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대학 캠퍼스가 있는 시내에서
한라산 실습마장까지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실어 날랐다.
가끔 스쿨버스를 놓친 아이들이
자차로 마장에 올라가는 내게
긴급 구조 요청을 했다.
쌔앰.
저 버스 놓쳤어요.
마장 올라가시는 길에
저 좀 태워주세요.
청춘들은 늦잠을 잤거나
전날 술이 떡이 되도록 먹은 후유증덕에
버스를 놓친 게 분명했다.
한라산 동쪽 중산간 시골에 사는 나는
그들의 긴급 구조요청 카톡을 받으면
걱정 마. 내 차로 같이 가자. 하며
부리나케 시내로 차를 몰았다.
학교 정문 앞에는 버스를 놓친 아이들 서넛이
내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좀비처럼 부스스한 몰골로 내 차에 올라탔다.
청춘들은 내 차를 얻어 탄 값으로
병 커피나 쿠키 같은 것들을 내밀었다.
이런 거 안 줘도 되니까 그냥 타.
청춘들은 조수석과 뒷좌석에 앉아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마장까지 가는 동안
가벼운 수다를 떨거나
눈을 감고 부족한 잠을 자기도 했다.
차 안에서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청춘들의 연애사. 는
중년 아줌마인 내겐 늘 흥미진진했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서 그들의 이야기를 못 들은 체 했다.
ㅡ낄끼 빠빠 구분 못하는 꼰대란 소리 듣을까 봐.ㅡ
난 운전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 리스트를 듣는다.
청춘들이 내 차를 탈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플레이 리스트 중에
20대 청춘들이 듣자마자 놀래 자빠지는 곡은
뭐니 뭐니 해도 에미넴 리스트였다.
한곡도 아니고 에미넴 곡이 줄줄이 사탕처럼
15곡이 내리 쫙 흘러나올 때
청춘들은 놀라워했고 재밌어했다.
허어얼.
쌔앰.
이런 노래도 들어요오?
오냐.
뭐.
나는 뽕짝 뽕짝 하는 노래만 들을 줄 알았냐?
나 뽕짝 안 좋아하거등요.
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에미넴이라뇨.
왜 이래애.
나 에미넴 오래된 팬이거등?
나아 힙합 좋아해요오.
아줌마는 뽕짝 좋아할 거란 편견은 버리란 말이지.
학교에서 20대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지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최신 유행어를 배우게 되었다.
집에서 내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학교에서 배워온 청춘들 유행어를 은근슬쩍 쓰면
엄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대?
그런 거 누가 가르쳐줬어? 하면서 낄낄댔다.
학교에서 청춘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다가
최신 신박한 표현을 하나 알게 되면
집으로 와서 남편과 내 아이들에게
한 번씩 써먹어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그런 경우 유행어를 모르는 남편은 뭐가 뭔지 몰라
이게 웃기자 작정하고 하는 말임에도
웃음 포인트를 몰라 멀뚱멀뚱했고
큰 아이와 둘째는 엄마가 최신 유행어를
쓰는 게 웃기는지 키득 키득댔다.
나중에 그게 청춘들이 쓰는 유행어인걸 알게 된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하아.
공부하라고 마눌 대학 보내놨더니
배우라는 건 안 배우고
애들 쓰는 유행어나 배워오고.
자아알 하는 짓이다.
대학을 다시 들어가자마자
언제부턴가 만학도 친구 서영이가
(서영이는 나보다 10살 어린 내 베프다.)
청춘들이랑 대화도중에
존버라는 단어를 썼다.
아주 자연스럽게 꺼낸
뭔가 고급지고
세련된 영어 쀨나는
존버.
난생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청춘들과 서영이가 주고받는 말엔
존버.라는 단어가 들락날락거렸다.
그들 입에서 툭 툭 튀어나오는
존버라는 단어를 들으며
나는 바삐 뇌를 굴렸다.
쟤네들이 말하는 존버가 무슨 뜻이지?
내가 모르는 영어단언데.
존버.
존버가 무슨 뜻이지?
난생처음 들어보는 존버라는 단어 뜻이 너무 궁금했으나 그들에게 대뜸
존버. 가 무슨 뜻이야? 묻질 못했다.
그것은 즉,
나는 존버. 뜻도 모릅니다.
존버. 영어 단어도 모르는 멍청이어요.
하는 꼴이었다.
대놓고 그 뜻을 묻는다는 건
내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었고
쪽팔릴 일이었다.
그래서 혼자 생각했다.
그래. 자꾸 듣다 보면 뜻을 알게 될 거야.
영어는 감. 이거든.
어휘는 센스지.
내 베프 서영이는 날이 갈수록 존버. 를 자주 썼다.
그 애가 나에게 그 단어를 쓸 때마다
나는 존버 뜻을 당연히 아는 듯이
으응. 아아. 아 진짜? 하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맞장구를 쳤다.
젠장.
도대체 존버가 무슨 뜻이람?
그러기를 한 달째.
호기심이 도지면 당장 호기심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존버라는 단어 의미는 끝내 스스로 알아내지 못한 채 쪽팔림을 무릅쓰고 서영이에게
그 뜻을 묻기로 작정했다.
아마 그때도 서영이는 대화 중에 존버라는 단어를 썼을 거다.
서영이가 존버. 어쩌고 저쩌고 말을 할 때
나는 별거 아닌 척
전혀 1도 쪽팔리지 않는 척하며
큰 용기를 내어 서영이에게 물었다.
친구야.
나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마랴.
존버. 가 무슨 뜻이야?
(가로 열고. 두근 두근 듀근 듀근.가로닫고)
엇?
내 친구.
존버. 뜻 몰라?
엉.
진짜?
엉. 뭔데?
그건
존나 버..(티는..)
내 친구가 딱 거기까지만 말했을 때
난 엄청난 깨달음이 옴과 동시에
욕이 튀어나왔다.
Aeeeeee C.
야!!!!!!!!!
내 남편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편과 대화 중에
내가 서영이에게서 배운
존버.라는 단어를 써댈 때
남편은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다 이해한 척 내 말을 받아쳤다.
그러길 몇 주가 흘렀을 적에
은근슬쩍
스리슬쩍
쪽팔리지 않는 척
남편은 무심하게 툭 물었다.
마눌.
근데 마랴.
존버. 가 무슨 뜻이야?
지난 과거 내 처지 같은 남편의 궁금증에
웃음이 터진 나는
씨익 한번 웃은 다음 대답해 줬다.
아.
그거?
존나 버..
까지만 말했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도 똑같이 분노했다.
Aeeeeee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