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괜찮다.안죽고 살아있으니!
지도자자격증 실기 시험이 바로 코앞이었고
시험대비하느라
장애물 점핑 연습에 몰두해 있던 그때.
당시 내 하루 일과는 이랬다.
학교 마장에서 말똥을 치우며 말을 탔다.
학교 마장에서 내려오자마자
ㅇ감독 마장으로 달려가
장애물 점핑 레슨을 들었고.
다시 우리 마장으로 달려와
장애물 점핑 특별 레슨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말 등에 오를 때는
항상 저 멀리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하루동안 대여섯 마리 말을 타고 온 뒤라
마지막 말 등에 오르는 내 다리는
이미 힘이 풀려있었다.
하루 중 마지막 레슨.
우리 마장에서 내 장애물 점핑 수업은
학교 조교가 지도했다.
그는 막 서른이 된 젊은 친구였다.
말을 꽤 잘 탔고
교수들 못지않게 디테일한 티칭이 좋았다.
나는 조교에게 레슨비를 내미는
자발적 호갱님이 되었다.
호갱님이든 뭐든 간에
내 자격증을 따는 게 우선이라
다른 사소한 감정들은 뒤로 밀쳐두었다.
나의 절박함이 만든 호갱님 레슨.
조교는 장애물 점핑 때
장애물 진입 시 말 발걸음이 활발해서 좋다 싶으면
무지막지하게 장애물 높이를 올렸다.
탄력이 있어야 멀리 날아가는 법.
마장 한 바퀴를 다그닥 다그닥 달려서
마지막 코너를 돌아
장애물 지지대 앞 직선 진입 구간에 들어섰다.
출발 당시에 높이 50cm로 세팅돼 있던 장애물은
언제 장애물을 그리 높게 올려놨는지
90cm. 1미터.가 되어 있었다.
1미터 20cm. 1미터 30cm까지도 올려져 있었고.
좀 더 올려볼게요.
1미텁니다.
1미터 10cm입니다. 따위의 친절한 멘트는 없다.
조교 판단대로 그냥 올리는거다.
나는 달리는 말 위에서 장애물을 정면으로
보는 그 순간에 보고 느끼는거다.
흐억.
장애물 높이가 왜 저래?!
조교는 장애물대 옆에서
응. 드루와. 드루와. 하는 표정으로 서있었고
나는 그대로 장애물을 향해 달려갔다.
혜성이가 나를 등에 태운 채
장애물을 십미터쯤 앞두고서
장애물 지지대를 정면으로 딱 마주하면
아주 짧은 찰나
나는 말 등위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1미터 30cm 장애물은
말의 어깨보다 높은 위치였고
키가 1미터 70cm이 조금 넘는
조교의 가슴께 어딘가에 있었다.
내 앞에 가로놓인 굵은 직선의 거대한 벽.
두려움과 공포감이 들지만 물러설 수 없다.
멈출 수도 없고.
내 선택지는 딱 하나.
오직 앞으로 직진하여
나비처럼 부드럽게 날아 장애물을 뛰어넘는 수밖에.
나는 혜성이를 믿고
혜성이는 나를 믿으며
장애물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서 그대로 넘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하나.
둘.
셋.
점핑!
피유우우웅.
따닥.
착지.
다시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점핑의 순간
두려움 때문에 내가 주춤거리거나 머뭇거린다면
금세 내 밸러스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내 말 혜성이는 그걸 귀신같이 알아챈다.
(뭐야. 왜 머뭇거려? 뭔데?)
장애물 점핑 직전
장애물 지지대 앞에서 나와 혜성이에게
1/10000000초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내가 말 등에서 겁에 질려 쫀 순간
말은 그런 내 마음을 읽고서 같이 쫀다.
나처럼 겁먹은 말은 자신감을 잃고
장애물 앞에서 쉭! 몸을 틀어
장애물 옆으로 빠지거나
끼익! 급정거를 해버린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말이
끽. 멈춘다고 생각해 보라.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나.
말은 장애물 앞에서 네 다리를 붙이고 섰고
말 등에 앉아있는 나만 공중으로 날아간다.
(젠장! 혜성이. 너 이느므시끼.)
말이랑 함께 넘어라. 하고 설치돼있는
장애물 지지대를
혼자서 날아서 넘은 다음
장애물 저 건너편으로 약 3미터를 날아가 착지한다.
온몸으로.
내가 바닥에 널부러져서 윽.소리를 낼 때
혜성이는 빈 안장을 등에 업고서
그런 나를 내려다본다.
어쩔땐 자기 잘못을 아는듯
미안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지만
어쩔땐 한숨도 내뱉는다.
나 이럴줄 알았어.
그러게 그냥 하지. 쫄긴 왜 쫄아. 이런 표정으로.
낙마하는 순간을 슬로 모션으로 보자면 이렇다.
혜성이가 끼이이익 자리에 멈추고
말 등에서 혼자 날아가는 순간
난 속으로 외친다.
으아아아! 제앤장 오느으을 또오 낙마하네애애에.
장애물을 넘어가 저 반대쪽 바닥으로 떨어질 때
나는 최대한 몸을 다치지 않기 위해
바닥에 내동댕이 쳐질때까지
끝까지 고삐를 놓지않고 매달린다.
어깨와 등이 닿고
엉덩이 골반이 그 다음 떨어지고
다리 두 개가 떨어지고 나서
맨 마지막은 끝까지 고삐를 잡고 버틴
팔과 팔꿈치와 머리가 바닥에 닿는다.
그날 레슨시간 초반에
어쩐지 혜성이 발걸음 리듬이 좋다 싶었다.
덕분에 조교는 우리 연습 실적에 욕심을 내어
장애물 높이를 점차 올렸다.
그날 혜성이는 우리 기록 최고높이 1미터 30을 점핑했다.
혜성이는 나를 태우고
우아아하게 날았고 우아아하게 착지했다.
혜성이와 나의 완벽한 호흡에
기분이 좋아진 조교는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입니다.
한번 더요!
수업이 끝나갈 때쯤
마지막 점핑을 할 땐
말과 사람이 완벽하게 마무리를 하는 게 아주 중요했다.
만약에 마지막 점핑 연습에서
다시 실패를 해버리면
말은 실패의 기억을 말의 기억체계에 저장하여
다음 연습을 할 때
장애물 넘는 걸 무서워하고 싫어하게 된다.
사람 역시 실패한 채로 수업이 마무리될 경우
실패하거나 낙마한 충격이 트라우마로 남아
장애물 점핑을 아예 두려워하게 된다.
특히. 자기를 낙마시킨 말 등에
다시 올라가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된다.
그때 깔끔하게 끝냈어야 했었다.
딱 한 번만 더 1미터 30cm를 성공했더라면
우린 그날 수업을 멋지게 마무리했을 것이다.
자. 들어오세요.
장애물 지지대옆에서 조교가 말했다.
가자!
마지막 완벽한 점핑을 위해
나와 혜성이는 장애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혜성이는 장애물 앞으로 달려가
우리 앞에 장벽처럼 서있는
1미터 30높이 장애물 앞에서
그냥 딱 멈춰버렸다.
고삐를 쥔 내 주먹의 미세한 긴장감으로 인해
고삐가 느슨해진걸 혜성이가 느낀 거였다.
내 잘못이었다.
혜성이는 그 자리에 멈췄고
혜성이가 달려온 속도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 부웅 날아가
장애물 건너편 바닥에 처박힌 다음 굴렀다.
하늘이 노랬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바닥에 부딪힐 때
가슴 쪽 어딘가에 충격이 간 모양이었다.
낙마가 일상인 학교에서
그런 광경을 늘 보는 조교는 매정했다.
쌤.괜찮으세요?라고
영혼은 1도 안 실린 걱정을 했다.
괜찮다. 고 대답했더니
(안 죽고, 뼈 안 부러지고, 살았으니)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교가 말했다.
다시 들어오세요.
낙마한 지 5초도 안되어
모래투성이로 범벅이 된 채
모래를 털어낼 겨를도 없이
다시 말 등위로 올라갔다.
낙마한 말 등에 5초도 안되서 다시 올라가는 이유는 그 말에 대한 낙마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말때문에 한번 생긴 트라우마를 이겨내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말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승마를 아예 그만둔 이들도 수두룩하다.
마장을 한 바퀴 다그닥 다그닥 달린 다음
다시 장애물로 진입했다.
이번에는 혜성이가 장애물 앞에서
왼쪽으로 훽! 몸을 틀어 장애물을 회피했다.
덕분에 나는 중심이 흔들려서
내 오른쪽 어깨 너머 장애물 위로 떨어졌다.
장애물이 우르르르 쏟아져내렸다.
말에서 떨어진 나는 다시 바닥에 뒹굴었다.
혜성이와 나는 그날
마지막 완벽한 점핑을 하려다가
14번의 실패를 했다.
그것도 연속적으로.
나를 태운 혜성이는 장애물 앞에서 멈춰버리거나
장애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홱 몸을 틀어 장애물을 거부했다.
그때마다 나는 영락없이
말 등에서 날아가 낙마를 했다.
그날 내가 도대체 낙마를 몇 번이나 했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다섯 번까지 세다가 세는 것도 잊었으니.
승마를 시작한 이래
가장 역대급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혜성이가 계속 장애물 앞에서
멈추거나 왼쪽으로 빠질 때마다
조교는 다시! 다시! 다시! 라 외쳤고
쌤. 다시 들어와요! 했다.
내가 계속 낙마를 하니 나중에는
괜찮냐고 묻지도 않고
다시 들어오세요. 했다.
다리는 후달렸고
마라톤 달리기를 한 듯
심장은 환장 나게 쿵당거려서
깊은 호흡을 하기조차 힘들었다.
말은 말대로 나는 나대로 죽을 맛이었다.
혜성아.
제발 마지막 한 번만 성공시키고 끝내자.
집중해!
다시 들어오세요.
조교가 또 외쳤다.
혜성아. 이번엔 아주 끝장을 내자.
나는 혜성이를 격려하며 땀으로 젖은 혜성이 목덜미를 가볍게 두들겼다.
진짜 마지막이야.
오혜성.
가자!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하나아.
두우울.
세애엣.
점핑!
혜성이는 우리 앞에 벽처럼 가로질러 있는
굵은 장애물 횡목을 향해
뒷다리 두 발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앞다리 두개는 횡목에 걸리지 않도록 바짝 접었고
튀어오르는 탄력으로 혜성이 목 높이에 있는
횡목을 부드럽게 넘어갔다.
나는 혜성이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자
안장에서 살짝 엉덩이를 들고
머리는 혜성이 목쪽으로 바싹 붙여
혜성이가 날아가는데 내 체중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세를 잡았다.
말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내가 하나가 된 순간.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가듯이
혜성이의 자신감있는 도약과
그에 대응한 나의 자세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
나는 바람처럼 말 등에 가볍게 얹혀져
나비처럼 날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잠잠했고
오직 내 숨소리와 혜성이의 호흡소리만
아주 크게 들렸다.
우린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안정된 착지를 했고.
고통스러운 연습이 드디어 끝나는 순간이었다.
14번 연속으로 땅에 처박히며 실패를 한 다음
당장 곧 죽을것만 같을 때
15번째 도전에서 겨우 이뤄낸 성공이었다.
나는 앞으로 몸을 숙여
오른팔을 뻗어서
혜성이 목덜미를 세게 툭 툭 툭 쳐 주었다.
잘했어. 오혜성. 잘했어.
혜성이도 긴장이 풀린 건지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말 몸뚱이가 땀범벅이 되어
흰 거품이 일었다.
혜성이 몸 곳곳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드디어 성공적인 마무리를 하게 되어
말에서 내릴 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땅바닥에 툴석 주저앉았다.
다리가 어찌나 덜덜덜 떨리는지
다시 일어서는데도 한참 시간이 걸렸다.
땀범벅인 혜성이를 샤워시킨 후에
부드러운 수건으로 온몸을 잘 닦아준 다음
마방에 넣어주었다.
그날의 실패들은 온전히 내 잘못이었다.
연이어 실패를 하며
장애물 앞으로 다시 달려갈때마다
혜성이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나는 혜성이를 고생시킨 게 너무 미안해서
잎사귀가 달린 생 옥수수를 부러뜨려
혜성이에게 내밀었다.
혜성이는 나에게 화가 나고 삐졌는지
머리를 마방모서리 쪽으로 처박고는
나를 등지고서 뒤도 돌아보질 않았다.
혜성이에게 옥수수를 내밀면서
녀석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혜성아 미안해.
내가 오늘 너무 못해서 네가 고생했다.
진짜 힘들었지?
미안해.
다 내가 잘못해서 그렇다.
그제야 혜성이는 내 사과를 받아들인 듯이
내가 있는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내손에든 옥수수 냄새를 한번 맡고서
입술로 옴질거리며 입안으로 밀어 넣고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혜성이 입술사이로 옥수수즙이 새어 나왔다.
엄마에게 혼난 아이가 잠시 후에
아무개야.수박 먹어라.하며 방문을 열고서
수박 가져온 엄마 대하듯,
혜성이는 나랑 눈도 안 마주치고 돌아서있다가
마지못해 엄마가 준 수박을 씹어먹는 아이처럼
내가 준 옥수수를 입에 넣고 씹어먹었다.
그날 집에 올 때 운전하다 보니
고삐 쥐었던 오른손 왼손 손가락들이 이상했다.
낙마 때 고삐를 잡고 버티다가
손가락들이 잘못된 모양이었다.
여러 모양새로 메다 꽂힌 등짝과 골반도 아프고.
어깨도 욱신거리고 팔꿈치가 쓰라려보니
바닥에 떨어질 때 찰과상을 입은 건지
상처엔 피가 맺혀 버얼갰다.
아마 혜성이도 그날 밤 몸살을 했을 거다.
운전을 하는 차 안에서 나는 혜성이를 걱정했다.
녀석이 내일 다리를 절면 안되는데.
그날 수업 마무리를 할 때
조교가 말했다.
쌤.
할 수 있는 분이
못하고 있으니까
될 때까지 시킨거에요.
힘드시죠?
말이라도 고맙다.
할 수 있는데 못하고 있으니까
될 때까지 한 거라니.
그게 뭐라고 위안이 됐다.
그래. 할 수 있는데 못하고 있으면 안 되지.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는 그날 멍청하게 수없이 낙마한 나를 향해 혼잣말을 했다.
맘을 비우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자.
실패하고
또 하고
또 실패해도 괜찮다.
다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