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전에 집에 촐랑이가 왔었어. 하루 자고 갔어. 나 뿐만 아니라 동거인도 촐랑이가 보고 싶다는 거야. 엄마아빠 집에 가서 촐랑이를 차에 태워 데려왔어. 집과 밥그릇, 옷, 하네스까지 몽땅 들고. 짝은 퇴근까지 앞당겨서 촐랑이를 맞았어.
촐랑이가 내 짝꿍과 만난 건 이번이 네번 째인가 그래. 촐랑이 녀석이 겁이 많아서 처음 만난 날엔 꽝 짖고 이를 드러냈고, 그 다음번에는 슬금슬금 피했지. 세번째 만남에서야 다리에 앞발을 올렸고, 이번엔 짝에게 아주 몸을 내맡긴 채로 잠을 자대. 짝은 좋아했어. 촐랑이가 드디어 자기를 좋아한다고.
촐랑이는 보채질 않아. 밥 달라고, 간식 달라고, 산책가자고, 놀자고 보채지 않아. 묵묵하게 앉아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지. 촐랑이와 같이 살 때, 촐랑이를 옆에 끼고 일 해봤던 나는 촐랑이에게 얼마간의 기다림을 뻔뻔하게 요구한다.
대파 물고 오는 촐랑..
근데 짝은 그게 안 되는 거야. 코딩하다가도 촐랑이가 근처에 오면 만져주고, 뒤에서 기다리면 쳐다봐주고, 대파를 물고 오면 던져주고 했어. 그렇게 안 하면 본인 마음이 쓰인다는 거야. 보채지 않는 촐랑이에게 미안한 거지. 내가 "놀아주고 잠깐 일하고 하면 알아서 기다리거나 잠깐 낮잠 잘거야. 너무 신경쓰지마"라고 해도 짝은 다시 또 촐랑이에게 가있더라고.
배변을 위해 밤 산책도 갔다오고 잠 자라고 노래도 줄여주고 했어. 근데 촐랑이 눈에 짝꿍은 체력 좋은 삼촌격이었던 거지. 대파를 계속 물어왔어. 저녁시간 늘 상수였던 나와 짝꿍은 수다타임을 갖기 힘들었어. 특히 짝꿍이 다소간의 무관심을 유지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잠시 대화하다가 주의를 촐랑이에게 뺏겼어. 매일 몇 판씩 꼭 같이하던 폰 게임도 못 했어. 평소 자정까지 거실에서 뒹굴던 짝꿍이 11시도 안 돼서 침대로 들어갔어.
촐랑이도 따라왔어. 엄마아빠 집에서 나랑 같이 침대에서 자던 버릇으로 침대 발치에 자리를 튼 거야. 우리가 안 자고 떠드는 걸 알곤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눕기도 했지. 포옹도 힘들었고 편하게 뒹굴대면서 각자 핸드폰 갖고 놀 수도 없었어. 누워서 어떤 생각에 빠져있다가 잠이 들었어. 촐랑이가 무게를 실어 기대는 통에 잠은 설쳤어.
사랑하는 촐랑이와의 하루. 어떤 생각에 빠졌을까. 우리 각자의 머릿속엔 같은 생각이 피어올랐어. 만약 촐랑이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촐랑이가 홀로 해내는 식사나 배변, 수면을 해낼 수 있긴커녕 우리의 손과 관심에 생사여탈을 내맡기는 생명체라면?
다음날 촐랑이를 본가로 보내고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짝꿍이 그랬어. "평소 일상이었던 우리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새삼스럽게 소중하게 느껴졌어" 촐랑이는 너무 귀엽고 예쁘고 안아주고 싶은 존재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우리, 그리고 각자의 시간에 대해 해본 적 없는 차원의 생각을 했어.
둘은 집에 돌아와서 촐랑이가 없는 쇼파에 앉았어. 만약 이 자리에 아이가 있다면? 생각했어. 촐랑이라면 혼자 두는 걸 정말 미안해 하면서도 장은 잠시 보러나올 수 있지. 아기라면 불가능했을 거야. 독서는? 게임은? 산책은? 외식은? 번개 약속은? 여행은? 불가능할 거야. 지금 이렇게 주의 분산 없이 대화하는 시간조차도 어쩌면. 이런 '시간'을 다른 것과 교환할 수 있느냐. "지금 당장은 힘들지. 모르겠어. 35살이 되면? 그때라고 그럴 준비가 될진 모르겠어"
다른 차원의 즐거움과 맞바꿀 수 있나. 대화의 골자는모르겠다는 거였어. 어쩜 당연하지. 그날 저녁 우리는 현지 너가 보내줬던 'Do i want kids?' 영상을 봤어. 여성의 커리어와 출산, 육아에 대한 설문조사가 메인인 이 영상을 보고 나니 더 모르겠는 거야. 나는 사실 십대 때부터 출산에 대한 막연하고도 확실한 두려움이 있었거든. 출산과 산후 신체적 고통 및 변화, 그리고 일과 육아의 병행을 둘러싼 크게 변하지 않은 사회문화에 대한 내 오랜 두려움.
이런 근원적인 요소를 차치하고 당장 '둘의 시간' '퇴근 후 나만의 시간'의 상실을 생명체가 가져다 준다는 즐거움이 과연 상쇄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은 출산은 우리가 결혼이란 제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시발점인가? 란 생각으로까지 연결됐다. 아 생각이 꼬꼬무;; 촐랑이의 나비효과. 흰둥 녀석이 털과 사랑스러움과 새로운 생각거리를 집에 뿌려놓고 갔어.
일단 이 생각은 유보해둔 채, 난 다시 퇴근 후 책 읽고, 내일 발제 준비하고, 간식 먹고, 유튜브 보고, 왓챠 보고, 사이드프로젝트 생각하고, 공상하고, 요가하고, 청소기 돌리는 데 시간을 쓰고 있어. 혼자 있을 때 제일 바쁜 것 같아. 너가 지난 편지에서 둘의 시간, 각자의 시간에 대해 물었잖아. 결이 조금 다를 순 있는데 결국 시간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고민을 했던 한 주였당.
현지 넌 너만의 시간, 너와 남편 둘만의 시간을 새삼 새롭게 느꼈던 기회가 있어? 매일 저녁 같이 먹고, 운동도 같이 하는 너희의 시간과 너만의 시간이 궁금하고나. 아 참, 우리 내일 만나는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