 찬 말들을 어린 시절부터 너무 쉽고 흔하게 들어왔다. 어린 나에게 남은 그 강렬한 기억은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일까’라는 의심으로 무의식에 자꾸만 새겨졌고 어려서부터 자기주장이 특히 강했던 나였기에 엎친데 덮친 격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애’라는 평가 또한 심심찮게 들으며 살아온 것이다. 또한 나 자신은 나의 독선적인 면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모든 일련의 생각들을 알게 모르게 강화해왔으리라.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따뜻한 배우자를 만나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아이 둘을 낳아 엄마가 되면서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시야가 넓어져갔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성장했다기보다는 내가 겪은 경험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만큼 한 가지 사건을 두고도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져 간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 흐름과 더불어 나에게 새로이 생긴 습관이 아마 역지사지일 것이다. 


자랑이냐고? 

당연히 아니다. 

뭐든 과유불급 아니던가. 

나라는 인간은 대체 왜 그렇게 적정선을 지키는 게 어려운 인간인 지…… 


역지사지도 다 때가 있는 법일진대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그 짓부터 하고 앉았으니 부작용으로 자기 검열이라는 새 친구를 얻었고 타인을 이해하려는데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렸으니 정작 중요한 나 자신의 마음은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최근 내 인생에 역작으로 남을 만큼 커다란 인간관계의 갈등을 겪었는데 이 문제를 받아들이고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뭔가 내가 처리하는 작업의 순서와 무게 분배가 잘못되었단 걸 깨닫게 되었다. 강한 분노와 원망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용솟음침에도 불구 나는 자꾸만 그것들을 뒤로 내팽개쳐두고 갈등의 원인이나 사건의 시시비비를 판단하기 위해 타인의 입장에 서서도 생각해보려는 노력을 자꾸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당치도 않다. 당장 내가 열 받아 있는데 그게 어디 이성적으로 생각한다고 될 일이냔 말이다. 이쯤 되면 본인이 부처라는 얼토당토않은 착각이나 진배없다.


당연히 내 입장에 서서도 무수히 생각을 해보았는데 이때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은, 내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해주지는 않으면서 그것의 원인과 결과만 따져보려 했다는 것이다.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왜 내 생각만 할까, 왜 나는 이렇게 화를 낼까, 정말 내 잘못일 수도 있잖아.’ 등등…… 


그렇게 해결되지 않을 마음의 괴로움이 떠나지 않고 맥이 다 빠질 때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너 지금 뭐해? 너 지금 열 받았잖아. 너 지금 성질나잖아. 왜 자꾸 모른척해. 분노해도 돼. 사람이 갈등 상황에서 분노하는 게 당연하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네가 네 편에 서서 열 받고 화내는 게 더 자연스러운 거야. 그게 나쁜 게 아니야.’ 


한 친구도 말했다. 


"일단은 분노부터 폭발시키고. 그리고 그다음에. 상대방 입장 이해는 그다음에 하자."


실은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그 말을 친구 입을 통해 듣는 순간 사이다를 마신 듯 체증이 싹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분노를 인정했고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말했으며 적기까지 했다.


[ 꺼억- ]


그렇게 마음의 트림을 시원하게 뿜어냈으니 오늘 밤은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너의 대한 연민과 나의 대한 후회는 좀 나중에. 오늘은 말고. 

내 맘이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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