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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Nov 18. 2021

동거는 기회의 시간?

2021년 11월 18일, 현지에게 소연이가

현지 안녕!

지난 주말엔 경기 광주 근처 곤지암에 있는 화담숲에 다녀왔어. 단풍 끝물이라도 잡고 싶어서 갔는데 한 주만 더 늦었으면 그 풍경 못 봤을 것 같더라.


재밌는 건(?) 우리 엄마아빠 그리고 남동생에 짝꿍까지 총 다섯 명이 함께 한 나들이었다는 것. 내 남동생과 짝꿍의 첫 조우였지. 난 내 동생을 찐따 판별사라고 하거든(ㅋㅋ). 한 5년 전쯤.. 어쩌다 알게 된 한 남자가 내게 관심을 표하던 때, 집에서 내가 그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있었어. 지나가다가 그 사진을 본 내 동생이 "누구야? 찐따 같네.." 하고 지나가는 거야. 내가 "뭔 모르는 사람한테 찐따래? 뭘 봐서?" 하니 동생은 "그냥.. 풍겨지는 아우라가 그래. 만나지마"라고 했어. 이놈 무례하네, 하고 나중에 그 남자를 직접 만났는데 처음 밥먹는 자리에서 '여자가~' '여자는~' 어쩌고 하는 통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동생은 그래서 찐따 판별사가 됐지.


아무튼 내가 이 얘기를 짝꿍에게 한 적이 있어. 짝꿍이 화담숲에 가기 전날 "자기 동생이 나 찐따라고 하면 어째?" 하고 장난을 쳐서 깔깔 웃었지. 이젠 동생 판별기 없이도 나 혼자 그정도는 알아볼 눈이 있지 않을까. 짝꿍과 동생은 무사히 만났고, 서로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


나와 짝꿍, 내 가족들이 나들이도 하고 맛있는 밥도 먹고 돌아오니 즐거웠어. 엄마아빠와 짝꿍은 대략 4번째 보는 자리였는데 제법 편해진 듯했고 말야. 얘기하다보니 네가 편지에서 짚었던 '결혼은 싫지만 동거는 좋다'는 사람들의 이유들이 떠오르네. 그중 하나가 상대의 가족과 깊게 얽히는 건 싫다, 였지.



사실 한국에서의 결혼이 일반적으로 그렇지. 사랑하는 상대방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족 역시 평생 다른 곳에서 달리 살던 분들인데 한순간에 '가족'으로 묶여 빠른 시간 안에 서로 녹아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잖아. 결혼이란 게 두 사람만의 만남이 아니라 가족 대 가족이라는 말도 하니까. 문화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세대 간 독립이 어렵다 보니 '가족 결합'이라는 인식이 더 강한 것 같기도 하고.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에 비해 얽히게 되는 깊이가 상당하니까 즉각적인 부담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 현지 네가 '동거만 고집하는' 사람들의 이유 중 하나로 꼽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란 생각이 드네.


우리도 동거를 처음 말할 때, 상대 가족에 대한 어떤 의무 등을 생각하는 건 미루자고 이야기 했어. 위에 말했던 그런 이유 때문이었겠지. 그런데 짝꿍이 내게, 내가 짝꿍에게 요구해서가 아닌데도 서로의 가족과 만나게 될 기회들이 생겼어. 짝꿍의 고향인 부산에 놀러가거나, 새로 이사한 집에 우리 부모님이 방문했을 때. 어색하고 어렵지만 반겨주는 서로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했어. 우리 둘 역시 '결혼은 가족 결합' '결혼은 우리만의 행사가 아냐' 같은 스테레오타입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꼭 결혼을 해야만 서로의 가족에게 나를 노출시킬 수 있다는 그 생각이 나중에 '압박감'과 '부담감'이라는 부작용으로 돌아오는 게 아닐까. 짝꿍과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될지, 어떤 형태로 같이 살게 될지 모르지. 그치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이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하는 것도 애정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게 됐어. 나와 짝꿍을 알고 싶어 할 가족에게 그 기회를 기꺼이 주는 것 역시 애정의 일종이고.


돌고 돌아 네 질문에 답하자면 나는 동거의 좋은 점이 이 지점이라고 생각해. 모두에게 기회의 시간이 돼준다는 것. 내게 짝꿍은 남자친구보다 진하고 그렇다고 남편은 아닌 동거인, 반려인, 동행인이야. 법으로 묶이진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의 끈끈함이 존재해 둘을 서서히 묶어주는 느낌이 있다.


그날 기억나. 지난주 우리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저녁 먹던 날. 한 친구가 네게 "결혼해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물었고 너는 "안 좋은 게 없다"고 말했지. 그 말에 "와~ 결혼 장려 부처에서 나온 거 아니냐"는 놀라움 섞인 반응이 나왔지. 건강하고 단단한 결속도 좋고, 간질거리는 새로운 호칭도 좋고, 싸워도 그저 내편인 사람이 있는 것도 좋고, 그게 심지어 법이 지켜준다니 좋을 밖에! 라고 말하는 너의 지난 편지를 읽으며 다시 한번 이해했어. 그날의 네 대답을.


본격 동거 장려 이야기를 듣고 싶다 했지! 나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안 좋은 게 딱히 없다! 결혼이 주는 기꺼이 즐거운 의무들(난 아직 잘 모르지만)이 없기 때문도, 법적 결별에 대한 두려움이 동반되지 않기 때문도 아니네! 


오늘도 말이 길었다. 생각, 마음 되새김질은 할 때마다 구구절절하고 구체적이어지는 것 같아. 편지를 받는 네가 어떻게 읽을지! 문득 궁금한 게 있다. 흔히 결혼이든 연애든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만큼은 자유롭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있잖아. 그건 한 사람으로서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과 어떻게 다를까?누군가와의 결속은 자유의 반대말일까?난 벌써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든다. 간만의 둥둥 떠다니는 대화가 될까?


히히 퇴근하고 편지까지 쓰니 저녁 먹을 시간이다. 미세먼지가 좋지 않아 삼겹살을 먹으러 가려고! 현지 너는 퇴근했으려나? 밥 먹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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