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숲 길에서.

by 시안

안개비가 내리는 오후

자연휴양림 숲 길로 들어선다.


곶자왈 지대에 만들어진 이 숲길은

성인 어깨 폭 정도의 산책길 좌우로

숲과 산책길을 구분하는 돌덩이들이 조로록하다.


이끼를 뒤집어쓴 채

땅 위에 두줄로 나열된 돌덩이들은

이 숲이 생긴 순간부터

쭉 이곳 주인이다.


두 줄로 주욱 이어진 돌멩이들은

깊은 숲으로 나를 안내하는

요정들 같다.


숲길을 걷는 나를 위해

손에 손을 맞잡고

숲에 도열한 돌멩이 요정들.


이 쪽이야.

이 길로 쭉 가.


이 숲길이 유독 좋은 건

인공적인 공사 없이 만들어진

자연 그대로의 숲길이기 때문이다.


안개비가 내린 덕에

숲길을 찾은 이는 아무도 없다.

고요하고 아늑하다.


똑. 또독. 똑똑

주위 크고 작은 나무 잎에게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내 근처 어딘가에

산초나무가 있는 모양이다.

산초나무 잎 냄새가 알싸하게 코끝에 전해온다.

숲이 비에 젖어

숲의 냄새가 놀랍도록 풍요롭다.


아직 봄이 닿질 않아

어둡고 우중충한 숲길에도

바위를 덮은 연초록 이끼들과

초록 초록 양치식물들이

빗물을 머금어 싱싱하고 탄력 있다.


바위틈 새

옴팍하게 쑥 들어간 자리.

입구는 주변 작은 나뭇가지들에 가려져있다.

작은 동굴처럼 은밀하고 안전한 은신처.

노루 잠자리다.


낮에 숲을 돌아다니며 연한 칡순을 따먹던 노루는

밤이 되면 이곳에서

둥그렇게 몸을 말고서 잠을 잔다.


그 노루는

바위뒤 어디쯤에 숨어서

혼자 숲길을 걷고 있는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하고 있으리라.


안개비로 뒤덮인 숲은

형체가 없는 무의식의 세계처럼 몽환적이다.

내 주위 풍경은 안개뒤로 숨었고

들쑥날쑥 뻗은

크고 작은 나무들 실루엣만 선하다.


이 고요한 숲 속을

나 홀로 걷는다.


안개비에 흥이 난 나는

내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비 오는 날 산책길에서

함께 불렀던

백창우 선생님의 동요를 부른다.


내 이름은 무섬이

난 깜깜한 게 싫다

어두운 골목을 갈 땐 막 뛰어간다


내 이름은 무섬이

난 혼자 있는 게 싫다

엄마도 없는 날엔 자꾸 시계만 본다


우르르 쾅쾅 번쩍 천둥번개가 치고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밤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구구단을 외운다


https://youtu.be/KcQW00kb6ZQ?si=ByAqYgNatjqssE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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