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싸. 당장 이사해!

by 시안

웅웅웅 브브브 붕붕 브브 우웅우웅


대마장 한가운데 서서

회원들에게 레슨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 머리 위

오른쪽 방향 낮은 하늘에서

공기를 뒤흔드는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읭? 이게 무슨 소리지?


소리와 진동이 느껴지는 쪽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 머리 위로 약 10미터쯤 높이에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10미터였는지 25미터였는진 자세히 모른다.

설마 딱 10미터였겠는가.)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은 무언가가

어마어마한 덩어리를 이룬 채

공기에 묵직한 파장을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도대체 저게 뭐람?


오른손을 오른쪽 눈썹 위에 받치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바라보니

시꺼먼 구름처럼 보이는 것은

수십억 마리는 넘어 보이는 벌떼 군단이었다.

어마어마한 벌떼 군단.


처음 본 광경에 압도돼버린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벌떼를 쳐다봤 벌떼 진행방향을 따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시선이 따라갔다.


벌떼 규모는

마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하늘 틈새가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새까맸고 벌들의 간격은 보이지도 않고 촘촘했다.

거대한 한 덩어리의 벌떼 구름이었다.


날아오는 벌떼의 폭은

가로 세로 40*80m의 마장을 뒤덮고도 남았고

좌. 우. 후방에 옅고 긴 꼬리를 달고 지나갔다.


마장 한가운데 서서도

머리 위 공기의 진동을 느낄 만큼

수억조 마리 벌들이 동시에 날갯짓을 하며

만들어낸 공기의 파장은 굉장했다.


진동모드 핸드폰 수십억개가 한 덩어리로 뭉쳐서

브스스브스브스스스 진동을 일으키며

하늘을 날고 있는 상태랄까.


마장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벌들은

마장 옆 시멘트 샛길 너머

저 넓은 콩밭 어딘가에서부터 날아오는 듯했고

마장 바로 옆에 있는

오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규모의 벌떼였다.


벌떼를 확인한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벌떼. 이퀄(=) 쏜다.

쏜다. 이퀄(=) 죽음.


저놈들이 비행 중에 우릴 내려다보다가

우리들 소리나. 행동이나. 냄새 때문에

심사가 꼬여서

갑자기 확 방향을 바꾸어

우릴 덮치면 어쩌나 상상을 했다.

덜컥 겁이 났다.


또다시

벌떼. 이퀄(=) 쏜다.

쏜다. 이퀄(=) 죽음.


이건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이었다.


한낱 보잘것없는 인간이

어떤 해괴망측한 짓을 벌였을 때

벌떼들이 심사가 꼬여서

날아가던 길을 멈추고

땅으로 시선을 돌려

보잘것없는 인간을 향해

융단폭격기처럼 돌격해 대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벌떼. 이퀄(=) 심심하면 그냥 쏜다.

그냥 쏜다. 이퀼(=) 죽음.


벌떼는 넓고 넓은 하늘 중에

하필이면

내가 레슨 중인 대마장 하늘 정중앙을

비행 노선으로 선택하여 날아갔다.


날아가는 벌떼 밑에선

회원 네 명이 말을 타고 있었다.

회원들이 타고 있는 말이란 동물은 아주 예민하다.

엄청난 겁쟁이들이고.


낯선 자극에 노출되어 말들이 놀라면

순간 어떤 짓을 하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건 놀란 말 마음대로라.


말들이 놀라면

자기 등위에 사람이 있건 없건

미친 듯이(진짜 미친 듯이) 질주해 버릴 수도 있고

자기 등 위에 사람이 있건 없건

앞다리 두 개를 들어

일직선으로 서 버릴 수도 있다.


두 경우 다 사람은 말에서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

아주 크게 다칠 수도 있고.

최소 뼈가 부러지거나.

(주여어.)


대마장에 있는 네 마리중

한 마리라도 그런 짓을 한다면

나머지 세 마리도 덩달아 같이 놀라

위에 말한바대로

네 마리가 동시에 그런 짓을 할 수도 있었다.

대형 사고가 나는 거다.

내 수업 중에.


하늘 위에서 웅웅웅 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고.

저거 뭐지? 시꺼먼 벌떼잖아. 깨달은 후에

눈을 돌려 말 타고 있는 내 회원들을 바라보다가

지금 이건 사고 나기 일보직전이네. 느낀 순간.


이 모든 게

벌떼를 봄과 동시에

나의 뇌가 연상시킨 생각들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클났다!


벌떼 비행속도는 빠르지도 않았다.

살인 벌들이 등장하는 공포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시꺼멓게 덩어리 진 벌떼 구름은

위압감과 공포감을 일으키며

웅웅웅 우웅 천천히

나와 네 마리의 말들과 네 명의 회원들 머리 위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내가 겁이 나서 목소리를 높이고

호들갑이라도 떨면

그다음은

말들이 놀라서 호들갑을 떨고

호들갑 떠는 말 때문에

회원들이 놀라고.

그다음 난장판이 되는 건 상상해 보나 마나 한 일.


나는 두려움이 이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일부러 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회원들에게 말을 꺼냈다.


회원들에게도 별일 아닌 듯 안심을 시켜야 했다.

그러나 속으론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첫마디에 삑사리가 났다.


여러...


크큼.

여러분.

지금 여러분 머리 위로 벌떼가 지나가고 있어요.

보이시죠?

(봤지? 봤지? 어떡해애.)

괜찮습니다.

(아니요. 아니요.전혀 괜찮지 않아요. )


여러분 타신 말들이 벌떼를 보거나

벌떼 소리를 듣고 긴장할 수 있으니

(말들이 갑자기 난리를 칠지 모르니)

침착하게 자세를 바로 세우고 앉아

고삐를 단단히 쥐시고요.

(말들이 놀라서 내빼기 시작하면

말을 세울 브레이크는 오직 고삐뿐!

고삐가 당신의 목숨줄입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합시다.아아멘.)

자아아.

울타리 테두리를 따라

천천히 평보로 걷겠습니다.


말들이 자리에 정지해서 멍 때리며

가만히 서 있을 때

오히려 놀랄 확률이 높다.

왜 사람도 그렇지않던가.


이럴땐 말을 천천히 걷게 하여

자기 등위에 앉은 사람 신호에 집중하게

만드는 게 낫다.

(에베베베. 하늘 보지 마. 보지 마.

앞을 봐. !

걸어.걸으라구.

벌떼는 쳐다보지도 마!)


회원들이 천천히 말을 걷게 했다.

말들은 회원들을 등에 태우고 걸으면서도

머리 위에서 웅웅 거리며 지나가는

벌떼 소리가 신경이 쓰이는지

두 귀를 180도 방향으로 돌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놨다.


벌떼가 우리 머리 위로 지나간 시간은

수십광년이 흐르는 것처럼

오지게 느리고 더뎠다.


벌떼 선두 쪽이 오름 쪽으로 기울어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갔고 이제 벌떼 후미 쪽 옅게 흩어진

벌들 무리가 선두를 따라가며

우리 머리 위를 통과했다.


드디어.

다 지나갔다.

젠장!

아니.

할렐루야.


회원 네 명과 네 마리 말들은

조금 전 머리 위로 잠시 먹구름이 지나갔더랬습니다. 느끼듯이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차분했다.


회원들과 내 말들에게 내색을 못했을 뿐

속으론 벌떼로 인한 온갖 사고의 장면을 상상하며

질색팔색 사색이 된 나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 것이다.


그날 저녁에

낮에 본 벌떼가 너무 신기하고 이상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좌판들이 이렇게 설명했다.


벌떼가 그렇게 무리 지어 이동을 하는 경우는

몇 가지 경우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살던 집이 좁아서 이사를 가는 상태.

즉. 분봉하는 중이라고 했다.


살던 집에는 원래 있던 벌들이 살게 두고

집을 하나 더 마련하여

여왕벌이 일꾼 벌들과 쎄컨 하우스로 이사를 가는 날.


다짜고짜 이사 가자. 해서 아무 데나 가는 게 아니라 정찰병들이 사방팔방 흩어져서

적당한 집을 찾는단다.


정찰병들이 돌아와서 8자로 춤을 추며

방향을 가리키면

여러 이사 갈 집 후보들 가운데

벌들이 의견을 모아 제일 좋은 곳을

민주적으로 정한다나 어쩐다나.


두 번째는 벌 전체가 다 이사를 가는 것. 이란다.

원래 사는 집 환경이 좋지 않을 때

아예 그 집을 버리고 새 집으로 이사를 가는데

이때 비행하는 벌떼 규모는 더 크다고 했다.


이거네! 이거.

콩밭에 있던 원래 집 버리고

오름 숲 속 새집 찾아 이사 가기.


벌떼가 나타나기 전

벌떼가 날아오던 방향에 있던 콩밭에는

며칠 동안 농약을 뿌리는 거대한 드론이

콩밭 위를 날아다녔다.

농약을 뿌리면서 말이다.


그래서 벌집 여왕벌이 결정한 거다.

야.

짐 싸!

당장 이사해!


그리하여.

정찰병 벌이 찾아낸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오름 숲 속에서 그곳을 발견했고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에 따라 만장일치로 결정.

여왕벌을 모시고 아주 천천히 비행하면서

오름 쪽으로 이사를 하던 중이었던 거다.


여왕벌을 모시고 비행을 할 땐

실제로 여왕벌 비행속도에 맞춰서

느린 속도로 비행을 한다고 했다.


어쩐지이.

우리 머리 위로 벌떼 날아가는 속도가

느리다 했다.


난생처음 보는 벌떼의 비행.


벌떼가 헌 집 버리고 새집 찾아가는 이사의 순간.

그 역사적인 장면을

나와 내 말 네 마리와 회원 네 명이 지켜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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