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카페와
카스를 비공개로 닫아놓고
15년 동안 잡다한 부스러기 같은 일들을
메모하고 스케치했다.
글을 썼다.하지 못하고
메모하고 스케치했다고 표현한 것은
글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매일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었으니.
나는 사람들 앞에 보란 듯 내 글을 내놓다는 게
(나를 내보인다는 게)
무척 부끄럽고 두려웠다.
그러니 15년 동안 벽뒤에 숨어
친구 몇 명 들여다보는 골방 같은 곳에서
끄적끄적 낙서를 했지.
1년 6개월 전부터
브런치에다 글을 쓰고 있다.
평생 내 안에 없었던 글 쓰는 용기가
어쩌다 불현듯 샘솟아
만인 앞에 여 봐란듯 글 쓸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의아하다.
글 쓰는 근육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앞에 글을 내놓을 수 있는 배짱과 뻔뻔함도
필요하다는 걸 나는 이곳에서 배웠다.
입력과 취소.
발행과 삭제를 반복하며
주춤거리는 내 검지 손가락.
나는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내 글은 근본없는 D급 글이다.
그러니 내 문장이 문학적 표현이 부족하든
글의 형식이 개차반이든 상관치 않는다.
멋지고 유려하게 쓰지도 못할뿐더러.
글 쓰는 두려움을 이기고
브런치 이곳에 공개 글을 쓰리라 맘먹었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그리해도 괜찮다고.
뭐라도 써낼 용기를 내고 있으면 됐다.
출간 작가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니.
나는 정직하고 생생한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다.
아. 정직한 글이라니!
난 너무 어려운 기준을 택한 거였다.
너무 뒤늦게 깨달았지만 말이다.
테마별로 연재를 한 이야기들 중엔
내 인생 2막, 말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가 있다.
그 연재 글을 쓰리라 작정하고 노트북 앞에
앉은 순간부터 공황증세가 도지는 걸 겪었다.
나의 인생 2막 세월이 그러했다.
내가 겪어낸 먼지구덩이 시간들을
정직하게 쓰리라 작정한 순간부터
나는 나의 허물과 과오와 나의 비루함들을
사람들 앞에 까발리며 낱낱이 토해내야 했다.
마치 고백성사하듯이.
솔직하게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것인지는
그 연재글을 쓰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결과적으로 그리 잘 쓴 글도 못되었지만.
말똥을 치우고
마장에서 말들과 하루 종일 싸우며
먼지를 뒤집어쓰며 살아온
내 인생 2막 이야기만큼은
지금도 내 손안에 남아있는 굳은살이 증명하듯,
화려한 수식어나 그럴듯한 기교가 필요 없었다.
그래서도 안됐고.
만약 그때를 아름답고 고상하게 써댔다면
그건 아주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거였다.
그 이야기는 흙먼지바람 이는 벌판에서
오감으로 겪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기를 쓰고 끌어올려져서
날것 그 자체로 생생하게 써야 할 이야기였다.
나는 문장뒤에 숨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내가 생각하는 정직한 글이란
이를 테면 이런거다.
비속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 지점에 내 감정이 도달할 때
독자들 앞에 쪽팔림을 무릅쓰고
솔직하게 써낼 수 있는 용기.
솔직함이 고상함의 뒷통수를 때린다해도.
그렇게 쓰인 내 글이 누군가에게는
수준 낮고 형편없는 글처럼 비칠 거란 걸 안다.
뭐, 이딴 걸 글이라 쓰고 있어?
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단 말이다.
만약 누군가가 내 면전에 그러한 말을 한다면
난 이렇게 말을 할 참이다.
당신.
달리는 인생의 말 등에서 낙마해본적 있어?
난 그 등에서 수없이 낙마하고도
5초도 안되서 흙먼지를 툭툭 털고
다시 말 등에 올라탄 인간이야.
당신이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나서
그런 평을 한다면
응. 그땐 인정!
전문 작가들은 대체
어떤 단단함으로 스스로를 무장한 채
그리도 유연하게 인생의 골곡을 써낸단 말인가.
나는 그들에게 무한한 경외감을 느낀다.
총 29화 연재를 마쳤을 때
나는 내가 겪은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해방됐다.
다시 불러내어 써내기 힘들었던 내 안의 상처들은
활자화된 문장 속에 봉인시키고
나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오래 묵힌 두엄더미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평생 나를 괴롭힐만한 나의 상처와 기억들을
나는 있는 그대로 토해낸 후
그것들을 문장 속에 가둬버렸다.
활자화된 문장에 갇힌 그것들은
이제 내 것이 아니라 객관화됨을 느꼈다.
그때 처음 심장으로
글쓰기의 치유력을 느꼈다.
브런치 오픈된 공간에 글을 쓰는 것은
나 스스로가 나를 다그쳐
공개 글을 강제로 쓰게 하는
연마장 같은 곳이라 여기고 있다.
다른 작가들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많은 글들 속에 슬쩍 올려진 내 글은
낡은 누더기 광목천 같은 글이라 여긴다.
그것도 다 글쓰는 마음 단련하는 수련과정이다.
작년 1월 글을 마지막으로
1년간 글을 쓰지 않았다.
브런치는 열어보지도 않았다.
마음이 어수선하기도 했고
사는 것도 어수선했다.
글을 끄적이는 것보다 살아내는게 우선이었다.
1년 만에 다시 글을 올렸다.
몇주 전 이야기다.
1년 만에 글을 올리면서 내가 깨달은 건
내가 글을 써서 내놓는 배짱이
제법 두둑해졌다는 거다.
여전히 내 글쓰기의 화두는
내 감정에 솔직하고 정직한 글쓰기다.
문체는 투박할지언정
살아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예전보다 깜빡이는 커서를 마주하고서
고민하며 단어를 고르는 시간도 줄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말든
에라 모르겠다. 난 이거야. 하며
그렇게 문장을 쓰는 연습 중이다.
그리고는
혼자 실없이 웃기도 한다.
처음 브런치에 내 글을
쭈뼛쭈뼛 내놨던걸 회상해 보면
이건 나에게 일대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브런치에서 1년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살아서 뽈뽈뽈 기어 나와
헛기침을 한번 큼큼하면서
이거 내 글이다. 하며 글을 내놓는다.
올해 글을 올리며
나 스스로 결심한 바는 이렇다.
기왕 쓰는 거.
솔직한 글을 쓰자.
화려한 문체 찾다가
본질을 잃어버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자.
생생한 글을 쓰자.
글을 읽는 사람의 시각 청각 후각에다가
글 속 현장 느낌을 그냥 때려 박는.
난 내 글이 4D영화처럼 읽혀지는 게 꿈이다.
내 감정에 솔직하게 쓰자.
얼어 죽을 자기 검열은 제발 좀 하지 말자.
멍청하게 자기검열하다가 글 조지지 말고.
뭐. 그런 정도다.
나는 화장을 떡칠한 글보다
막 세수를 한 말간 글을 읽기 좋아하고
나 역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다짐은 위와 같이 장황하게 나열하고 있으나
막상 내가 그렇게 쓸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 평생을 가도 그리 못쓸지도.
바로 다음 글에서 당장
수준 낮고 요상한 글을 쓸 수도 있는 게 나다.
괜찮다,
뭐라도 쓰고 있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