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병실, 7시간 자유시간의 의미가 뒤바뀌던 순간
쿨럭쿨럭
동네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여봐도
며칠째 통 낫지 않는 아들의 기침소리
열은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모세기관지염 가능성을 이야기했고
우리는 결국 입원하게 되었다.
영유아의 입원은 내가 입원한거 보다
배로 힘들다.
24시간 밀착 케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들은 조막만한 손에
링거를 차고 이리저리 누비고 싶어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무조건 한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야한다.
밥먹는 시간은 물론 화장실 가는 시간마저
자유롭지 못한 순간.
아이와 나는 하나의 존재처럼 붙어 있었다.
처음엔 힘들었다.
모두가 휴가로 들뜬 7월 말
병실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무색하게도
나의 세상은 이 작은 병실 안,
아픈 아들을 중심으로 꼼짝없이 멈췄다.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은
내게 숨통 트이는 자유였다.
그 시간에 후딱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헬스를 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기 계발이나 미래를 구상하는 데 몰두했다.
돌이켜보면 그 '나만의 시간'이
육아휴직의 주된 목적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주객전도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자기계발’이 중심이 되어 있었고
아이를 보는 일은 하원하면 어쩔수 없이
해내야 할 일처럼 되어버렸다.
병원 침대 위에서야 선명히 느꼈다.
이 입원은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그게 본질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이를 케어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 다음이 나다.
내가 지금 이렇게 아이 옆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육아휴직을 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녔다면
이 시간은 돈을 내고, 눈치를 보며,
죄책감 속에서 조각내어 써야 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아이 옆에 있다.
눈을 뜨고 울거나, 보채도
곁에 있어줄 수 있다.
그건 어떤 성공보다, 어떤 성취보다
소중한 존재의 확인이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내가 추구했던 발전이
실은 회피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아픈 순간에야 비로소 멈추고
가장 단순하고 명징한 사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진짜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은
더 나은 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아이를 케어하는 나였다.
건강은 공기처럼 잊고 살지만,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자원이며
그 시간을 누구와 보내느냐가 결국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아이의 열은 식고 있다.
그 사이, 나의 열도 내려가고 있다.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조급한 열,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의 열.
우리는 오늘도 병실의 창을 열고
쾌청한 여름날의 하늘을 바라본다.
회복은 그렇게,
붙잡힌 시간 속에서 서서히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