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증오했던 내가 육아휴직 중 발견한 놀라운 진실

글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내가 나를 부정했을 뿐

by 로니부

나는 글쓰기를 증오했다.

그것은 단순한 기피가 아니었다. 마치 거울 앞에 서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나는 펜을 잡는 순간 드러나는 내 존재의 민낯을 견딜 수 없었다. 취준생 시절, 자기소개서 한 줄을 쓰기 위해 밤새 머리를 쥐어뜯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를 괴롭힌 것은 글쓰기 자체가 아니라, 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도대체 뭐하며 살아온 놈이길래 스스로 소개하는 문장 하나 쓰기 힘들까."

빈 워드 문서 앞에서 커서만 깜빡이는 그 순간들. 어휘력의 빈곤, 논리의 부재, 생각의 혼란.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글쓰기는 내게 가장 잔혹한 자기 진단서였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증오 속에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나를 잘 알고 싶다는 갈망이 숨어 있었다.

미움은 때로 사랑의 가장 격렬한 형태이듯이.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니,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고 해야 맞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 "무엇이 이런 반응을 만드는 걸까?"

끝없는 자기 질문의 미로 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혐오했다. 남자는 쿨하고 무던해야 한다는 가정환경 속 무언의 압박 속에서, 나의 예민함은 결함으로 여겨졌다. 나는 나 자신을 부정하며 살았다.

생각한다는 것, 느낀다는 것, 그것들을 언어로 옮기려는 욕구. 이 모든 것을 죄악시하며 스스로를 가둬왔다.


여유 속에서 찾은 나

육아휴직이 내게 선물한 것은 시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여유였다.

제주도에서 보낸 그 오후들. 아내와 아이가 낮잠에 빠져든 시간, 햇살이 창문을 통해 부드럽게 스며드는 고요한 순간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던 일을 발견했다.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감정을 구조화 하고 경험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루의 조각들을 언어로 엮어내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유튜브나 넷플릭스 대신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가장 충만했다.


어항 밖에서 바라본 내 삶

그때 깨달았다. 나는 이런 존재였구나.

내 감정의 지층을 파헤치고, 삶의 의미를 탐구하며, 존재의 본질을 언어로 구조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글쓰기를 통해 내 삶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관조하려는 사람.우리의 일상은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선형적 경험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 책 전체를 한 번에 꿰뚫어보는 초월적 시선을 가능하게 한다. 마치 어항 속 물고기를 밖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물고기에게는 물과 수초와 떨어지는 먹이가 전부지만, 어항 밖의 존재는 그 물고기의 모든 움직임을 예측하고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그런 관찰자가 되고 싶었다.


진심을 담은 글쓰기로

이제 나는 안다.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글쓰기는 사실 나 자신에 대한 부정이었다는 것을. 나는 트렌드에 맞춰 글을 쓰지 않는다. 대신 내 진심을 담아 나만의 글을 쓴다. 취준생 시절 자기소개서를 쓰지 못해 절망했던 그 청년이, 지금은 아기를 재우고 나서 매일 밤 글을 쓰며 하루를 닫는다. 글쓰기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시험이 아니다.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방법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것 속에,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글쓰기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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