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길, 너를 살리는 길

by 시안

살다가 마음이 어수선해지거나

머리가 복잡해지면

낡은 등산화를 꺼내 신고서

홀로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거나 해안가를 걷는다.


아무도 없는 숲속 오솔길

숲의 적막을 깨는 새소리.

잘 마른 낙엽밟는 내 발자국 소리,

건조한 폐속 깊숙하게 스며드는

이슬먹은 이끼와 진한 나무향.


해안가를 따라 들고 나며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길가 풀숲에 핀 이름모를 들꽃 몇 송이.

동네 골목길을 지나는

낯선 이 발소리를 경계하는 겁많은 누렁이의 짖음.


이러한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길을 걸을 때

나는 이 생각 저 생각 넘나들며

잔뜩 어질러진 방같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러다보면 지금 나의 상태가

얼마나 엉망진창 되어있는지

그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된다.


침묵하며 홀로 걷는 시간은 성찰의 시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않으며

나의 내면을 유리창처럼 들여다보는.


어느날 불현듯.

나도 혼자서 한적한 곳 어디든 걸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22년전,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나는 걷는다-책을 읽으면서였다.


책은 총 세권으로 이뤄져있고

두께도 상당하다.

첫 장을 넘기면서 부터

육십이 넘은 올리비에 아저씨의

걷기여행담에 푹 빠져서

거의 이틀에 한권씩 몰아치듯 읽어

육일만에 세 권을 후딱 읽었다.


정치부기자를 지낸 그는

정년퇴임 몇해 후

홀로 베낭하나를 짊어지고서

터키에서 출발하여 중국 시안까지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그는 혼자였고

그는 실크로드 위에 꼼꼼하게 수를 놓듯

그의 발자국을 남겼다.


책을 읽을 때 나는 두가지에 매료되었는데

하나는 나이 육십을 넘긴 작가의 용기였다.

남들이 정년 퇴임후

쇼파와 티비를 친구 삼아

그럭 저럭 평범한 노년을 보낼 ,

감하게 혼자서

무려! 실크로드 위에 발을 올린

작가의 그 용기.


또 하나는

실크로드 길 12,000KM를

혼자서 침묵하며

걸어가는 행위 그 자체였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나를

걷기에 대해 눈을 뜨이게 했다면

그 다음 나를 길위에 서도록 부추긴 건

걷기예찬을 한 많은 작가들이었다.


그들이 써 놓은 걷기예찬 글들을 읽으면서

나도 자연스레 용기가 생기고

낯선 길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충동질했다.

그래.나도 혼자 길을 걸어야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실크로드

12,000KM를 걷기 전

워밍업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2200KM여정을 마쳤고

연금술사를 쓴 파울로 코엘료도 그 길을 걸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혼자 걷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던 나에게

그 길은 내 나이 오십에 꼭 가리라 다짐했던

나의 버킷리스트중 하나가 되었다.

침묵하며 수행하듯

몇달이고 내리 걸어서

산티아고 길을 꼼꼼하게 완주해야지.


내 나이 딱 오십이 되었을 때,

막 대학생이 된 큰 애가 말했다.

엄마. 산티아고 가자.

큰 아이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중인데

이젠 제법 기본적인 대화가 된다고 했다.


엄마 50살에 산티아고 가고 싶다고 했었잖아.

내가 엄마 산티아고 데리고 가려고

내 친구한테 스페인어 과외 받은거야.

가자. 내가 가이드 해줄게.

녀석.

엄마는 나이 오십되면 산티아고를 갈꺼다.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러나 큰 아이 마음과 달리

진짜 오십이 된 나는

내 나이 오십되면 난 말이랑 살란다.

나에게 먼저 선언해버린 남편때문에

마장을 잠시도 떠날수 없이

말들을 돌보며 꼬박 하루를 살았다.


내 나이 오십이 되면 산티아고를 갈꺼야.

말 한마디 꺼내지도 못하고서(잊고서)

남편 나이 오십때의 꿈처럼

나는 말이랑 사는 중이었다.


먼저 오십이 된 남편의 이제 난 말이랑 살란다.

이제 막 오십이 된 나의 산티아고 길은

간격을 좁힐수 없고

타협조차 될 수 없는

건널 다리조차 없는

넓고 커다란 강폭의 이쪽과 저쪽 같았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은

내 나이 삼십대 초반에 맘 먹었던 버킷리스트였다.


그러다가 정말로 오십이 된 나는

산티아고 길은 마음 저 한 켠으로 밀어놓고

남편이 있는 강 저편으로 건너가

남편 마장에서 말똥치우는 삽을 들었다.

나는 삽질을 하며 삶의 길 위를 걸었다.


큰 아이가 산티아고를 걷게될 나를 위해

스페인어를 배웠다는데

그랬구나.그래. 당장 가자. 하지 못했다.

큰 아이는 몇일을 여행일정으로 잡을지

언제쯤 비행기표를 예약할지 물었지만

나는 쉬이 대답해줄수 없었다.


내가 애기 둘을 키울 때

당시 나는 하루종일 이어지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나의 청각은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팬더처럼 내려앉은 다크써클과

살짝만 움켜쥐면 바스러져 버릴것같은

내 보잘것 없는 자아가

머리는 머리대로 손은 손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하나 하나 분리되어

우주 저 멀리 날아가 버린것 같은 상실감.


내가 신경정신과치료를 받고 있을 때.

제주 올레 이사장인 서명숙씨는

그런 나를 살리려고 작정이나 한 듯

제주에 올레길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길은 저 멀리 신기루처럼 있고

올레 길은 당장 차를 몰고 나가면

삼십분이면 닿는 곳에 있었다.


제주에 걷는 길을 만들고 있다니!


나는 기다렸다는듯이

그녀가 한코스씩 이어붙이며

길을 내고 있는 올레길을 따라

홀로 걷기 시작했다.

어미새가 물고 온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제비처럼.


그녀가 제주 올레4코스를 개척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때 쯤

나는 올레1코스를 처음 걸었다.


올레 1코스 말미오름을 지나

알오름 정상위에 서서

툭터진 사방을 천천히 뱅글뱅글 돌아가며

오름 주변 풍경을 바라봤다.


적당하게 따뜻한 햇볕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걷느라 달궈진 내 몸을 식혔다.

내 몸속 어딘가에

시꺼멓고 음흉하게 들러붙어 있는

회색 먼지뭉치가 오름 정상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휘이잉 날아갔다.


볕 좋던 그 봄날

올레 1코스 알오름 정상에 홀로 서서

느껴지던 해방감이란!


숲길과 해안가.

시골 마을 수줍은 골목길을 혼자 걷는것이

신경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우울증 치료약보다

비할바없이 더 효과적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몇 일 꺼내 먹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육아를 하느라 방전된 에너지는

햇볕을 쬐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오감으로 계절과 흐르는 시간과 풍경을 느끼며

기를 쓰며 기어이 충전시켰다.


집을 나설때 흙탕물처럼

맘이 혼탁하고 기운이 가라앉아 있다가도

한나절 숲길을 혼자 걷고 오면

다시 맑은 물처럼 마음이 회복되어

내 아이들을 품에 안고 볼을 부볐다.


그 주기는 아이들이 어릴적엔

몇 일사이로 아주 짧았다가

아이들이 점점 자라자

나를 충전하는 날의 간격도 길어졌다.


그렇게 키운 둘째가 자라

고3이 되었을 때.

아이는 혼자 이겨내기 힘든 상황에 처해있었다.

아이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둘째가 방안 구석에 놓여있는

베르나르 올리비에 책

-나는 걷는다-를 읽은 모양이었다.

총 세권을 단 삼일만에 후딱 먹어치우듯.


둘째는 당장 시간을 내어 베르나르 올리비에처럼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고3인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 마음이 건강하게 회복되는게 먼저였기에

나는 아이가 걷고 싶다던 올레 1코스 출발점에

아이 혼자 내려 놓았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둘째도 혼자 길 위에서 한 발짝씩 걸어나가며

마음을 살피고 풍경속에서 위로받았다고 했다.


아이가 조각 조각 시간을 내어

길을 걸은 날,

어떤 날은 비가 쏟아졌고

어떤 날은 진한 안개가 꼈고

또 어떤 날은 강풍이 불었다.


창밖의 궂은 날씨를 내다보면서

나는 길 위를 혼자 걷고 있을 아이를 걱정했지만

녀석은 기어이 제주 올레길 전 코스를

혼자 꾹꾹꾹 밟아 다 걸었다.


처음 길을 걷던 출발지로 걸어서 도착하던 날

나는 출발지에서 아이를 맞이했다.

저 멀리서 걸어오던 아이가 나를 보고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마침내 출발지에 섰을 때

나와 아이는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큰소리로 웃었다.

아이의 미소와 웃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이의 눈부신 백만불짜리 미소.


그날은 눈발이 수평으로 날아가던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다.

길을 걸어온 아이의 얼굴과 손이

새빨갛게 얼어있었다.

아이의 새빨간 손을 잡았을 때 냉기가 느껴졌다.


본인의 뜻대로 길위에 섰다가

걷고자 한 길을 다 밟고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아이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다.


아이가 처음 길을 걷고 싶다고 말했을 때

녀석 마음속에 들어앉아있던

묵직한 크고 작은 돌덩이들도

그 길 위에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고 오길 바랬다.

아이 얼굴이 밝은 걸 보니

그 돌덩이 몇 개 내려둔 모양이었다.

다는 아니겠지만.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는 길.


길은 여전히 저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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