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 알게 된 내 예민함의 진짜 이유
아내와 다투고 알게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왜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속이 뒤집히고,
왜 평소엔 조용하다가도 가끔은 분노로 폭발하는지
내 안에는 세 개의 감정이 뒤엉켜 있다.
통제에 대한 극도의 예민함
내면의 인정 욕구와 존중 욕구
관계 속 힘의 균형 욕구
나는 어릴 적 많이 혼났다.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면 “남자가 왜 그리 소심하냐”는 핀잔을 들었고 묵묵하게 잘 해내는 게 사랑받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삼키고
더 열심히, 더 완벽하게 살아남으려 했다.
성과는 존재의 증표였고 인정은 생존을 위한 식량이었다.
“나는 무조건 잘해내야 한다.”라는
강박 아래 성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피드백을 주면,
내용보다 톤, 말투, 질문 방식에 먼저 반응한다.
그건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너 제대로 한거 맞아?”라고 꾸짖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 예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이다.
잘해야 혼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기준을 충족해야만 안전했다.
감정을 보이면 약점이 되었고
정해놓은 기준에서 벗어나면 폭력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 내 판단을 의심하거나,
내가 해놓은 것을 다시 지적 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내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곧이어 분노가 올라온다.
나는 자율적인 사람이다.
스스로 책임지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에 권력에 짓눌린 경험이 너무 많다.
아버지의 일방적 훈육,
선임/상사의 기분을 살피며 움츠러든 시간들,
그래서 아내가 조금이라도 명령조, 지시형 어조,
혹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는 태도를 보이면,
나는 바로 힘의 불균형 레이더를 곤두세운다.
“나는 맨날 찍소리 못하고 당해야 해? 이번엔 못참아”
겁먹은 아이가 말한다.
“나 무서워. 혼나기 싫어. 좀 인정해줘. 열심히 했잖아…”
복수심 어린 어른이 소리친다.
“나도 알아서 잘해. 무시하지 마. 또 내가 참을 줄 알아?”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
이제서야 나를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왜 나는 그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반응했는지,
왜 가까운 사람의 말이 더 아프게 박히는지.
나는 늘 긴장했고, 버텼고, 기대에 부응하려 애썼다.
그렇게 커버린 아이에게는 통제받지 않을 자유, 인정받을 자격, 대등한 관계에서 말할 권리가 너무도 절실했던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 안에도 아직 인정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 아이에게 말해주자.
"너 충분히 잘하고 있어.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