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심리상담 1회기: 조급함의 감옥 속에서
굉장히 조급해 보이세요.
상담사의 목소리가 좁은 방 안의 공기를 가르며 내 가슴 한복판에 박혔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도록 나 자신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써온 어떤 진실이,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리는 소리였다.
조급함.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늘 목덜미를 짓눌렀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는 불안이 발밑을 흔들었다.
그리고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내 모든 행동을 지배했다. 나는 지금 육아휴직 중이다. 7년간 다닌 회사에서 나름 성실히 인정받으려 노력했지만, 늘 뭔가에 쫓기듯 살아왔다.
문제는 회사가 아니었다.
내 안에 이미 '성과 없으면 존재감도 없다'는 명제가 뿌리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한테 시간이 주어져도 뭘 해야할지 모른다는 우울함에 며칠을 잠들지 못했다. 마치 숨쉬는 것을 의식하면 들숨과 날숨이 어색해지듯 '시간을 보내는 나' 자체가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나는 의미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 조급함의 뿌리를 파고들어가니, 결국 '존재감'에 대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조급한 사람은 늘 불안하다.
불안한 사람은 지금의 자신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음 단계를 향해 달려간다. 성과를 내야 하고,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 치지 않으면 여기 있는 내가 사라질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나에게는 늘 '내가 여기에 있다는 증거'를 성과로 증명하려는 강박이 있었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마다 끝없는 무력감이 밀려왔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집안일을 할때도, 카페에 앉아 글을 쓸 때도,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의미 있는 시간이긴 한가?" 조금만 쉬어도 죄책감이 들고, 조금만 멍하니 있어도 "지금 뭐하는 거지?"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끊임없이 "이 시간을 활용해서 나를 어떻게 증명하지? 어떻게 발전시켜서 인정받을까?" 회로가 돌아간다.
'지금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말을 들은 경험이 별로 없으신 것 같아요.
나는 멍해졌다. 정말 그랬다.
학생 때는 늘 전교 석차와 어느 학교를 입학했느냐로, 취준생이 되고나서는 스펙과 어느 자격증을 따고 어느 회사를 들어갔느냐 존재감을 증명해야 했으며, 취직하고 나서는 '일을 잘한다'는 인정 받기 위해 몸부림치며 자존감을 버텨왔다. 결국 내 삶의 기준은 타인의 기준에서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느냐'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좋은 삶'이다.
흔히 '행복'으로 번역되지만, 그보다는 '인간적 번영', '자기 실현'에 더 가깝다. 일시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완성이 아니라 미완의 의지를 품은 상태. 덕성, 잠재력, 의미 있는 관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조화로 작동할 때 찾아오는 내면의 평온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것을 반기지 않는다. 과정보다 결과를, 진심보다 지표를 말한다. 학교도, 회사도, 심지어 가정조차도. 덕성과 내면 따위는 성과가 나기 전까지는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린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하고 생산적인 것만 생각 하자고'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그 '나중'은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시스템은 절대 당신에게 '이젠 해도 괜찮다'고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적어도 육아휴직기간 만이라도 '되는 중'인 삶을 살아보기로.
아직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히 어제보다 조금 더 나로 살아낸 하루가 쌓이고 있다.
상담실에서 마주한 나의 조급함은 단지 불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제는 쉬어가면서 잠시만 나를 내려 놓는다. 빨라야 할 이유도, 반드시 뭔가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아이를 돌보는것과 그냥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다.
그게 바로 에우다이모니아였다.
혹시 당신도 '완성된 나'만 좇으며 살고 있지는 않나. 혹은 누군가의 인정을 '존재의 증거'처럼 붙들고 있지는 않나. 그렇다면 잠깐 멈춰보시길. 이미 당신은 충분히 '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