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너두! 할 수 있어!
얼마전 셋째를 낳고 오랜만에 다시 아가를 키우면서 크게 놀랐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어마어마하게 매일 버려지는 기저귀의 양이었다. 그야말로 썩지도 않는 처치 곤란의 쓰레기 중 쓰레기인 일회용 기저귀(ㅠㅠ)가 하루에도 열 개씩 나오니 일주일마다 수거해가는 제법 큰 쓰레기통이 늘 꽉 차서 다른 쓰레기는 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다. 한국에서야 쓰레기통이 찰 때마다 봉지를 사서 수시로 버리곤 했으니 그나마 느껴지는 바가 덜했는데, 이 곳 뉴질랜드에서는 꼬박 일주일을 기다렸다 버려야하는데다 규격이 정해진 쓰레기통이 딱 '하나' 뿐이니 우리가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양을 외면할래야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쓰레기를 줄이는 데 매우 도움 되는 시스템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야. 내가 찾아봤는데 기저귀가 썩는데 500년 걸린대."
"500년? 장난 아니네?.. 기저귀가 개발되어서 세상에 나온 지가 500년은 되었을까? 그럼 정말 분해 되는 지 안 되는 지 아직 아무도 확인 못 한 거 아냐? 500년도 그냥 추정하는 거 아닌가?"
"그러게...... 기저귀 진짜 너무 많이 나오지?"
"어. 짱이야."
바야흐로 9년전...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용감하게도 천기저귀에 도전하였다. 다들 알지 않은가. 첫 아이란 그런 존재다. 뭐든 다 해주고싶고 열정이 넘치는 만큼 시행착오 역시 감당해야 하는. 그런 시절이 있는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육아법 중 자연분만, 모유수유, 천기저귀를 사용하면 신이내린 엄마라던가-_- 그런 이야기가 돌 때였다. (육아초보를 벗어난 지금은 그런 프레임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생각한다. 육아는 엄마가 행복한 게 최우선이고 장땡이며!! 엄마는 결코 신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고 생각한다.)
당시만해도 버려지는 방대한 쓰레기에 대한 죄책감이나 인식은 거의 없었고 그냥 내새끼한테 좋다니 한 번 해보자라는 철저히 '나'를 위한 이기심으로 시작했던 천기저귀였다. 나 자신도 종이 생리대를 사용하면 피부에 안 좋은 게 느껴져 면 생리대를 병행하기 때문에 아가 역시 2-3년을 매일같이 종이 기저귀를 차고 있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첫 시작은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중고로 접어쓰는 소창기저귀를 잔뜩 사고 남들이 버리다시피하는 오래된 커버 몇 개를 얻어다 밤마다 남편과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접어가며 사용했다.
지금에야 좋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당시 밤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하는 현실자각이 오곤 했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마련한 방책이 종이기저귀와 똑같은 모양으로 나오는 일체형 천기저귀. 접어쓰는 소창보단 제법 가격이 나갔지만 역시나 중고로 들이니 크게 비싸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지른 중고기저귀들이 모여 커다란 리빙박스 한 가득을 채웠는데 다 합해도 당시 돈으로 10만원을 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개의 천기저귀를 자주 빨아가며 첫째 다 클 때까지 잘 쓰고 둘째까지 물려 받아 사용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썼기에 이미 완전히, 뽕을 뽑고도 뽑은 녀석들 되시겠다.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녀석들이 뉴질랜드까지 따라왔다. 셋째 계획이 확실치 않았으니 딱히 꼭 필요한 물건들이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나는 이 아이들을 보내주질 못했다. 사실 너무 낡은 아이들이라 누가 사갈까 싶은 마음과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직 이렇게나 쓸만한데 하는 마음이 섞여서 그냥 흐지부지 계속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 머나먼 땅까지 창고 여러곳을 전전하던 천기저귀 한 박스!
드디어!
다시 세상 빛을 볼 때가 되었던가!
출산하고 두 달 정도는 몸조리를 위해서, 그리고 소변을 볼 때마다 매번 수시로 조금씩 대변을 지리는 신생아(특히 모유수유아)의 특성상, 천기저귀를 포기하고 종이기저귀만 쓰다가 앞서 말했듯 방대한 쓰레기양에 충격을 받아 서서히 천기저귀를 다시 꺼내 쓰기 시작했다. 아기가 4개월인 지금은 외출할 때와 밤에 잘 때만 종이기저귀를 사용하고 있으며 하루에 많으면 3개, 적게는 1개 정도가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이 외의 시간들은 다 천기저귀를 쓰는데 적은 날은 6개, 많게는 12개 이상도 나온다. 천기저귀는 한 번만 젖어도 금새 축축하니 바로 바로 갈아주기 때문에 더 많이 나온다. 수유 후에는 정말 갈아주고 돌아서면 또 싼 경우도 허다한데, 좀 귀찮긴 하지만 그만큼 아이가 젖을 많이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모유수유양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 것 역시 천기저귀의 장점 중 하나!
뉴질랜드에서 자라는 셋째를 위해 특별히 새로 장만한 준비물이 있다면, 바로 폴리 재질의 방수 커버 6개와 밖에서도 기저귀 후처리가 용이한 방수 주머니 세트. 근처에서 중고 물건을 알아보다가 마땅치않아 미국 아마존에 주문했다. 뉴질랜드의 주거환경은 바닥이 카페트로 되어있기 때문에 셋째는 위생상 방수 커버가 필수였다. (한국에서 키운 라남매는 방수 커버 없이 자주 갈아주며 사용했다.)
그렇다면 빨래는 어떻게 하느냐? 손목 나가지 않느냐?
많은 천기저귀 유저들은 말한다. 손목은 천기저귀 때문이 아니라 스마트폰때문에 나간다고. ㅋㅋ(네, 여러분. 이 대목에서 우리 솔직해집시다.ㅋㅋ)
소변으로 젖은 천기저귀는 통풍이 잘 되는 빨래통에 대충 던져 걸어 둔다.
대변으로 더러워진 천기저귀는 일단 샤워실에 던져 수압이 센 샤워기로 후루루룩 잘 털어낸 뒤 적당한 빨래통에 차가운 물을 담아 따로 담가둔다. 이 때 세제나 베이킹소다 등을 조금 풀어주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그냥 물만 사용한다. (그래도 괜찮아서..) 손목으로 비비는 애벌빨레? 절~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이것들을 세탁기에 그냥 일반 코스로 일반 세제와 함께 평소처럼 돌린다. 특별히 삶지 않는다. 가-끔 한 두달 에 한 번 시간이 많거나 생각난다 싶으면 세탁기에 삶음 코스로 돌리기도 하는데, 솔직히 3달째 쓰는 지금까지 딱 한 번 삶았지만 아기 발진 하나 없이 잘 쓰고 있다.
얼룩?
우선 이렇게만 해도 거의 얼룩이 남지 않는데, 미묘하게 남은 대변 얼룩은 햇볕에 건조되며 다 날아간다. (신기하다. 원리는 모르겠는데 정말 다 깨끗하게 날아간다.)
이유식을 시작하여 변이 어른처럼 되직해지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게... 저도 그게 참 걱정입니다만... 한국에 살 땐 습식 화장실이라 샤워기를 이용해 변기에 변을 털어내고 비누 한 두번 슥슥 칠해놨다가(역시나 절대 손으로 비비지 않음. 정말 슥슥 칠하기만 함.) 나중에 세탁기 돌리면 오히려 모유변보다 훨씬 편했습니다. 하지만 건식 욕실인 뉴질랜드는 변기와 샤워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저도 앞으로 어찌해야 할 지 심란합니다. 솔직히. ^^;;
일단 지금까지 찾아낸 솔루션으로는, Nappy liner 라는 신통방통한 녀석이 뉴질랜드에선 판매중인데, compostable(분해 시켜 비료화 할 수 있는)재질의 대나무 섬유로 만들어진 얇은 종잇장 같은 걸 천기저귀 안에 넣고 쓰면 덩어리는 이 liner에 걸리고 액체만 천기저귀에 흡수된다고 한다. 그래서 liner는 일반 기저귀처럼 그냥 버리고 천기저귀만 세탁한다고. 역시 천기저귀 사용이 한국보다 더욱 보편화된 국가답게 답이 있었다. 하하! 하지만 직접 써본 건 아니니 아직 보장은 못하겠다. 곧 이유식을 시작할 막둥이와 사용해보리라.
매일 해야 하는 빨래 부담. 그리고 비오는 날의 건조 문제.
나는 셋째를 낳으며 건조기를 마련하여 사용중인데 빨래 부담이 반으로 확 줄어든 느낌이다. 빨래를 따로 널고 걷고 하는 수고가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비오는 날에도 건조 부담이 없어 천기저귀 사용엔 건조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다만 건조기 사용 역시 전기 에너지를 쓰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니 환경엔 좋지 않다는 것이 나에게도 여전히 논점이다. 그나마 우리집은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드는 시스템이라 죄책감이 덜하다면 덜하지만.. 그래도 해가 쨍한 날엔 자주 밖에 나가 널자고 맘을 또 먹어본다.
종이기저귀를 병행하는 나의 선택. 대나무 소재의 compostable 기저귀와 물티슈.
앞서 말했듯 나는 100% 천기저귀를 사용하진 못한다. 밤에는 나도 자야하고 외출해서까지 수시로 기저귀만 갈 수는 없기에 선택한 대안이다. 대신 요즘은 세상이 어찌나 좋아졌는지! 대나무섬유 소재의 Compostable 기저귀가 판매되고 있다. 물티슈도 물론. 물티슈나 기저귀를 선택할 때 Biodegradable 이나 Compostable 이라고 쓰여진 제품을 선택한다. 하다못해 그게 없다면 Eco라는 글씨라도 붙은 걸로 산다. 천기저귀와 병행하면 또 좋은 점이 종이기저귀를 많이 안 쓰기에 경제적 부담이 덜하다. 무조건 싼 기저귀, 혹은 가성비가 좋은 제품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제품은 뉴질랜드의 뉴월드에서 판매되고 있는 Little Genie 라는 기저귀를 쓰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6키로가 넘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게 단점이다. 이 외에도 구글에 검색하면 쓸만한 기저귀 제품들이 몇 가지 더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꼭 시도해보시길! 특히 오클랜드 거주민이라면 선택의 폭이 더 넓다.
(요즘 한국에도 이런 생분해성 재질의 기저귀가 나오나요? 문득 궁금합니다.)
천기저귀의 경제성
이미 한 두아이를 거쳐갔을 깨끗한 중고 기저귀를 구입하여 내가 또 아이 셋을 다 쓰고 있으니... 이 기저귀들의 경제성은 말할 필요도 없을 듯. 누군가가 인터넷에 쓴 글을 봤는데.. 이렇게 내가 좀 더 귀찮아가며 아낀 돈은 오직 날 위해 쓴다고. 공감했다. 나도 가끔 좋은 음식 사먹고 싶고 날 위해 현명한 소비를 하고 싶은데 비싸서 망설여질 때 나에게 속으로 말한다. '니가 고생해서 아낀 돈. 너를 위해 쓸 자격이 있다. 너한테 써라!!' (물론 함께 육아하는 남편도)
익숙하고 당연한 편의에서 멀어지는 게 얼마나 낯선 느낌인 지 나도 너무 잘 안다. 하지만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엔 결코 거창할 필요 없는 정말 작은 시도와 순간이 출발이 될 수 있다. 하루에 하나의 쓰레기만 줄여도 일년이면 365개 (커다란 더미) 그걸 친구와 이웃과 전 지구인이 함께 한다고 생각해보라. 과연 아무것도 아닌 시도일까? 우선은 할 수 있는 만큼 즐기며 시도해본다는 원칙을 잊지 않는다면 어디 한 번 덤벼볼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