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마인드셋과 균형 사이의 갈림길에서 외치다.
지난 주말, 장인어른 댁에서 식사를 했다. 장인어른은 대기업 전무 출신이다. 업계에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이름의 회사, 그 조직의 최고 직급 직전까지 올라가셨던 분이다. 대화 중 무심히 흘러나온 한 마디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10년 동안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했어. 7시에 CEO 주관 회의가 있었거든."
결코 그런 삶을 강요하는 태도도, 자랑도 권위도 없는 담담한 한마디였지만 그 말속에서 이 시대를 버텨온 가장의 무게 그리고 한 조직의 최전방에서 살아남았던 리더의 무거운 어깨를 봤다. 모든 새벽, 모든 주말, 모든 회의가 어마어마한 연봉을 구성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아니다. 나는 그렇게 못 산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미디어에서 구별 짓기를 좋아하는 세대론으로 따지면 장인어른은 'X86세대', 나는 'MZ세대'다. 하지만 세대론을 대표하는 특정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렇게 살기 싫은 게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잘 안다. 내가 조직에 목숨 바치며 살아가는 타입이 아니라는 걸. 열정이 없냐? 그건 아니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쏟을 수 있는 에너지와 열정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 열정이 '상사의 인정' 아래에서 증발되는 노동이길 바라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해라!라고 외치는 그 '오너 마인드셋'이 내게는 잘 안 맞는 옷이다. 오너처럼 열정적으로 회사에 헌신하면 단기적으로는 성과도 나오고 남들 눈에 띄어 인정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사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나 맞는 태도인거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소진과 무력감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나는 회사 일이 본질적으로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성향이다. 오히려 그 회사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내 에너지를 관리하고, 남는 시간과 힘을 오롯이 진짜 내 일, 내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일에 쏟아야 동력이 생기는 타입이다. '오너 마인드셋'은 성공적인 사업가나 조직에서 빠르게 승진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유효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속 가능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단지 성공이나 인정만을 원하지 않는다. 내 우선순위는 가족, 삶의 의미, 그리고 개인적 균형이다.
지금의 나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들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걸 보고, "아빠~"라고 첫 옹알이를 할 때, 나는 인사이동도, 승진도 전부 잊는다. 그 순간엔 존재 자체로 충분한 관계, 아무 대가도 없지만 가장 큰 보상을 주는 시간이 흐른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희생으로 만든 시대에 감사하지만, 나는 몸을 던져 조직에 충성하기보다는 나의 삶 전체의 의미를 설계하고 주도하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
나는 공공기관에 다닌다. 내가 속한 곳이 주는 안정감은 인정하지만, 그 일 자체가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일한 만큼의 의미'를 느낀 적은 별로 없다. 가짜 노동, 보고를 위한 보고, 주체성을 잃은 회의와 문서. 그 모든 과정은 효과보다는 수용성 안에서 설명이 되어야 하고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좋은 틀 안에서만 작동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 일을 하고 싶다. 내 이름으로, 내 감각으로, 내 생각과 삶의 결을 담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게 글이든, 콘텐츠든, 뭐든 간에 말이다.
장인어른처럼 성공한 삶. 좋다. 하지만 그 삶이 내 삶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세운 우선순위와 가치 기준으로 내 삶의 궤도를 그려갈 것이다.
가족과의 저녁 식사
아들 어린이집 하원하고 잠깐의 산책
내가 써 내려간 글 한 줄
건강하게 땀 흘린 운동
어쩌면 그런 삶이, 굴지의 대기업 임원의 삶보다 더 깊고 단단할 수 있다.
"저는 남의 회사엔 목숨 못 바치겠어요."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나에게 되돌려 놓겠다는 선언이다. 지금부터 나는 내 삶의 CEO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내가 정말 지키고 싶은 것부터 지켜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