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부터 매일 창밖을 내다보며
기다려온 보람이 있다.
주방창 앞 복숭아나무에 드디어 꽃이 폈다.
가지마다 분홍별 같은 꽃들로 가득하다.
어쩜 이리도 화사한가.
얼마나 기다려온 꽃이던지
제 때를 맞아
드디어 절정인 꽃들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다 설렐 지경이다.
눈발이 날리던 한겨울에도
복숭아나무엔 좁쌀만 한 꽃눈이 맺었었다.
눈 쌓인 겨울
복숭아나무에 맺힌 꽃눈을 본 순간.
그때부터
저 나무에 풍성히 매달린
화사한 복숭아꽃들을 상상해 왔다.
비가 오고
해가 들고
바람이 지나가고
다시 해가 들고 나더니
꽃눈은 점점 차올랐다.
좁쌀만큼 하던 것이 보리쌀만 해지고
보리쌀만 하던 것이 쥐눈이 콩 알만 해지더니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봄나물 냄새가 실려온다 싶을 때 즈음
복사꽃눈들은 서리태 콩알처럼
굵직굵직 탱글 해졌다.
봄볕 몇 나절
봄비 몇 나절
봄바람 몇 나절에
갈색 꽃눈 껍질 속에 돌돌 말린 분홍꽃잎이
터지기 직전 옥수수 팝콘처럼
얇은 껍질을 찢으며 불뚝 불툭 움찔거렸다.
하루 이틀 포근하게 가랑비가 내리더니
복사꽃들은 축제날 축포를 터트리듯이
드디어
펑펑 펑펑 터져 올랐다.
꽃을 기다리기엔
터무니없는 한 겨울부터
난 이 꽃들을 기다려왔다.
창을 내다보며 매일 기다려온 꽃.
싱크대 앞에서 일을 할 때
고개들어 힐끗 내다볼 때도
식탁에 앉아 입맛 없는 마름식사
한 수저 떠서 입을 오물거리며 창밖을 바라볼 때도
주방창을 가득 매운 화사한 복숭아꽃은
내게 감동이 되고
위로가 된다.
아침을 먹고서 설거지를 하다가
창을 내다보니
동박새 서너 마리가 날아와
복숭아꽃들 속에 파묻혔다.
동박새들은 복숭아꽃으로 날아들어
이 꽃 저 꽃으로 옮겨 다니며
분주하게 복숭아꽃 꿀을 먹었다.
주먹보다 작은 크기에
등이 이쁜 초록색인 동박새
눈 주위는 흰 테를 두른 듯 똥그랗다.
동박새는 길고 가느다란 주둥이를
꽃 속으로 들이민 다음
혀를 날름거리며 꿀을 핥는다.
동백꽃이 필 때 동박새는
동백꽃 꿀을 먹기에 이름이 동박새가 되었단다.
동박새는 붉은색을 유독 구분을 잘한다는데
그래서 동백꽃을 좋아하고
화사한 분홍 복숭아꽃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동박새가 꿀을 먹는다는 건
제주 새도감에서 읽은 적이 있지만
불과 이 삼 미터 앞에 두고
녀석들이 꿀을 먹는 모습을
자세히 지켜본 건 처음이다.
동박새들은 겁이 많아서인지
촐싹 촐싹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꿀을 먹다가도
작은 소리에도 놀라서 후다닥 날아가기 일쑤였다.
나는 주방 유리창 앞에 서서 미소지으며
귀여운 녀석들을 바라봤다.
녀석들은 유리창 밖 바로 앞에서
내가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후더더덕 몰려와 부지런히 꿀을 먹다가
다시 후드득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