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다는 건
남편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끓이는데 평소처럼 불린 미역을 자르려고 도마로 가져가다가 불현듯 관뒀다. 생일 미역국은 미역을 자르지 않고 긴 미역을 그대로 끓여야, 길게 장수한다는 미신이 떠올라서다. 생전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왠일인지 나이가 들었나 잠시 서글펐다.
무언가를 잃는 것이 두렵다는 건 그만큼 쥐고 있는 게 많다거나 쥐고 싶은 게 많다는 뜻일 터. 최근 병원에 자주 들락거렸던 일들을 겪으며 ‘다 내려놓아야지’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나는 여전히 꽉 쥔 두주먹에 힘을 빼지 못하는구나.
너무도 태연하게 내 것이라 여기던 것들이 사실은 하나도 내 것이 아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하나도 당연한 게 아니라고, 겸손해지고 또 겸손해지자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여러 번 말했건만 인간의 나약함은 또 다시 무언가를 쥐려고, 어딘가에 기대려고, 놓치지 않으려고. 그럴 수 있을 줄 알고.
결국 미역국은 다 끓인 뒤 그릇에 담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내었다. 길어도 너무 긴 미역이 되려 목구멍에 걸려, 장수를 막을 것 같아서.
그래도 내 마음만은 가열차게 담아 끓였으니 이거 먹고 오래오래 건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