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개와 우리 개 릴리.

by 시안

그 개가 나타났다.


누렁이가 우리 마장에 나타난 건

벚나무 꽃봉오리가 막 올라오는

이른 봄이었다.


오름 끝자락 우거진 풀숲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누렁이는

가랑이 사이에 꼬리를 말아 넣고서

슬금슬금 우리 눈치를 살피며

우리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어슬렁거렸다.


누렁이는 아직 한 살도 안 돼 보였다.

어쩌면 오름 속을 무리 지어 돌아다니며

노루와 꿩을 사냥해서 잡아먹는

들개 무리에서 떨어진 강아지였는지도 모른다.

녀석은 얼굴과 몸이 아주 날렵하게 생겼다.

마치 여우처럼.


그 개는

릴리가 우리 곁을 지키고 있으니

릴리를 경계하며 주위를 맴돌 뿐

우리 가까이 오질 않았다.

그랬던 누렁이가 조금씩 간격을 좁히며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릴리가 우리 곁을 떠난 걸 알아차리자마자.


봄날엔 오름 밑자락에서 어슬렁거리더니만

여름엔

마장옆 초원 테두리를 따라 뻗어있는

체험 산책코스에서 나타났다.

그러다가

릴리가 사라지자

어느 날부터인가

마장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여기는 내 집이야. 하듯이.


아줌마.

릴리 할머니는 이제 돌아오지 않아요.

그만 포기해요.

그 개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점점 노골적으로 행동했다.


나는 그 개가 릴리가 있던 영역에 들어와

자기 집인 양 행동하는 것이 싫었다.

그 개는 눈치가 빠삭했다.

그런 내 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개는 우리 마장에서

내 말들에게 장난을 걸며 놀았다.

남편과 아르바이트생 정이가 주는

간식과 물과 사료를 먹으면서도

나만큼은 자기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나는 절대 그 개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눈치가 뻔한 개는 내 시선이 자기에게

향하길 기다리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부디,

저에게 마음을 열어주세요.



나는 그 개가 마장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버르장머리 없이 왕왕왕 짖어대는 게 싫었다.

네가 감히

우리 릴리도 하지 않던 짓을 하는구나.


내가 마장 한가운데에서 수업을 할 때

그 개는 내가 자기 주인이나 되는 듯

운동장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나와 몇 미터 거리를 두고서

내 수업을 구경하며.


릴리는 한 번도 운동장 안으로 들어온 적이 없다.

나에게 방해가 된다는 걸 안 거다.

나는 그 개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리 가!.


그 개가 내 눈치를 보며 주춤주춤 일어났다.

귀를 뒤로 눕히고

양쪽으로 입을 길게 찢어

어색하고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몸을 바싹 바닥에 낮춘 채

나를 보며 꼬리를 살레 살레 흔들었다.

그 개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괴로웠다.


우리 릴리가 사라진지 한달도 아직 안됬어.

널 보면 우리 릴리가 생각난다고.

제발 내 눈앞에서 좀 사라져줄래?


릴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우리와 19년을 함께한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7년 전,

릴리와 함께 12년간 키웠던

릴리 아들 황구 카이도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릴리가 카이처럼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장마끝자락이었다.

새벽에 산책 나간 줄 알았던 릴리는

점심이 되고 저녁이 되고

깜깜한 마장 하늘에 별이 뜨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에도 릴리가 돌아오지 않자

어쩌면 릴리가 이대로 영원히 떠나버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그럴 순 없어.

릴리는 돌아올 거야.


릴리가 우리와 19년을 살면서

집을 나가 일주일 만에 나타난 적이

몇 번 있었다.


혼자 산책을 나가서 노루 냄새를 따라가다

재수 없게 올가미에 걸려 몸부림치다 죽을뻔한걸

우리가 며칠 동안 초원을 뒤져

녀석을 찾아낸적도 있었다.


우리는 릴리 목을 조이던 질긴 올가미줄을 끊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런 일은 여러 번 있었다.


릴리는

짧게는 삼사일만에,

길게는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가

이제 정말 녀석이랑 끝인 걸까. 상심하던

우리 앞에 나타나곤 했었다.


이번에도 릴리는 돌아올 거야.

그러나

이번엔 심상치 않았다.

느낌이 그랬다.


릴리가 사라지던 날

깜깜한 새벽에 비가 내렸다.


끼이이이익.

다급하게 차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마장 숙소 바로 앞

2차선 국도에서 나는 소리였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얕은 잠을 자던 나는

그 소리에 잠을 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소리지?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릴리가 산책을 나가다 차에 부딪힌 걸까.

그 순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나는 숙소 창 커튼을 열어젖히며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창문을 열었다.

밖은 다시 고요했다.

예사롭지 않은 소리야.

나는 다시 자리에 누우며 생각했다.


그날 새벽

노란 컨테이너 안에서 잠을 자던 고양이 레오는

우리가 잠을 자는 숙소 앞까지 건너와서

밤새 현관에서 아주 큰 소리로 울었다.

레오가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레오는 비가 쏟아지는 숙소 현관 앞에 앉아서

다급하게 나를 부르듯이

내가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악을 쓰며 울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레오. 왜 그래.

비 맞지 말고

얼른 사무실로 들어가.


릴리가 사라지기 전 날도

릴리는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가

오후 늦도록 돌아오질 않았다.


릴리는 늙은 개라서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고

잘 뛰지도 못했다.


릴리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천천히 슬렁슬렁

마장 안을 산책했고

고양이 레오와 레미 장난을 받아주다가

폭신한 자리에 몸을 누위고 깊은 잠을 잤다.

늙은 릴리는 잠을 자며 하루를 보냈다.


릴리가 사라지던 전 날,

녀석은 하루 종일 마장 밖으로 나가

오후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 릴리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르바이트생 정이가 릴리를 찾으러 마을길로 나가더니

마을 쪽에서 마장으로 걸어오는

릴리를 발견하고서 외쳤다.

원장님.

릴리 찾았어요.

릴리야.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하루 종일 널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늙고 병든 릴리는

그날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낸 걸까.

그리고 그 다음날.

릴리는 모든 준비를 마친 것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모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릴리가 사라지자

사람들이 말했다.


진돗개는 죽을 때가 되면

주인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죽는다고.

릴리가 죽을 자리를 찾아 떠난 모양이야.

자기 마지막을 주인에게 보이고 싶질 않아서.


말도 안 돼.

죽을 자리를 찾아 가족을 떠나다니.

렇게 슬픈 말이 어딨어?


릴리와의 마지막이 이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늙은 릴리가 우리 곁을 떠난다면

마당 볕이 잘 드는 곳에 묻어줘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제멋대로 이렇게 떠나버리다니.


나쁜 놈.

바보 같은 놈.



릴리가 사라지자

초원으로 오름으로

마을길로

저 멀리 있는 동네들과 그 주변 초원을 뒤지며

릴리를 찾아 헤매 다녔다.


당근에 게시글을 올리고

비슷한 개를 보았다는 소식이 들리면

낮이든 새벽이든

차를 몰고 그곳으로 찾아가 확인을 했다.


릴리가 사라지던 그날 새벽에

끼익 소리가 나던 국도 주변을 수없이 뒤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도 주변은 발을 딛지도 못할 만큼

풀과 덤불이 무성했다.


서울에 있는 큰 애에게

릴리가 사라졌다는 말을 해야 했다.

그러나 입이 도저히 떨어지질 않았다.


릴리가 사라진 지 삼주쯤 지났을 때

큰 애에게 말을 꺼냈다.

릴리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질 않아.

뭐라고? 언제?

장마가 끝날 때쯤.

엄마.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릴리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날

큰 애는 급하게 밤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


큰 애는 릴리가 사라져 버린

깜깜한 마장 뜰을 걸으며

릴리야아

릴리야야아

릴리를 부르며 큰소리로 울었다.


깊은 밤

어둠 속 마장에는

짙은 안개처럼 슬픔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오름 꼭대기 어디선가 소쩍새가 울었다.

마장 울타리에 들어있던 말들이

큰 애의 서글픈 울음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서 있었다.


종종 말들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푸르르르.

푸르르르릉.

말들도 릴리 할머니가 사라졌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우리 큰 애가 왜 이렇게 슬프게 우는지도.


밤 비행기로 내려와

새벽 내내 마장 뜰 위에서 울던 큰 애는

릴리가 사라진 후

자기에게 그 소식을 바로 알리지 않은 나를 탓했다.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릴리를 찾기 위해서

그동안 엄마는 무슨 일을 했는지 따졌다.


내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릴리가 나 마중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

자기가 사라졌을 때

내가 자길 찾질 않았다고

나 만나러 오지 않으면 어떡해?


릴리가 사라져 버린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날 새벽 내내

큰 아이의 울음소리와

릴리가 사라진 걸

왜 말하지 않았는지 탓하는

큰아이의 말들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우리는 그렇게 그날 밤을 새웠다.

슬프고 힘든 밤이었다.


어둠이 걷히고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돌자

큰 애를 차에 태우고

마장 옆 마을로 향하는 샛길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우리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오름 밑 마장 주변 숲을 바라보며

릴리를 부르며 찾아다녔다.


릴리야야아

릴리이이이


마을로 향하는 시멘트 샛길은

마장 터 위로 2미터가량 높은 위치에 있었다.

우린 높은 시멘트 길 위에서

저 아래 마장을 내려다보며

릴리를 불렀다.


그때였다.

누렁이 개가 마장 한가운데 서서

우리를 향해 왕왕왕 시끄럽게 짖었다.

그 떠돌이 개였다.


멍청한 놈.

바보 같은 새끼.

돌대가리.


마장 주인도 몰라보고

떠돌이 개 주제에

주인 행세를 하며 겁도 없이 짖어대다니.

나는 속으로 그 개를 욕했다.


밤새 울면서

릴리를 찾던 큰 애가

그 개를 향해 소리쳤다.


야!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저리 가!


큰 애가 자기를 향해 소리치자

그 개는 더 큰소리로 짖었다.

큰 애는 2미터 둔턱을 미끄러지듯

내려가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울면서 그 개에게 달려갔다.


가!

짖지 말라고.

짖지 마.


큰 애는 일주일에 몇 번이고

제주와 서울을 오갔다.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고

마장이 있는 제주 서쪽 광범위한 지역

곳곳에서 릴리와 비슷한 개를 보았노라

제보가 들어오면 찾아가 확인을 했다.


새벽이든. 아침이든. 밤이든. 상관없었다.

릴리가 아니었다.

그런 날들이 한 달이 다 되어갔다.


그러다가 릴리의 마지막 소식을 확인했다.

제보 덕분이었다.

시기와 개의 크기와 모습을 전해 들으니

릴리가 분명했다.


그 소식을 확인했을 때,

슬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차라리 안도감이 밀려왔다.


낯선 곳에서

굶고 있지는 않을까.

목이 마르진 않을까.

비를 맞아 떨고있진 않을까.

우릴 찾아 헤매고 다니고 있진 않을까.

사람들에게 해고지당하고 있진 않을까.

했던 온갖 걱정이 잠잠히 가라앉았다.


결국 녀석이 우릴 떠났구나.

영원히.

릴리 이 망할 놈아.

우리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만들어놓고 떠나다니.


릴리가 떠난 걸 확인한 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가족에게는

릴리 얘기는 금기어가 됐다.


릴리가 떠난 후에

우리에게 남은 여러 감정들이

금세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장을 집처럼 누비고 디니던

떠돌이 개는

마장 옆 타운하우스에 사는 주민이 거두었다.


그 사람은 매일 산책하면서

마장옆을 지나다니다가

그 개에게 간식을 챙겨먹였었다.

그러다가 우리 마장이 문을 닫는다하니

내가 그 개를 키우마.나선것이다.


잘된 일이었다.

그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나는 또 그 떠돌이 개때문에

가슴앓이를 했으리라.


릴리가 떠난 지 일 년쯤 지난

작년 11월,

큰 애와 전화로 긴 수다를 떨다가

큰 애가 놀라운 얘기를 들려줬다.


엄마.

내 친구 중에 말이야.

뭐를 보는 애가 있어.

이를테면 귀신같은 거.

특이한 게 그 애는 수호신을 본대.

어떤 사람을 따라다는 영 같은 거 말이야.


내가 그 친구에게 나에게도 뭐가 보여? 하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나를 한참 말없이 바라보더라고.

그러더니 그러는 거야.

내 옆에 노란 황구 한 마리와 진돗개 백구가 보인다는 거야.


엄마.

그 친구는 대학에서 만난 친구라

내가 카이랑 릴리 키운 걸 몰라.

그런데 그런 말을 하더라고.


노란 황구는 약간 희미해 보이고

하얀 백구는 더 선명하대.

황구가 우릴 떠난 지 더 오래된 거 같다고 하는 거야.

카이랑 릴리가 내 옆에서

나를 지키고 있대.

수호신처럼.


엄마.

그 애가 카이랑 릴리 있는 곳을 설명하면서

아. 여기가 개들이 사는 천국 같은 건가?

하는 거야.

그곳이 아주 따듯하고 밝대.


그곳을 설명하는데 말이야.

숲 속도 아니고

잔디도 아닌데

초록 풀이 무성한 아주 넓은 초원 같은 곳이 보인대.


너무 놀랍지 않아?

우리 집 옆에 있는 넓은 초원을

마치 본 것처럼 말을 하더라고.

릴리랑 카이 데리고 늘 산책하던 초원.

걔네가 여기 초원에서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잖아.

거기에 있대.


카이는 죽을 때가 되어서

스스로 우릴 떠난 게 맞대.

카이가 그렇게 말했대.

그런데 릴리는 끝까지 말을 안 한대.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


엄마.

릴리가 나를 사랑한다고 전해달라고 했대.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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