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를 소비하는 방식을 밖에서 관찰해 보기

by 로니부

자유를 원했던 내가 자유 앞에서 무너졌다.

육아휴직 첫 주, 그토록 기다렸던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자 나는 마치 면접에서 즉석 자기소개 질문을 받은 취준생처럼 말문이 막혔다. 바쁘게 회사를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서 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진짜 시간이 주어지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견딜 수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안 그러면 뒤처질 것 같았다. 웹서핑을 하다 보면 누구는 휴직하고 전문직 자격증을 땄다는데, 누구는 사업자를 내고 사이드잡으로 현금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는데. 난 뭘 잘할까? 뭘 좋아할까? 막연한 물음만 던지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의 힌트가 보였다.

'나를 설명하는 법'을 모르겠다면, '나를 소비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건 어디에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쓰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으니까.


그래서 조용히 나 자신을 관찰해 봤다.

나는 어디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가?

누구와 함께 /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


돌아보니 내가 진심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휴직 기간 급여가 줄어 빠듯한 생활에 쪼들리더라도 다른 지출은 줄여도 아내와 주말에 채광 좋은 근교 카페 가는 것에는 지출을 아끼지 않았다. 가족과의 모임, 마음 편한 친구들과의 만남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카페에 앉아 사진을 고르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했다. 누군가에게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고 아카이빙하고 구조화시켜서 생각을 나누고 싶어 했다.


한 발짝 물러나 나를 밖에서 관찰하니 내가 보였다.

이상했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돈이 되어서도 아니었고, 누군가 봐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나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일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무엇을 '잘하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자주 하느냐'가 더 정확한 답이 될 수 있다는 걸. 능력은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지만, 습관은 무의식적인 욕망의 결과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꾸 하게 되는 일, 돈이 안 되어도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일, 그것이 진짜 나를 드러내는 단서였다.


사람들과의 깊은 연결을 갈망하고, 내 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 복잡한 생각을 명료하게 구조화하려는 성향. 이런 것들이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 반복해 온 패턴이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진정으로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혼자 묻고 답하던 혼란의 시간을 통과하며 아주 조금씩 나 자신에 대해 배워가고 있다. 나를 찾는다는 건 어쩌면 거창한 발견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는 일들 속에서 패턴을 읽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여전히 나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무엇을 원하는지를. 앞으로 이 시간들을 통해 발견하게 될 나의 다른 모습들, 예상치 못한 갈래길들에 대해서도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