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맞나 싶을 때, 나를 구원해 준 시간

영혼의 휴가: 육아휴직이라는 이름의 자아 구출작전

by 로니부
“부럽다, 잘 쉬다 와~”


내가 육아휴직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그 말들은 모두 웃음 섞인 응원처럼 들렸지만

정작 내 마음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나에게 이건 ‘쉬는 시간’이 아니라,

무너지고 있는 나를 잠깐이라도 구조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 가까웠다.


아마 휴직이 없었다면 나는 무너졌을 것이다.

단순히 '힘들었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감정적으로 탈진했고

자아가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나는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 길이 정말 맞나?"

반복되는 출근길과 매너리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그보다 훨씬 깊은 심연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마치 천천히 가라앉는 배처럼

나는 알아차리면서도 침몰해 갔다.

부장은 통제의 화신이었다.

자신만의 진리를 절대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열정으로 가득 찼었다.

그의 모든 말을 경청하고

모든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했다.


조직에서 인정받고 싶은 갈망으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바쳤다.


야근은 성장의 증표라 여겼고

주말 출근은 충성의 표식이라 믿었다.

모든 것이 배움의 과정이라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명확해졌다

통제와 불신은 마치 유리 상자처럼 나를 가두었고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산소가 부족해졌다.

숨을 쉴수록 더 숨이 막혔다.


감정은 서서히 마비되었고,

잠이 안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말은 치유의 시간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고통을 예견하는 불안한 대기실로 변했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지금은 성장을 위한 인내의 시간이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척

나를 체념과 포기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때, 육아휴직이라는 예상치 못한 출구가

나를 그 미로에서 잠시 꺼내주었다.

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아니라

내면의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는 시간


내 존재의 모든 층을 한 장 한 장 펼쳐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허락받은 것이다.


이 바깥세상과 거리 두기를 통해

나는 비로소 나에게 진실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 왜 나는 그토록 깊이 상처받았을까?

- 왜 그 부장의 말투, 시선, 반복되는 지시가

내 감정을 그렇게 뒤흔들었을까?

- 나는 어떤 존재이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때

진정 살아있다고 느끼는가?


고요한 성찰 속에서 나는 나를 새롭게 발견했다.


- 나는 조화를 중시하지만 자기 존엄이 훼손될 때

본능적으로 무너지는 사람이었다.

- 나는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는 환경에서

영혼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 나는 자기 진실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육아휴직은 결국 아이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내 영혼을 구조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숨을 쉴 수 있었고

자기 구원의 길을 찾았으며 지금도 회복 중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내 인생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어쩌면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되는 중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생각한다.

조직에서 밉보이기 싫어서 눈치가 보여서

육아휴직을 포기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부서진 내면을 끌어안고,

매일 조금씩 죽어가며, 시체처럼 출근했을 나의 모습.


그것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영혼의 서서한 소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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