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을 접은 지 딱 일 년이 되었다.

by 시안

마장을 접은 지 딱 일 년째다.


칼바람이 두 뺨과 온몸을 후려치고 도망가던

작년 1월 초,

남편과 나는 마장을 정리하며

우리말들과

한 마리씩 차례대로 이별했다.


내 말들은

새 주인이 몰고 온 말 운송 트럭을 타고서

영업이 중단된 휑한 마장에

긴 울음소리를 흘리며 떠나갔다.


성격이 차분하고 사람을 잘 따르던

엠원과 산이가 제일 먼저 우리를 떠났다.

산이는 우리에게 오기 전에

산이를 원래 키우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산이 옛 주인은 성품 좋은 엠원을 알아보고서

녀석도 함께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산이 옛 주인이 얼마나 말을 아끼는 사람인지 알기에 산이가 옛 주인에게 다시 돌아가게 되어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성격 좋은 엠원도 산이랑 함께 가니

산이도 엠원도 서로 외롭지 않을 거야.

우린 안심이 되었다.



산이와 엠원이 떠나던 날,

마장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녀석들을 싣고 갈 말 운송트럭이 나타나자

마장 울타리 안에 있던 말들이 일제히 히히힝거렸다.

말 운송 트럭이 나타나면

말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자기 무리 중 누군가가 떠난다는 걸.

그렇게 떠난 친구는

어쩌면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도.


영리한 엠원은 우리와 이별하는 걸 아는지

트럭에 타지 않으려고

네 다리를 딱 버티며 한참 애를 먹였다.

내가 부드럽게 달래며 녀석을 이끌자

겨우 겨우 트럭에 올랐다.


트럭이 출발하자

트럭에 타고 있던 엠원과 산이가 히히힝 울었다.

마장에 남은 말들도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듯이

주둥이를 하늘로 쳐들고

고개를 치켜든 채

길고 굵은 목소리로 따라 울었다.


떠나는 말들과

떠나보내는 말들이 우는 소리로

마장이 어수선했다.


엠원이랑 가장 친했던

엠원 단짝친구 대단이는

엠원이 탄 트럭이 막 마장을 빠져나갈 때부터,

아니,

엠원이 트럭에 타지 않으려고 버틸때부터 줄곧

엠원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한치 흔들림도 없었다.


엠원을 태운 트럭이 마장을 벗어나

백여 미터 시멘트 길을 따라가다

2차선 국도에 접어들었다.

트럭이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대단이는 잠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그 트럭을 바라봤다.


녀석들의 이별은 묵직했다.

떠나간 녀석들의 울음소리도.

남은 녀석들의 울음소리도.


떠난 말들과

남겨진 말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마장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깊은 슬픔을 느꼈다.


엠원이랑 산이가 떠나고

미르와 까미가 떠나고

우리에게 위탁 중이던 대단이 도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쿤타와 혜성이가 우리를 떠날 차례였다.


쿤타와 혜성이.


순둥이 쿤타는 나의 첫 말이었고

도도녀 같은 혜성이는

나와 많은 에피소드를 함께하며

때론 나를 울리고

때론 감동시켰던 녀석이었다.


두 녀석에게 깊은 정이 든 만큼

마지막 남은 두 녀석들과 이별을 앞두고

나는 근심했다.

이 두 녀석을 어쩌면 좋을까.


쿤타와 혜성이는 승마 자격증 시험마로

내가 훈련시킨 녀석들이었다.

육지에 있는 승마장 몇 곳에서

그런 녀석들을 알아보고 욕심을 냈다.


나는 말을 데리고 갈 사람에게 조건을 걸었다.

혜성이와 쿤타는 아주 친한 베프이니

두 마리가 외롭지 않게

함께 데리고 가야 한다고.


육지에서 사람이 내려와 두 녀석을 데리고 가는 날.

나는 녀석들이 떠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마장에 나가지 않았다.


새 주인이 두 녀석을 트럭에 태우려고 할 때,

순둥이 쿤타가 먼저 트럭에 올라탔고

혜성이는 끝까지 버티면서

트럭에 오르지 않았다는 거다.


내 말들은 트럭에 타고 내리는 순치 훈련이

아주 잘 되어 있는 말이었기에

평상시엔 트럭 승차거부를 하지 않았다.


그런 녀석들임에도

트럭에 타는 걸 끝까지 거부한 걸 보니

엠원이 우릴 떠날 때 그러했듯이

아마 혜성이도 우리와 이별하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모양이었다.


혜성이는 우리와 이별을 원하지 않았던지

트럭에 타는 걸 온몸으로 거부해서

말들 중 유일하게 남편과 내 곁에 남았다.


영리한 녀석.

혜성이다웠다.


혼자 육지로 떠난 쿤타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두 녀석이 함께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어쩔 수 없다.

쿤타는 떠났고

혜성이는 우리 곁에 홀로 남았다.


그렇게 혼자 남은 혜성이는

남편 지인이 운영하는 마장에 위탁했다.

남편은 일주일에 서너 번

혜성이가 있는 마장으로 가서

혜성이를 돌봐주거나 혜성이와 운동을 한다.


남편이 나타나면 혜성이는

마장 한 구석에서 풀을 뜯다 다가와

흐흐 흥 콧소리를 내면서 반가워한다고 했다.

남편은 일주일에 서너 번 혜성이를 보러 간다.


나는 마장일을 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던지라

마장을 정리한 이후엔

말을 타지도

승마를 가르치는 일도 하지 않는다.


혜성이가 우리 곁에 남았다.

나는 혜성이가 어찌 지내는지 보고 싶기도 했지만

냉큼 녀석을 찾아가지 못했다.

나의 지친 마음을 회복시키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마음을 뭐라 표현하는 게 좋을까.


마장을 정리하고

말들이 모두 뿔뿔이 흝어져버린 지금,

혼자 덩그러니 남은 혜성이의 외로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내 말 혜성이는

작년 이맘때

우리 마장을 떠나왔다.

눈이 날리던 날이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고 가고

낙엽이 지는 가을이 되었다가

다시 겨울이 오도록,

혜성이는 초원에 홀로 서서

오지 않은 나를 기다리며 생각했으리라.


내가 왜 자기를 보러 오지 않는지.


나는 혜성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안다.

알지만 발걸음이 쉽게 떼어지질 않았다.

그런 내가

이렇게나 순수한 마음을 가진 생명에게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지도 잘 알고 있다.


오혜성.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어.

엄마. 곧 갈게.

거짓말처럼 짠. 하고 나타날 거니까

거기 말 친구들하고 잘 놀고 있어.


혜성이가 있는 마장은

한라산 쪽으로 더 높이 올라간

중산간에 있었다.

시멘트 가느다란 길을 구불구불 따라가니

시야가 트인 곳에 마장이 나타났다.


차에서 내려 말들이 있는 초원 쪽으로 걸어가니

저 멀리 혜성이가 보였다.


우리 마장에서 녀석들을 부를 때마다 그러했듯이

아주 아주 크고 밝은 목소리로

리듬을 실어 혜성이를 불렀다.

오오 혜애애애 서어어엉

혜애애 서어엉아아.


지인이 혜성이를 타려고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혜성이를 장안(말을 타기 위한 준비)하는 중이라

혜성이는 수장대(말을 준비하는 공간)에 들어가 있었다.


혜성이는 엉덩이 쪽을 나에게 향한 채

나를 등지고 서 있었다.

내가 자기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자

슬로 모션처럼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았다.


황금빛이 섞인 혜성이의 밝은 갈색털은

솜털이 잔뜩 올라와 있어

보기 좋게 부숭부숭했고 건강해 보였다.

녀석은 그동안 편안하게 잘 지낸듯했다.

마음이 좋았다.


혜성이는 몸을 돌려 나에게 다가왔다.

고개를 숙이고 내가 내민 주먹에 코를 가져다 대더니

킁킁 크으음 큼큼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나는 녀석이 내 냄새를 오랫동안 맡도록

가만히 주먹을 내민 채 몸을 낮춘 채 서 있었다.


녀석은 오랜만에 나를 만나고도

호들갑을 떨거나

코를 벌름거리며 흥분하거나

입으로 장난을 걸거나 하지 않았다.


도도녀 같은 녀석의 성품답게

아주 차분하고 기품 있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녀석의 평화롭고 부드러운 눈빛이 말했다.

왜 이제 왔어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조그만 고구마를 꺼내

손바닥에 올려 혜성이에게 내밀었다.

혜성이는 조심스럽게 앞니로 고구마를 물고는

우두득우두득 맛있게 씹어먹었다.


나는 혜성이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들기며

두 팔로 혜성이의 목을 감싸 안고서

녀석의 목덜미에 내 머리를 기댔다.


내가 힘들고 슬플 때

수십 번 수백 번 수천번

나는 그렇게 녀석 목에 기대어 위로받았었다.


미안함과 고마움

짠함과 속상함

안쓰러움과 반가움

쓸쓸함과 안도감 같은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내 안에서 일렁였다가 가라앉았다.


혜성이는 내가 그럴 때마다 늘 하던 대로

목덜미로 나의 숨소리와 행동을 느끼며

가만히 서 있었다.


대단이가 지내고 있는 마장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녀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

녀석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자기 주인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며칠 전

남편과 나는 대단이 가 있는 마장을 지나가다

녀석이 어찌 지내나 궁금해 불쑥 찾아갔다.


녀석은 원래 자기 주인과 살고 있으니

굶을까

목이 마를까

누운 자리가 지저분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초원에 커다랗게 사각으로 쳐 둔 나무 울타리 안에

말들 네댓 마리가 보였다.

대단이의 밝은 카멜색 털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예전에 우리 마장에서 늘 그랬듯이

나는 장난기 있는 말투로 대단이를 불렀다.


대애애단아아.

대단아아아아.


대단이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울타리에 배를 기대고 몸을 앞으로 숙인 채

대단이 가 나를 알아보도록 자세를 낮추고

대단이 코 앞에 천천히 내 주먹을 내밀었다.


대단이가 조심스럽게 큼큼 냄새를 맡았다.

나는 대단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봐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와 목도리를 벗었다.


몇 초간 주먹 냄새를 맡던 녀석이

내 얼굴 가까이 코를 대고 냄새를 맡기에

나는 녀석 코 가까이 바싹 내 얼굴을 내밀었다.


대단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혀를 내밀더니

날름 날름 내 손을 핥았다.

대단이의 긴장이 풀린 입술 근육과

조심스러운 혀의 움직임이

내 손에 살짝살짝 닿았다.

대단이의 애정이 담긴 인사가 느껴졌다.


나와 대단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대단이 주인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오오오.

대단이가 원장님 알아보네.

바로 알아보네.

원장님 손 핥아주는 것 좀 보소.


대단이 주인이 그런 말을 할 때

나는 내 손을 부드럽게 핥는

대단이의 사랑스러운 인사를 받으며

속으로는 감정에 들뜬 대단이의 수다를 상상했다.


대단이는 서열 1위 대장말이니까

녀석이 만약 사람이라면

대단이는 대장기질이 있는 마초 남자처럼

인사를 하리라.


우와. 엄마.

와 씨.

이게 얼마만이에요?

이이이야. 하하하.

아. 진짜 반갑네요.

근데

도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야 온 거예요?

예? 아. 말 좀 해봐요.

다른 애들은 다 어디 있어요?

다들 잘 지낸대요?

엄마가 나를 보러 오다니.

이거 꿈이야 생시야.

아하하하.

이이야아.


대단이 가 그날 나에게 건넨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인사는

나에게 얼마나 따뜻한 위로가 되고

진한 여운을 남겼는지 모른다.


혜성이를 만나고

녀석에게 위로받고 돌아오던 날은

마음이 가볍고 후련했다.

마치

미뤄둔 숙제를 마친것처럼 말이다.


마장을 정리하고서

고통스럽던 지난 시간을 뒤돌아볼 적마다

결국 우리에겐

깊은 상처와 과오들만 남았구나.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들로

오랫동안 자책하며 몸살을 하던 나에게

내 말들은 역시나 내 말들 다운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모두 떠나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그건 절대 헛된 시간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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