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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Nov 04. 2021

이것도 땅콩집 아냐?

2021년 11월 4일, 현지에게 소연이

내 친구, 미래의 동업자 현지 안녕!


땅콩집 살자고, 문 두들기면 맥주 들고 나와서 떠들자고, 너무 좋다고 깔깔대면서 박수치던 게 벌써 언제일까?


성인이 돼 거의 주고받은 적 없었던 손편지를 스물넷 겨울에 현지 네게 받았어. 크리스마스였을 거야. 귀여운 글씨에 웃기게 생긴 노란 캐릭터 스티커가 붙은 편지지를 보고 피식했어. 얼결에 답장을 쓰고, 또 다른 어느 보통날 불시에 편지를 받아 들곤 나랑 마음의 결이 참 잘맞는 친구를 찾았구나 싶었어.


성격유형이 6년 째 같다며 과몰입해 매일 내 성격이 이런데, 네 성격도 이렇니 했잖아. 돌이키면 우린 '나라면 상대에게 이렇게 했을 텐데' 하는 어떤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러니까 가 이 말을 했을 때 어떤 답을 줬으면 좋겠다! 하면 너는 십중팔구 그 답을 줬고, 너를 부름과 동시에 미리 마음이 편안해지는 놀라운 일도 있었다.


언젠가 우스갯소리로 '내 이상형은 나'라고 선언한 적 있었지. 기억나? 나를 꼼꼼하게 알기에 잘 짐작해줄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할 수 있음 좋겠단 뜻이었겠지. 너도 비슷한 말을 했어. 대화의 결론은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겠냐는 걸로 끝났지만 말야. 그래서 우리가 땅콩집을 부르짖었던 게 아닐까? 낄낄.


정말 그런 사람은 없지. 이 명료한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이란 게 관성이 세서 멋대로 기대해버리고 속 상하고를 반복하는 것 같아. 너와 배우자의 투닥임을 보면서 나는 나의 시위를 떠올렸어. 너가 배우자에게 폭발해버렸던 건 '나였다면 너가 눈치보도록 만들지 않았을텐데' 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도 비슷한 기대로 짝꿍에게 불을 뿜었던 때가 있었거든.


내가 허리가 아프다는데, 내가 배가 아프다는데 짝꿍이 몸을 움직이지 않는 거야. 눈을 폰에 꽂은 채 아프냐고만 묻는 거야.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나라면 잽싸게 움직여서 뜨거운 수건을 만들어다 줄텐데 하는 생각에 억울한 거야. 머리엔 못난 생각도 스쳤어. 코가 막히고 목 아프단 말에 나는 자다 깬 눈으로 젖은 수건을 옷걸이에 걸어줬는데 이런 생각 말야. 분명 수건을 적시고 짤 때의 나는 '이 봐라, 내가 널 이만큼 좋아해' 같은 생각은 없었어. 근데 왜 콧김이 나왔나.


평소 글에 대한 욕심이 실생활에서마저 시나리오를 쓰게 한 건 아닐까.  상황에서  캐릭터는 이렇게 말을 해야 좋을 것이다- 하는 각본 말야. 작가 행세를 하던 난 이불 툭툭 차고 베개에 머리 퍽퍽 내려놓는 과격시위로 결국 짝꿍이 알아차리게 만들었지. 짝꿍은 말을 안 해주면 모른다며 억울함을 토로해. 우리의 투닥임은 주로 이런 종류야.


난 '시나리오'를 버리려고 해. 네가 말한 공평에 대한 집착과도 맥이 통하는 것 같아. 매일을 함께 해 잘 안다해도 모든 상황을 똑같이 볼 수도 이해할 수도 행동할 수도 없으니까. 되레 다르게 보니까 서로를 보완해주고 있는 건데 그걸 종종 잊는 것 같아. 나는 멀티가 잘 되고 챙겨주는 걸 즐긴다면, 짝꿍은 세심하고 현실적이더라고. 짝꿍이 잘하는 걸 안다는 것은, 내 시나리오를 벗어나 기대에 없던 애정을 받았기 때문일 거야. '응당' 따위의 기대 보다는 차라리 약과 손길을 달라!는 솔직한 말이 덜 꾀죄죄하지 않을까.


뭐 그리 어렵게 생각하나 싶으면서도 가장 아끼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면서 같이 산다는 게 마냥 또 간단치만은 않은 일이지. 배우자와 즐거운 네 모습을 보면 그 이유를 알겠지만서도, 너가 말한 그 수련하는 일을 어떻게 택하게 됐는지 궁금해. 나와의 땅콩집에 안녕을 고한 그 이유 말야. 아냐, 생각해보면 우린 또 다른 땅콩집에 살고 있는 거 아닌가? 각자의 짝꿍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으니까.

아 편지 쓰니까 당 당겨. 호두마루 씹으러 가야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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