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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Sep 10. 2019

엄마 손맛은 개뿔, 정성만으론 맛있어지지 않는다.

도시락 전쟁 in 뉴질랜드.

운이 좋게도 아이들 둘 다 먹는 문제로 크게 속 썩은 기억이 없다. 두 아이 다 각자 유독 좋아하거나 못 먹는 음식이 한두 가지쯤은 있지만 크게 편식하는 편은 아니니 그저 감사할 뿐. 아가 때는 모유만 고집하는 통에 잘 먹는 또래 아기들에 비해 약간 작은듯싶게 자랐지만 돌이 지나고 밥을 먹으면서부터는 표준을 금방 따라잡았다. 


한국 나이로 8살, 5살. 요 꼬맹이들이 한창 크는 때라 그런 지 수시로 배가 고프다고 칭얼 거리는 게 요즈음의 주특기인데 간단하게 때울 수 있는 간식보다는 꼭 내가 직접 요리해준 무언가(?)를 선호하기 때문에 바쁠 때는 정말…….. ‘새꾸 새꾸 내 새꾸. 이 놈의 자식 새꾸가 뭔 지!! 으잉!!’이라는 말이 깨문 어금니 사이로 슬금슬금 비집고 나온다. 심지어 때로는 심심하다거나 그냥 엄마가 곁에 있어줬으면 싶을 때에도 아이들은 그 표현을 배고프다는 말로 대신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럴 때면 더욱 외면하기가 힘들다. (우이 씨… 나는 누굴 찾노…)


지난주는 없던 일정들이 갑자기 생기는 통에 좀 더 시간에 쫓겼던 한 주였는데 이럴 때는 나도 기댈 때가 없으니 방도가 없어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곤 한다.


“여기저기 뒤져서 과일이나 시리얼, 크래커 같은 거 아무거나 꺼내서 좀 먹고 있어.”


하루는 첫째 아이 라군이 하교 후에 숙제를 하고 하루치의 만화를 본 뒤, 늘 그렇듯 배고프다며 갑자기 달려들었다.


“도시락은? 다 먹었어? 남은 거 없어?”


하고 물으니 아이의 얼굴이 시무룩하다. 그날 아침 도시락으로는 무려 데리야키 치킨 김초밥을 싸주었더랬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전 날 닭고기까지 직접 양념 만들어 조려가며 정성스레 준비해 싸준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잔뜩 남겨왔다. 당연히 그것부터 다 먹으라 일갈했다. 그래야 다른 간식을 챙겨주겠다고. 그게 싫으면 알아서 과일 따위를 꺼내어 먹으라고. 아이는 과일도 싫고 김초밥도 평소보다 맛이 조금 없어서 먹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 저 숨길 수 없는 정. 직. 함.


하……

뭣이라고라….

맛이 조금 없어서 못 먹겠다고라…..

.

.

.

.



“야!!!!!!!!!!!!”


나는 오래간만에 폭발했다. 


“이제부터 남은 도시락 집에 와서 다 먹지 않으면 다음 날 엄마도 도시락 안 싸. 네가 먹고 싶은 걸로 네가 직접 싸.”


“싫어요. 그런 게 어딨어요. Not fair! 내가 못 싸잖아!”


“왜 너만 Not fair야? 엄마도 싫어. 엄마가 아침부터 힘들게 정성 들여 싸준 건데 네가 조금 맛없다고 다 남겨와서는 안 먹고 버리면 엄마가 또 널 위해서 힘들게 도시락을 싸고 싶겠어? 엄마도 사람이야. 엄마도 힘들고 엄마도 기분 나빠. 네가 그러면 나도 너한테 요리해주기 싫어. 사람 마음이 그런 거야.”


아이는 울먹였다. 정말로 평소보다 조금 맛이 없어서 이번에는 못 먹겠다고 강력하게 진심을 전달했다. 그래 알고 있다. 라군은 평소에도 미각이 예민한 편이다. 음식을 먹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게 아니라, 어떤 식재료가 들어갔는지 어떤 양념을 썼는지 늘 궁금해하고 잘 맞추었다. 요리 관련 영화나 쇼 프로그램 보기를 좋아하고 신선한 재료로 갓 지은 음식을 좋아했다. 뜨겁게 먹어야 할 음식이 식으면 싫어했고 차갑게 먹어야 할 음식이 미지근하면 것도 별로였다. 나중에 어디 미슐랭에라도 취직하려나 우스갯소리로 남편과 얘기하곤 했는데…... (하다못해 맛집 블로거라도 될랑가…. -_-)

  

문제의 김초밥 도시락. 김밥 참 못 싸는 똥 손으로 이렇게 열심히 싸줬구먼!!

                      

오늘 싸준 김초밥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는 건 나도 느꼈다. 보통 시판 닭고기 통조림을 쓰곤 했는데 더 이상 통조림은 먹이고 싶지 않아서 무항생제 방목 닭 가슴살을 사다가 직접 양념해서 요리했던 것이다. 직접 만든 닭고기 장조림은 차가워지니 약간 비린내가 났다. 그래. 솔직히 나도 알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맛이 덜하다는걸. 게다가 간도 파는 것보다 약하니까. 조미료도 안 들어갔고. ‘아니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설마 이 정도쯤에 반응하고 안 먹을까. 그래도 김밥은 좋아하니까 다 먹고 오겠지….’ 싶었는데…… 친정 엄마의 말마따나. 아이고 이 귀신같은 놈.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냥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기엔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이번만큼은 그냥 대충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아이의 예민한 입맛을 나는 정말 백번 천 번 만 번 존중하지만, 나의 수고와 정성 그리고 음식에 대한 우리 가족의 태도 역시 백번 천 번 만 번 중요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확실하게 가르쳐야 할 부분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은, 나도 감정이 격해져있으니 잠시 서로 떨어져 감정을 추스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엄마 이야기는 하나도 듣지 않고 계속 네 이야기만 울면서 말할 거라면 엄마는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는 나의 외면이 힘들었는지 울면서도 꾸역꾸역 뒤쫓아왔다. 아무리 화내도 엄마가 좋다는, 곁에 필요하다는 아이 방식의 행동이었다. 아이는 아이니까. 그래도 아직은 엄마가 세상의 중심부에 있을 때니까. 따라 들어와 바싹 옆에 붙어 자신의 억울함과 곧 죽어도 먹기 싫은 그 맘을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최대한 차분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아들아. 어떻게 사람이 매일같이 정-말 맛있는 것만 먹고살아.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정-말 많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날은 정-말 맛있는 것도 먹고 또 어떤 날은 조금 맛없는 것도 먹고 그렇게 살아. 네가 정말 먹기 싫은 음식은 엄마도 먹으라고 안 해. 네가 못 먹는 새우나 파프리카, 버섯을 엄마가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네가 좋아하던 음식을 엄마 나름 맛있게 해준 건데 그걸 조금 맛없다고, 식었다고 먹지 않는 건 엄마가 생각하기에 너무한 것 같아. 그건 아닌 것 같아. 조금 맛없는 것도 먹을 줄도 알아야 해. 삶이란 게 그런 거니까. 아-주 맛없는 걸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지만 조금 맛없는 건 먹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엄마는 생각해. 아주 맛있는 걸 먹는 날도 있지만 조금 덜 맛있는 걸 먹는 날도 있는 게 사는 거니까. 그게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니까. 너도 그걸 배울 필요가 있다고 엄마는 생각해. 엄마가 매일 매 순간 매 끼니를 네 입맛에 완벽하게 맞게 정-말 맛있게만 만들 수는 없잖아. 그건 받아들여야지. 엄마도 사람이야. 엄마도 아프고 엄마도 힘들어. 엄마가 널 사랑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려고 늘 노력하지만 때로는 네가 엄마를 위해서 조금 맛없는 걸 먹어주려고 노력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 너도 엄마를 사랑하니까.” 


아이는 조금 더 울더니 이내 안아달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화가 덜 풀려서 솔직히 당장은 안아주고 싶은 맘이 없었지만 그래도 안겨오는 아이에게 팔베개를 대충 해주곤 잔뜩 꼬여버린 내 속도 풀리기를 기다렸다. 금방 잠잠해진 아이는 부엌으로 가서 남긴 도시락을 들고 방으로 들어와 내 옆에 쭈그려 앉아 먹기 시작했다.


“부엌에서 먹지 그걸 왜 여기로 들고 와?”


“그러고 싶으니까요.”


“엄마 옆에서 먹고 싶어서 그래?”


“응.”


순간 아이가 짠해서, 미안해서 멋쩍었다.


“너무 차가워서 먹기 힘들면 미소된장국이라도 끓여줄까? 그거랑 같이 먹을래?”


“네.”


하루하루 아이가 커간다. 믿지 못할 만큼 자꾸자꾸 커간다. 점점 자기 의견도 세지고 논리도 정교해지는 통에 한 번씩 부딪히면 서로 감정이 격해지며 의견 다툼이 길어진다. 나름 아이 입장에서 이해해보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지만, 나 역시 내가 믿는 대로 아이에게 강요하게 될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아는 걸 딱 그만큼만 아이에게 말해줄 수밖에 없으니까.               


뉴질랜드 공동육아에서 친구에게 한국식 주먹밥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둘째 아이, 라양.

                                  

몇 년 전부터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니 소확행이니 유행하면서 음식에 대한 가치판단이 한 가지 흐름으로 치중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즐기는 것.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절대적 기쁨.]


나 역시 식도락을 인생에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로 여기는 사람으로서 크게 공감한다. 하지만 음식이 지닌 가치는 단순히 내 입맛에 잠깐의 즐거운 자극을 주는 것뿐 아니라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생명들의 에너지와 가치가 담겨있고 그것들이 순환되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 채식에 관심을 가지며 더욱더 그 생각은 확고해져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먹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그 행위에 담겨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가치에 대해서도 잘 가르쳐주고 싶다. 음식에 대한 시각 자체가 지금 여기 나 혼자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넓은 개념으로 파생되기를, 그래서 매일 더욱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깊고 넓은 행복의 맛을 음미할 수 있기를. 욕심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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