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항상 집 밖에서 글이 잘써질까?

익숙한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들리는 목소리들

by 로니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반복되는 폭염과 열대야를 뒤로하고 가평 계곡으로 떠났다.


짐을 꾸리는 며칠 전부터 아이와 아내는 신이 났고, 그들의 들뜬 웃음소리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설렘을 발견했다. 육아휴직 후 육아와 집안일의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나의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있었나 보다.


익숙함이 주는 낯선 자유


우리가 사는 집은 분명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터전이자 삶이 견고하게 뿌리내린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익숙함은 때로 무서운 매너리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정해진 역할과 의무감, 해야 할 일들에 갇히게 된다.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 속에서 우리의 감각은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듯했다.


이번 휴가에서 내가 묵었던 곳은 작은 오두막집이었다. 좁고 근처에 편의시설은 없었지만 새로지어 깨끗하고 정갈했다. 창밖으로는 풀벌레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밤엔 반팔만 입고 있기엔 약간 추울정도로 도심의 열대야와 달리 가을처럼 선선했다. 익숙하지 않은 침대, 낯선 향기, 심지어 조금은 좁은 공간까지 모든 것이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자유를 느꼈다. 반복되는 일상의 답답함을 잠시 내려놓고, 오롯이 현재의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영감은 낯선 자극을 먹고 자란다


나는 오랫동안 비슷한 경험을 해왔다. 복잡한 생각에 잠겨 글을 써야 할 때면 늘 집이 아닌 카페나 도서관을 찾았고, 강박처럼 집을 나섰다. 처음에는 그저 분위기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중심에는 늘 '낯섦'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우리 뇌는 익숙한 환경에서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기능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낯선 공간은 뇌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잠들어 있던 감각들을 깨운다. 조명, 온도, 습도, 분위기, 창밖의 풍경, 앉아 있는 의자의 감촉, 익숙하지 않은 소리... 이 모든 작은 변화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경계 태세를 풀고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 깨어남 속에서 평소 무의식 속에 잠겨 있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의 조각들이 언어로 연결되며, 삶의 의미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된다. 영감은 이렇듯 낯선 자극을 통해 자라나는 법이다.


기록, 존재를 증명하고 영감을 되새기다


이런 의미 있는 순간들을 나는 늘 기록으로 남기곤 한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로 차곡차곡 아카이빙하며 나만의 사적인 전시관을 만든다. 이렇게 기록된 순간들을 반복해서 들여다보는 이유는, 물론 누군가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 또한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첫번째, 자기 확신을 강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플랫폼에 올리는 것은 일종의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 의식과도 같다. 아름답게 기록된 순간들은 '나라는 존재가 충분히 괜찮은 삶을 살고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는 자기 확언의 루틴이 된다.


두번째, 기록으로 자아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나는 삶을 해석하고 정당화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나의 이상적인 자아상이 분명하고, 아카이빙은 그러한 시각적 자아 정체성을 구체화하는 수단이 된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연결해주는 굳건한 정체성의 실이 바로 이 기록들이다.


세번째, 일종의 자기 회복을 위한 나만의 루틴이다.

피로하거나 무기력해질 때,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을 다시 보는 것은 그 순간의 감정, 성취감, 안도감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뇌는 이 장면들을 볼 때마다 "잘 살고 있어" → "이 삶은 의미 있어"라는 긍정적인 회로를 재확인하고 강화한다. 지친 나에게 존재감과 동기를 다시 불어넣는 무의식적인 자기 돌봄 전략인 셈이다.



다시 만난 나 자신에게


이번 여름휴가는 내게 단순히 쉬는 시간을 넘어선 의미를 주었다. 솔직히 요즘 글쓰기가 잘 안되었다. (매일 혹은 주기적으로 글을 쓰시는 작가님들께 존경을..) 멀진 않더라도 집에서 훌쩍 떠나보니, 그 시간은 일상에 익숙함 속에 묻혀 있던 나 자신의 감각과 마주하고, 그 감각을 기록하며 존재를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익숙함 속에서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집은 소중하다. 그 어떤 낯선 공간도 줄 수 없는 안정감을 주는 기지다. 하지만 가끔은 분기마다라도 그 익숙한 울타리에서 잠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비로소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면모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경험이 바로 '낯섦'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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