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순간은 찰나, 진짜는 지루한 일상에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고부터
평일 낮 시간이 꽤 자유롭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론 뮤익 전시가
수요일엔 무료라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다녀왔다.
론 뮤익의 작품을 감상할 때는 그저 놀랍고 신기했다.
어떻게 사람의 피부, 머리카락 한 올까지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놀라운 정교함에 그저 경탄했다.
그러나 관람을 마치고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론 뮤익은 좁은 작업실에서
매일 묵묵히 같은 일을 반복했다.
붓으로 살짝 그렸다가 돋보기를 쓰고 다시 보고,
다시 매만지고. 반복되는 작업을
하루 종일 매일매일 수없이 해나갔다.
그의 30년 예술 활동 동안 완성된 작품은
고작 48점뿐이라고 한다.
한 작품에 수개월에서 수년을 매달리면서
머리카락 한 올, 눈동자 한 방울
피부의 미세한 모공과 검버섯까지도
세심히 완성해 나갔다.
관객도 알아채지 못할 작품의 옷 속 작은 디테일마저
집요하게 완벽을 추구하면서 말이다.
문득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난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이런저런 가능성을 따져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어렵게 어렵게 시작한다.
하지만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현타가 온다.
좌절감이 밀려오고, 금방 포기하게 된다.
태산 같은 목표를 바라보면
지금 야트막한 산중턱에서 발뿌리에 채이는
돌멩이를 치우는 일이 하찮게 느껴진다.
정상까지는 턱없이 멀었는데,
눈앞의 나뭇가지 한두 개 헤쳐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진다.
우리가 보는 최고의 작품들,
최고의 성과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화려해 보이고 부럽기도 하다.
나도 당장 저기 올라가서 그 열매를 맛보고 싶다.
하지만 그들도 평생에서 스포트라이트 받는 순간은
찰나일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길고 지루한,
무지막지하게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의미 없는 것 같은
단순반복적인 일들을 지루하게도 기나긴 일상 속에서
그냥 묵묵히 견뎌내는 것.
오늘 하루만 바라보고 부족한 게 있으면 피드백하고
내일 다시 그 부분을 보완해 나가면서
한 뼘 한 뼘 성장해 나가는 것.
론 뮤익의 작업실에서 나는 진짜 장인정신을 봤다.
어쩌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바로 그 지루함을 견뎌내는 힘이란
그 평범한 순간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집요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